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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치권을 진흙탕으로 몰아넣었던 패스트트랙 정국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검찰개혁'이 촉발한 갈등이었다.

이제 두 개혁법안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검찰개혁에 목마른 지금, 우리에게 그 문제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던져줄 책이 한 권 출간됐다. 30년 가까운 경력의 검찰 수사관 김태욱이 쓴 <검찰수사관 내전>이 바로 그 책이다.
 
[검찰수사관 내전 / 김태욱 글 / 바이북스] 표지
 [검찰수사관 내전 / 김태욱 글 / 바이북스] 표지
ⓒ 바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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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벌써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았을 정도로 나이를 많이 먹었고, 검사들의 권한이었던 수사권 일부가 경찰로 넘어갔어요.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갔다는 소식은 형님 계실 때 기준으로 보면 깜짝 놀랄 일이지요? 여기서는 몇 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수사관들에 대해서는 변한 게 없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저렇게 아무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병이 역사 속의 '아무개'로 존재하지만 저물어가는 조선의 어둠을 밝혔듯이 검찰의 수사관들도 검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검찰청 아무개들의 생각을, 열등감과 자존감을, 그리고 그 주변의 이야기를, 아무개의 눈으로 보았을 검찰의 세상을, 이렇게 형님께 편지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제 이야기를 포함해서요." - 본문 중에서

'검찰수사관의 13년 만에 쓰는 편지'라는 부제처럼 먼저 간 선배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인 이 책은 그저 아무개로 살아가는 검찰수사관의 삶과 애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며 가장 첫 번째 드는 의문이 '검찰수사관이 뭐지?'였지만, 딱히 검찰에 관계되지 않더라도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인터넷에서 '검찰수사관'을 검색해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나 답변들이 많습니다. 검찰수사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야 검찰수사관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고, 홍보 부족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검사 시다바리' '검사 딱가리'라는 표현들에서 대해서는 누가 볼까 무섭고, 민망하고, 자괴감을 금할 수 없는 댓글들입니다."

"사전상 풀이를 보니 일반 행정기관의 어느 말단 공무원도 국장을 보좌하여, 과장의 지휘에 따라, 이렇게 업무가 설명되지는 않더군요. 중요하든 중요치 않든 독립된 자신의 업무가 분장되어 있고 결재를 받을 뿐이지만, 공무원 직종 중 유독 검찰수사관만이 온통 검사 지휘에 따라, 보좌하여, 명을 받은, 보좌 업무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검찰수사관인 그는 검찰청 내부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개혁을 위한 쓴소리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고쳐야 할 검찰문화에 대한 지적과 함께 검찰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사례까지 골고루 고백하기 때문이다. 나이 어린 검사에게 하대를 당하는 것이나, 마치 정규직 vs. 비정규직 차별하듯 대우가 천양지차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다.

반면에 법률가로서 검사의 사명감과 그것을 돕는 검찰수사관의 노고는 글에 나오는 몇몇 사례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자칫 지루하다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글을 흥미진진했다. '라떼는 말이야'로 저절로 귀에 울리는 공감 스토리부터 추리소설이나 범죄 수사물을 보는 것 같은 사건 예시까지 다양한 주제가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서 작성에 매달리는 수사방법이 뭔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으나 어떻게 바꿔야 수사기관도 효율적이고, 피조사자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불리하지 않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자동차도 스스로 주행하고, 하늘까지 날아다니는 세상인데 아직도 조서에 의존하는 수사방법이 뭔가가 아쉽기는 합니다." - 본문 중에서

그중 검찰수사관이 하는 일을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 조서를 작성하는 이야기다.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잡범에 이르기까지 검찰 수사를 받고 나면 조서를 작성하고 열람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100개의 형광등을 켠 아우라를 가진 어느 분이나 찬반 양 진영이 서초동에서 격돌하듯 시위를 하게 만든 분도 모두 조서 열람에만 몇 시간을 사용한 까닭이 다 있는 것이다. 물론 한평생 이 지식을 활용할 일이 없는 게 최선이지만 알아두어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 꼭 읽어보자.

 
"검찰을 떠나게 되면, 이제 주인공은 오로지 나 자신이어야 하고, 주인공일 나의 역할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게 될 테니까요. 검찰이라는 조직에선 주인공이 아닌 아무개로 살았으니 내 삶에선 이제 주인공 좀 해봐야지요." - 본문 중에서

이 책의 또 한 가지 매력은 자신의 삶이 주인공이 되길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준다는 점이다. 정년이 그리 멀지 않은 저자는 우리나라 중년 남자 대부분의 로망인 전원주택에서의 삶을 꿈꾼다. 그래서 미리 시작한 은퇴준비로 지금 살고 있는 전원주택을 나중에 북카페로 고치고,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개방하려고 한다. 평생 검찰청에서 보좌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니 이제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려는 것이다.

 
"아나운서의 '검찰은'이 들리지 않는 날, '경찰은', '청와대는'과 똑같이 취급되는 날, 그래서 미량의 관심도 사라지는 날, 불평도, 불만도, 불평등의 의식도 모두 사라질지 모르겠네요.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자니 영 어색하고 닭살 돋지만 어쩌면 아직은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색대 _ '삑'
청원경찰 _ 주머니에 뭐 들었어요?
민원인 _ 열쇠하고 지갑밖에 없는데요?
청원경찰 _ 위험하니 다 여기 맡겨두고 가세요.
민원인 _ 지갑엔 돈밖에 없는데요?
청원경찰 _ 돈이 더 위험해요!
민원인 _ … "  - 본문 중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쪼잔한 부패검사, 정치검사들의 검찰 전체를 욕먹게 만들고 있기에 차라리 검찰이 언론에 주목받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마음은 그만큼 검찰이 새로 거듭나기를 고대한다는 뜻도 된다. 진정 검찰을 사랑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마음가짐이다.

검찰 개혁의 시대에 들여다본 검찰청의 속이야기를 넘어 이제 내 삶의 주인공이 되자는 결심까지 다양한 매력을 가진 <검찰수사관 내전>은 한번 손에 들면 쉽게 내려놓은 수 없는 책이다. 특히 내용이 만만치 않거나 먹먹할 때 잠시 쉬어가는 짧은 우스갯소리가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그렇다. 진짜 위험한 게 무엇인지, 우리 사회의 앞날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검찰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하면 여기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직접 읽고 확인해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검찰수사관 내전 - 검찰수사관의 “13년 만에 쓰는 편지”

김태욱 (지은이), 바이북스(2020)


태그:#검찰수사관 내전, #검창수사관, #김태욱, #검찰개혁, #바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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