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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후 치러진 첫 선거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선거 관련 옛날 일을 떠올리게 했다.

성인이 된 후 기분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나도 투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정말 성인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막연한 어떤 책임감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20대에는 투표를 거의 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도 있었지만, 뭣보다 투표의 중요함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확신은커녕 혼란스러울 때가 대부분이어서 더욱 투표하지 못한 것 같다.

지금처럼 "투표는 반드시 하자"가 된 것은 첫째가 유치원에 다니던 30대부터. 투표하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는 물론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것 같아서였다. 투표는 반드시 해야겠다가 되니 어떤 후보들이 나왔나 관심을 두게 됐고, 점차 좀 더 많은 것들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투표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 여하간 지난 4월 15일에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해왔다.

20대 두 아이에게도 투표만큼은 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선거철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했다며 자랑하는 지인이 있다. 부모의 투표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그가 부럽곤 했다. 아마도 내가 20대일 때 그처럼 어른들의 어떤 도움을 받았다면 나도 빠뜨리지 않고 했을 것이며, 어쩌면 삶의 방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20대에 투표하지 못한 데서 느끼는 아쉬움이나 후회만큼은 가지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이런 생각들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청소년기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과 정치나 선거 관련해 이야기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관련 책 좀 읽어보자. 막연히 생각해왔다. 선거가 치러지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야기 나눌 수 있다지만, 실은 관련 아는 것이 그다지 없는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반갑게 읽은 <선거 쫌 아는 10대>(풀빛 펴냄) 이다.
 
<선거 쫌 아는 10대> 책 앞표지
 <선거 쫌 아는 10대> 책 앞표지
ⓒ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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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그러니까 사실상 시민들은 정치를 관전하는 관객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있던데. 시민들이 지지하는 '유치원 3법'이나 '민식이법'조차 어렵게 국회를 통과하는 걸 보면, 시민이 민주주의의 주인이라는 말은 그냥 수식어 같아.

삼촌: 맞아. 지금의 국회는 철저히 기득권을 대변하고 있지. 그렇지만 우리가 선거를 포기하면 뭘로 저 기득권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을까? 한 번에 모든 걸 다 얻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뭐라도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하지 않을까? 관객으로 관망만 하는 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주체로 활동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 특히 지금은 예전과 달리 개인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커졌다고 생각해. 
 
2020년 현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36개국 모두 '만 18세'에게 선거권을 준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는 '만 19세부터' 선거권을 주는 유일한 나라였다. 심지어 만 16세에게 선거권을 주는 나라도 있고, 청소년들에게 정당 활동에 참여하는 등과 같은 정치권을 주는 나라들도 있는데 말이다.

만 18세에게 선거권을 주기까지 반세기가 필요했다. 책에 따르면 ▲ 취업(근로기준법) : 만 15세 이상 ▲ 결혼(민법), 공무원시험(공무원임용시험령, 8급 이하), 입대(병역법) : 만 18세 이상 ▲ 운전면허취득(도로교통법) : 만 18세 이상(43쪽)" 등 이처럼 관련법들로 노동이나 결혼은 물론 병역의무까지 부여했으면서도 그 당사자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참정권을 주는 것에 유독 인색했다.

그런데도 지난해 만 18세에게 선거권을 주는 것을 두고 특정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가 하면, "한국의 입시 문화, 학업 스트레스 등을 고려했을 때 만 18세에 해당하는 고3은 예민하고 민감한 시기에 해당" 운운하는 것으로 그러잖아도 스트레스 많은 학생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나이 한 살 낮추는 것에 그리 민감했을까. 우리 대부분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처럼 청소년들에게 구체적이며 체계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어른들이 많지 않을까. 몇 세부터에게 선거권을 주는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높은 투표 참여율이나, 올바른 참여인만큼 적절하며 객관적인 시각의 설명이 필요할 것인데 말이다.

유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자 기획된 책이다. 이런 책은 5부로 나눠 ▲ 선거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까? ▲ 우리나라에는 과거 어떤 정당들이 있었으며, 세계 다른 나라들은 어떤 정치구조일까? ▲ 우리 선거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올바른 방향을 위해 어떤 점들이 개선되어야 할까? ▲ 선거와 투표는 어떻게 다를까? ▲ 유권자가 투표할 때 지녀야 할 기준은 무엇이며,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 청소년의 정치 활동은 왜 필요할까? 그렇다면 다른 나라 청소년들의 정치 활동 현실은? ▲ 선거공보물을 읽는 요령과 공약 판단하기 등 올바른 선택을 위해 유권자가 알아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삼촌: 투표를 한 것으로 마음을 놓으면 안 돼.…투표만 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내가 선택한 정치인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봐야 해.

16세: 그런 건 어떻게 알 수 있어?

삼촌: IT 강국 한국 아니냐. 국회 홈페이지에 가면 지금 국회가 다루는 법률안과 예산안, 국회의 상임·특별위원회, 국회의원에 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 예를 들어, 우리 지역 국회의원을 찾아서 클릭하면 전화번호와 연락처, 보좌진, 국회 일정, 의회 발언 영상, 상임위 활동, 대표로 발의한 법률 등 다양한 정보를 다 얻을 수 있어. 지방의회도 비슷한 체계로 되어 있고, 대통령이나 단체장들에 대한 정보도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어.

18세: 시민단체들도 정치인들을 평가하지 않아?

삼촌: 맞아. '매니페스토(참공약)'라고 정치인들이 공약을 제대로 지키는지 살피는 시민운동도 있고, 열려라 국회처럼 국회의원의 의정활동과 재산내역, 국회 출석률과 활동을 감시하는 시민운동도 있어. 지방 정부의 예산을 감시하는 시민운동도 있고.
 
그런데 정치는 물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데다가 관련 지식도 많아 척척박사인 삼촌과, 올해 유권자가 된 만18세, 그리고 다음 선거 때 유권자가 되는 만16세 조카와의 대화 형식으로 풀어나가 훨씬 친근하게 와 닿는다. 게다가 청소년들이 많이 쓰는 말들을 섞은 데다가 설명도 비교적 쉬운 편이라 이해가 쉽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주제인데도 즐겁게 읽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형식 덕분일 것 같다.

후보 선택으로 끝나곤 했던 투표. 뉴스 등을 통해서만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평가해 왔던 그동안. 이처럼(위 인용) '투표 그 후' 유권자 혹은 시민으로 해야할 것까지 짚어주고 있어서 책의 필요성이 더욱 와 닿았다.

아이들과 선거 혹은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할 때면 어느새 내 주관이 많이 개입되어 있음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느 정도 알려주는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살아가며 내게 될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선거 후보 혹은 정당 등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안목과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책들을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계간 <우리교육> 2020년 여름호에도 실립니다.


선거 쫌 아는 10대 - 보호받는 청소년에서 정치하는 시민으로

하승우 (지은이), 방상호 (그림), 풀빛(2020)


태그:#선거 쫌 아는 10대, #만18세선거권,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청소년유권자, #제21대국회의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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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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