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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법이라 불린 산업안전보건법이 올해 시행되었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피해가족들과 시민사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발족하려 합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를 산재피해유가족과 동료가 나서서 이야기합니다. 이 기고문은 <오마이뉴스>와 <미디어오늘> <민중의소리> <참세상> <프레시안>에 공동게재됩니다. - 기자 말
 
구의역 사고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잍을 붙여 놓았습니다.
▲ 구의역 사고4주기 추모 포스트잍 구의역 사고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잍을 붙여 놓았습니다.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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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8일 PM5:57

오후 4시 58분, 구의역 9-4스크린도어에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김군이 구의역에 도착한 시간은 5시 52분. 당시 서울메트로와 은성PSD 사이에 맺은 계약(고장 접수 1시간 이내 현장 출동하지 않을 경우 페널티 부과) 시간을 6분 남겨둔 상황이었습니다.

동료 직원들은 다른 곳의 장애로 도저히 같이 올 수 없어 페널티를 피하기 위해 김군 혼자 구의역에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도 구의역 조치를 위해 김군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6시 20분까지 다시 을지로 4가역의 장애 조치를 위해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군은 스크린도어 뒤편에서 혼자 수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오후 5시 57분, 달려오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열악한 노동환경, 반복된 죽음

김군이 사망한 이후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당시 가방에 들어있던 컵라면이었습니다. "차라리 컵라면이라도 배불리 먹고 가지"라며 울부짖으시던 김군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에 허덕이며 투잡을 뛰어야 했고, 사람은 늘 모자라 2인 1조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한 시간 내에 조치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늘 시간에 쫓겨야 했습니다. 그렇게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서 가방에 컵라면 넣어 다니며 일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목숨 내놓고 일해도 '다음 달 계약 만료이니 이제 그만 나오라'는 이야기를 언제 들을지 몰라 회사에 싫은 소리 한번 낼 수 없었던 게 김군과 동료, 우리들의 현실이었습니다.

김군의 죽음이 예견되었던 이유, 그리고 이미 똑같은 죽음이 두 차례나 있었지만, 또 다시 반복되었던 이유는 바로 이들이 '외주 하청업체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주의 탓? 시민의 힘으로 밝힌 구조적 문제

당시 서울메트로는 '개인 과실'이라며 김군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이미 성수역과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에도 그리 했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김군이 사망한 구의역 9-4 승강장을 중심으로 추모 행동을 벌이며 김군의 죽음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정규직이 아닌 외주 하청의 구조적인 문제,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회의 책임이라는 점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구의역 진상조사단 시민대책위'가 꾸려지고, 김군의 동료들이 직영전환을 거쳐 정규직 전환에 이르게 되는 등 근본적인 변화의 노력들이 이어졌습니다.
 
구의역 사고 4주기에 다시는 가족들이 참석해 추모 중입니다. 다시는은 산재 유가족 모임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구의역 사고 김군 4주기 추모  구의역 사고 4주기에 다시는 가족들이 참석해 추모 중입니다. 다시는은 산재 유가족 모임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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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4주기,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사고 이후 김군의 동료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 업무의 정규직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무기 계약직 직고용을 거쳐 지난 2018년 결국 정규직 전환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인력이 부족해 2인 1조 근무가 불가능했던 현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삐 움직여야 했던 근무 강도, 죽음을 무릅써야 했던 열차 운행 중 선로 측 작업 제도, 사고를 조장하는 각종 설비 등의 문제가 개선되었고, 좀 더 안전한 현장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장애 처리보다 직원의 안전이 우선인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던 도중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주간에는 위험해서 못하겠으니 영업 종료 후 조치하겠다"며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런 권리 덕에 '위험하면 하지 마'라는 분위기가 현장에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구의역 사고가 4년이 지났지만 사회는 여전히 교훈을 찾기는커녕 변한 게 하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4년 전 "열심히 일했을 뿐인 내 아들이 무슨 죄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 달라"던 김군 어머니의 외침을 김용균님의 어머니께서 똑같이 말하고 계신 현실을 2018년 겨울 내내 지켜봐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담뱃불이나 용접 작업 때문이 아니다"라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이천 한익스프레스 산재 사고 유족들, 김용균님과 너무도 흡사한 죽음을 맞이한 삼표 시멘트의 비정규직 노동자...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는 곳곳이 구의역입니다.

다시는 제2의 김군이 없기를 바라며

2013년 성수역과 2015년 강남역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는 그 책임을 하청업체와 해당 노동자의 과실로 떠넘기고 빠져나갔습니다. 그 결과가 세 번째 사고와 김군의 죽음이었습니다.

안전 대책을 마련할 비용보다 벌금이 싸게 먹히고, 노동자의 목숨보다 솜방망이 처벌이 가벼운 한, 김군과 같은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꼬리 자르기식으로 처벌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구의역과 같은 참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과 안전이 이윤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무엇보다 먼저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 출발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입니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면 사장이 형사 처벌을 받는다', '노동자가 사망하면 그 기업은 망한다'는 정도의 제재가 있어야 사고를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현 구조의 문제를 바꿀 수 있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입법되기를 바랍니다.

오는 28일 구의역 4주기를 맞아 더 이상 김군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2의 김군이 없는 세상을 위해 김군의 동료들도 함께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선재씨는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PSD지회장입니다.


태그:#구의역, #노동자 안전, #산재사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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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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