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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둘러보는 구역 중 하나가 한국 십진분류법상 900번대에 해당하는 역사 서가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사 코너 앞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름들을 가만히 발음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세계로 훌쩍 건너가버린 것처럼 아득해진다.

그러다가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한두 권쯤 빌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빌려오는 책들의 공통점은 대개 '세상에서 가장 쉬운', '하루 만에 끝내는', '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드는'과 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유혹적인 문구에 혹해 빌려온 책들도 끝까지 다 읽은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골라온 책들은 대부분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쉽긴 한데 재미가 없거나, 재미는 있는데 쉽지는 않거나.

최근에 관심이 가는 책들은 특정한 소재를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책들이다. 예를 들어 '금속의 세계사', '커피 세계사', '철도의 세계사', '전염병의 세계사' 같은 책들. 여러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지금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책은 미야자키 마사카쓰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박연정 옮김, 위즈덤하우스(2020)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박연정 옮김, 위즈덤하우스(2020)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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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도쿄 교육대학 문학부 사학과 졸업 후, 여러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세계사를 가르쳤다고 한다. 20여 년 동안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편집해온 그는 현재까지도 매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역사서 작가이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만 해도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하룻밤에 읽는 중국사>, <공간의 세계사>, <바다의 세계사>등 30여 권에 이른다.

저자는 우리가 기존에 배웠던 시간 순에 따른 역사가 아니라 육지, 바다, 하늘이라는 공간 안에서의 세계의 변화를 정리한다. 그는 이 책에서 육지, 바다, 하늘, 각각의 공간에서 패권을 쥐었던 나라들과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지역 세계의 특징과 상호 교류, 흥망성쇠, 각 세계의 연결고리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지난 5,000년 동안 세계사의 주요 무대는 육지→바다→하늘로 변화해왔다. 세계는 유라시아에서 오랜 세월 지속된 '육지'의 역사, 대양(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이 다섯 대륙을 연결한 '바다'의 역사, 항공망이 연결하는 '하늘'과 인터넷의 가상공간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역사 순으로 크게 바뀌어온 것이다. (241쪽)

저자는 각각의 공간에서 패권을 주도한 대표적인 세력으로 몽골 제국(육지), 영 제국(바다), 미국(하늘)을 꼽는다. 물론 그 긴 역사 속에는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나라의 흥망성쇠가 있었다. 그 수많은 제국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우연의 연속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세계사를 전환 시키는 세력이 반드시 대국이었던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약 1만여 년 전 인류가 농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보리' 재배 과정도 우연히 발견된 '결함 보리' 덕분이고, 유라시아의 건조 지대가 세계의 전부인 줄 알고 살던 인류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비롯한 광대한 바다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카리브해를 '중국의 바다'라고 생각했던 콜럼버스의 오해로 스페인과 유럽의 세력이 신대륙으로 뻗어 나가기도 했다.

현재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압도적으로 강한 공군력을 바탕으로 '하늘의 패권'을 거머쥔 미국이 항공 산업에서 IT 산업으로 옮겨가, 거대 기업이 된 GAFA(Google, Apple, Face book, Amazon)를 통해 경제 패권을 재편하고 있다. 여기에 시진핑 국가 주석 체제의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고 새로운 패권국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 하는 중이다.  

하지만 <패권 쟁탈의 세계사>의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 그리고 전 세계를 연결하는 '일대일로'를 밀어붙이고 있는 시진핑의 야심을 경계하며 '패권국'의 자격과 역할을 강조한다.
 
패권을 장악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다수에게 지지를 받고 전쟁을 막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책임을 다하는 역할과 같다. 자국의 세력 강화, 또는 도전하는 자세만으로 패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고 기여하는 점이 없다면 세계를 천하로 인식하는 중국식 내셔널리즘이 패권 장악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 '미국 제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239쪽)

그렇다면 현재,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앞으로 쓰일 세계의 역사에서 '코로나19'가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세계사의 패권 이동 과정과 특징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미야자키 마사카쓰의 <패권 쟁탈의 세계사>를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매우 쉽고 친절하게 쓰여 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저자가 독자의 흥미를 끄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지루해질 만하면 미끼를 던지듯 흥미로운 주제를 던져 집중하게 만들고, 군데군데 역사 속 숨겨져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적절히 배치해 놓는 노련함도 엿볼 수 있다. 수십 년간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쳐 온 저자의 내공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미야자키 마사카쓰의 이 책은 최근의 미, 중 패권 쟁탈전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물론 세계사 공부를 시작하려는 입문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랜만에 즐겁게 완독한 세계사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 육지, 바다, 하늘을 지배한 힘의 연대기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은이), 박연정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20)


태그:#패권쟁탈의세계사, #미야자키마사카쓰,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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