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벌써 6월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에서 봄을 지나 여름이 왔다. 올해는 유난히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다. 늦은 아침밥을 챙겨 먹고 나니 벌써 10시다. '아, 벌써 열 시? 오늘도 과일 아저씨가 오셨나?' 설거지를 하다가 창문 밖을 내다봤다. 역시 오늘도 변함없이 익숙한 트럭 주위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옆집 아저씨도 있고 늘 보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신다. 오늘도 네다섯 명 정도가 트럭 둘레에 모여 과일을 고르고 있다.  
 
 집 앞 풍경 -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과일 트럭 아저씨네
 집 앞 풍경 -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과일 트럭 아저씨네
ⓒ 김세윤

관련사진보기

 
트럭에서 과일을 파는 우리 동네 과일 아저씨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쯤 우리 집 앞 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한 바구니, 한 박스 당 5천 원에서 만 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하고 대중적인 과일이 대부분이다. 겨울엔 딸기나 사과, 봄가을에는 귤, 오렌지, 바나나, 지금 같은 때에는 수박, 방울토마토, 참외 같은 제철 과일들을 트럭에 잔뜩 쌓아 놓고 판다.

경매 시장에서 적당한 상품을 구해오는 기술이 있으신 건지 마트에 비해 가격이 1/2~2/3 수준으로 저렴하다. 조금 못생겼거나, 많이 익은 것, 즉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못 생겼다고 맛이 없는 건 아니니까 늘 찾는 단골손님이 많다.

오늘 살 수 있는 과일은 무엇인지 전화로 묻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나 오토바이, 승용차를 이용하여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한 트럭 가득 과일을 채워오지만, 두세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동이 난다.

그러니까 과일 아저씨는 우리 집 앞 골목이 매장이자 일터인 셈이다. 비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가릴 것 없이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신다. 좀 더 괜찮은 품질의 과일을 먼저 고르기 위해 10시가 되기 전부터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나눈다.
 
 집 앞 풍경 -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과일 트럭 아저씨네
 집 앞 풍경 -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과일 트럭 아저씨네
ⓒ 김세윤

관련사진보기

 
과일 아저씨 덕분에 우리 집 앞은 만남의 광장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살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야 하지만, 나는 창문 밖으로 과일의 종류를 확인한 후, 먹고 싶은 과일이 있을 때 나가도 된다. 레드망고나 스위티자몽 같은 특별한 과일은 없지만, 마트보다 두 세배는 저렴한 트럭 아저씨네 과일에 마음이 간다.

이곳에 살게 된 지 십 수년이 훌쩍 지났으니 과일 아저씨가 우리 동네에 터를 잡은 지도 최소 5년 이상이 되었을 거다. 이제는 이웃사촌 같고 지인 같다. 가끔 비가 오거나 눈이 와 아저씨의 출근이 늦을 때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지난주엔 이틀 정도 아저씨를 만날 수 없었는데, 혹시나 건강이 안 좋아지신 건 아닌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다행히도 6월의 첫날 월요일 아침에 아저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적당한 과일을 구할 수 없어서 오지 못했다는 안부를 주고받았다.  

환갑이 훨씬 지난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여전히 5시 반에 일어나 명상을 하신다. 예전에는 108배를 하셨지만, 무릎 관절이 시큰거려 요즘은 명상만 하는 눈치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두 시간씩 반려견과 산책을 하신다.

매일 같은 시간 단순한 활동을 반복해야 한다는 게 귀찮고, 지루하고, 답답할 것 같은데 명상하듯 보내는 산책 시간이 즐겁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서 매일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일들, 농사를 짓고 개와 닭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신다.

자존감이 내려앉아 무기력해질 때면 남대문 시장을 다녀온다. 시끌벅적하고 정신없지만,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시장을 들를 때마다 즐겨 찾는 밥집에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아이스커피 한 잔을 들고 돌아오면 지금 하는 고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다시 기운 낼 용기도 채워진다. 요즘은 외출이나 외식이 어려우니 뭐든 어디든 함부로 나서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여기서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고.  

주위 사람들의 꾸준함과 성실함은 이따금 게을러지고 싶은 나를 다독이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만든 쳇바퀴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허덕이는 나날을 보내다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창문 밖 풍경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오늘도 어제처럼 알차게 채우며 살아가면 된다. 힘든 순간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찾아온다. 내일도 별일 없는 하루가 되겠지만, 이보다 더한 고난과 시련이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니 이만하면 버틸 수 있지 않은가. 어떤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면 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브런치와 buk.io(북이오)의 채널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쓰기를 즐깁니다. 사는 이야기, 생각과 일상을 기록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그저 씁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