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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 온 귀한 손님 오월 마지막 주말, 경북 영주와 안동에서 귀한 손님 여섯 분이 5.18 사적지 답사를 위해 광주를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했다.
▲ 경북에서 온 귀한 손님 오월 마지막 주말, 경북 영주와 안동에서 귀한 손님 여섯 분이 5.18 사적지 답사를 위해 광주를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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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마지막 주말인 30일 오후,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경북 영주와 안동에서 초로의 시민 여섯 분이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 답사를 위해 천릿길을 나선 것이다. 5.18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봉고차를 손수 운전해서 광주를 찾았다.

광주까지는 쉬지 않고 운전해도 족히 3시간은 걸리는 먼 거리다. 더욱이 영주와 안동이라면, 대구와 함께 대한민국 보수의 본향을 다투는 곳 아닌가. 지인으로부터 사적지 해설을 부탁받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가겠다며 반가워했던 이유다.

사실 광주는 대구와 경북의 시민들과 손잡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나눔과 연대라는 5.18 정신을 전국화하기 위한 광주광역시교육청과 5.18 기념재단의 전국 교원 연수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다. 지난 2016년부터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사업이다.

올해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보류되었지만, 해마다 전국의 많은 교원들이 참여하고 호평하는 명실공히 대표적인 5.18 기념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지금껏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는 곳이 대구 경북 지역이다. 사정이야 있을 테지만, 그만큼 거리감이 있다는 뜻이다.

연수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온 교원 100명보다 대구 경북에서 온 1명이 더 소중하다. 초대에 응하지 않으니, 우리가 대구 경북을 찾아가 5.18 정신을 전하고 오자는 제안까지 나올 정도다. 5.18에 관한 한 대구 경북은 '금단의 땅'이라는 생각에서다.

두 분을 제외하곤 광주는 난생처음이라고 했다. 그들은 국립 5.18 민주묘지를 향하는 길 양옆으로 걸려있는 현수막 행렬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개중에는 대구와 경북의 여러 시민단체의 이름이 적힌 것들도 적지 않아 짐짓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망월동 묘역, 전일빌딩... 오월이 서린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는 오월의 마지막 날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가는 날이 장날인 듯, 추모탑 앞 광장에서는 어린이 대상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널찍이 떨어져 앉았고, 마스크 차림으로 그림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추모탑 앞에 덩그러니 세워진 근조 화환이 눈에 띄었다. 꽃은 시들었지만,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전날 그의 아들이 노재헌씨가 이곳을 찾아와 참배한 흔적이다. 그들은 그가 아버지를 대신해 5.18 희생자들을 추모한다는 게 생경하다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병상의 노태우가 진정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수시로 묘역을 찾아와 헌화하고 무릎을 꿇는 아들의 모습에 광주 시민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듯하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적은 화환을 감히 이곳에 세울 수 없었다.

광주 시민들에게 여전히 그는, 백번 양보하더라도, '학살의 공범'이다. 판결에 따른 추징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등 죗값을 치르고는 있다지만, 당시 수많은 희생자들의 핏값을 대신할 순 없다. 그의 사죄는 진상규명과 학살 책임자 처벌, 피해자 명예회복으로만이 수용될 수 있다.

비록 아들의 대속일지언정, 노태우의 이름이 적힌 화환에 적이 놀란 듯하다. 5.18 영령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건 '절친' 전두환을 배신하는 행위다. 학살 책임자 중 '공범'은 자신의 책임이라며 용서를 구하고, '주범'은 뻔뻔하게 책임이 없다며 나 몰라라 하는 형국이 됐다.

추모탑 앞에 놓인 노태우의 화환이 5.18에 대한 사죄와 용서, 화해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대구 경북의 시민들도 5.18 사적지를 찾아 휴가를 오고, 학교에서도 광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이 과연 올까. 분향이 끝난 뒤에도 그들 모두 화환 옆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추모탑 가운데에 걸린 타원형의 거뭇한 조형물은 '씨앗'을 상징한다. 5.18 영령들이 잠든 이곳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점이며, 발아하여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될 것이라 희망을 담고 있다. 진정 사죄의 마음을 담았다면, 노태우의 화환이 발아의 과정일 수 있다.

그들은 묘역의 규모에 놀랐고, 희생자들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을 쳤다. 현재 1묘역에는 777기가 모셔져 있어 더 이상 묘를 쓸 자리가 없다. 하여 봉분의 규모를 줄여 평장 방식으로 1500기 이상을 모실 수 있는 2묘역을 민족민주열사 묘역 가는 길에 조성 중이다.

떠나기 전 그들이 최종 목적지 삼은 곳은 새뜻한 국립 5.18 민주묘지가 아니라, 흔히 '망월동 묘역'이라고 불리는 민족민주열사 묘역이다. 그들은 5.18과 광주를 상징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무리 현대사에 무관심하다 해도, 이한열과 백남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도 했다.

그들은 이구동성 대부분의 유해가 국립 5.18 민주묘지로 옮겨져 가묘 상태인 이곳이 더 큰 감동을 준다고 했다. 빛바랜 묘비와 주인 떠난 봉분의 풀 한 포기에도 당시의 역사가 담겨있다는 거다. 이곳의 이한열 열사 묘 앞에도 노재헌씨가 다녀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5.18 당시의 옛 묘역인데도, 최근 돌아가신 민주화 유공자들이 이곳에 속속 안장되고 있다. 그들은 생전 유언처럼 '망월동 묘역'의 동지들 곁에 가고 싶다며 말하곤 했다. 새로 조성된 무덤이 많아선지, 국립 5.18 민주묘지보다 민족민주열사 묘역을 찾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빠듯한 하루짜리 답사라고 했지만, 내친김에 옛 전남도청과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자리한 금남로까지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러자면 영주와 안동엔 얼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착하게 될 거라 미리 귀띔했다.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묘역을 나서 시내로 향했다.

"동생은 아직도 5.18을 폭동이라 하지만..."

금남로에 닿으니 햇볕이 힘을 잃은 오후 3시 반이었다. 우선,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이 전시된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을 찾아야 한다. 7월 24일까지 임시 개방한 옛 전남도청도 들러야 하고, 당시 수습한 시신을 안치한 상무관도 보여드려야 한다.

최근 리모델링해 재개관한 전일 빌딩도 빠트릴 수 없다. 그들 역시 '망월동 묘역' 다음으로, 그곳에 남은 헬기 탄흔을 보고 싶어 했다. 20~30대 젊은이들이라면 재촉이라도 할 텐데, 원체 발걸음이 느긋한 분들이라 해지기 전까지 다 둘러볼 수 있을지 걱정돼 마음이 바빴다.

한 곳이라도 더 보여드리고 싶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일정이 늦어져도 괜찮다고 했다. 주차 후에는 줄곧 걸어야 한다고 미리 겁을 줬지만 문제없다며 흔쾌해 했다. 그들은 어느새 광주의 풍경과 분위기를 보고 느끼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가는 길, 녹두서점 옛터에서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들불 7열사를 소개했다. 건너편 5.18 당시 불탄 옛 MBC 터에서는 언론의 역할과 시민 저항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는 유네스코 지정 기록유산과 함께 세계 각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했다.

전일 빌딩 옥상에서 옛 전남도청 주변을 내려다보며, 그들은 처음으로 '항쟁의 중심지'에 섰다며 가슴 벅차했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당장 사진 찍기에 바빴을 텐데, 그들은 묵상하듯 한참 동안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을 응시했다. 그때 환영 인사하듯 광장의 분수대가 물을 뿜었다.

해설을 잠시 멈추고, 그들을 따라 '항쟁의 중심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들은 지금껏 TV와 신문, 인터넷 등으로 접해온 5.18이 아무런 감동과 깨달음을 주지 못했다고 고백하듯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 아닐는지.

이곳에서 내려다본 풍광이야말로 최고의 교과서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45개의 헬기 탄흔을 일일이 헤아리듯 살펴본 뒤 다시 광장으로 내려왔다. 때마침 광장의 시계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노래다.

옛 전남도청 내부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을 살펴보기엔 때가 너무 늦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갈 여정을 감안하면, 주마간산조차 여의치 않은 시간이다. 마땅히 묘역이 5.18 답사의 마지막이어야 하지만, 영령들께 헌화할 수 있는 공간이 시내에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상무관에서 이번 여행을 갈무리한 이유다. 지금 이곳엔 검은 천을 두른 추모의 벽이 설치되어 있고, 방문객들이 헌화할 수 있도록 제단이 놓여있다. 5.18 당시에도 계엄군의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의 주검을 안치한 뒤 시민들이 신원을 확인하고 분향하기 위해 줄을 섰던 곳이다.

"5.18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자신이 정말 부끄럽다. 5.18에 대한 책을 읽고 관련 강연을 듣고 나서야 조금씩 진실에 눈을 뜨게 됐다. 내 동생조차 여전히 5.18을 부정하며 '폭동'이라고 부른다. 알려고 하지 않으니 진실에 다가갈 수가 없다. 5.18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광주 시민들이 정말 부럽고 존경스럽다."

헌화 후 상무관을 나오며 한 분이 울컥해 하며 건넨 말이다. 그는 아직도 많은 이웃들이 버젓이 '빨갱이' 운운하고, 광주에 가면 위험하다고 말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하긴 십여 년 전만 해도, 이곳 광주도 마찬가지였다. 광주 번호판을 달고 경상도에 가면 해코지당한다고들 했다.

차마 그분의 동생과 이웃들을 나무랄 순 없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하며 온갖 가짜 뉴스를 양산해온 극우세력의 농간에 길들여진 탓일 테니 말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해 열성을 보이지 않은 것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록 해설하느라 목은 쉬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하고 보람된 하루였다. 어스름 저녁 그들을 떠나보내며 간절한 바람을 담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역사적 사실도 좋고, 시민들의 진솔한 일상 모습도 좋다. 돌아가 광주의 진실을 오늘 보고 느낀 그대로 이웃에게 전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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