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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 [편집자말]
 적어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누구라도 아이 낳고 기르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아이를 향한 사랑이 시험에 들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적어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누구라도 아이 낳고 기르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아이를 향한 사랑이 시험에 들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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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지면 배탈 설사 환자들이 부쩍 늘어난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동네의원에 찾아왔다. 그 나이면 대부분 엄마와 함께 오는데 혼자 왔다. 필자는 씩씩한 그 어린이가 마음에 들었다. 아이는 전날부터 배가 살살 아프고 화장실에 자주 간다고 했다. 다행히 열은 없었고, 배를 눌러보니 압통도 심하지 않았다.

바이러스성 장염일 가능성이 컸다. 바이러스성 장염은 장에 생기는 감기와 같다. 특별한 치료제는 없고, 잘 먹고 푹 쉬면 대개 일주일 안에 낫는다. 화장실 가는 것이 힘들어서 환자들은 흔히 물이나 식사를 끊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장 점막이 빨리 회복되려면 물과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필자는 진찰을 마치면서 어린이 환자에게 습관적으로 한 마디 건넸다.

"엄마한테 가서 죽 끓여달라고 말씀 드려."
(이때 필자는 잘못 설명했다. 장염에는 죽보다 보통 식사가 더 좋다.)

의젓하던 어린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는 말없이 처방전을 받고는 나갔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의아해진 필자는 안내데스크로 가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 아이 좀 이상하네요. 갑자기 왜 저러죠?"
"쟤, 시설에 사는 아이예요."

일찍 철든 아이들 

필자는 종종 지방에 있는 동네의원에서 진료한다. 서울에서 벗어나면, '시설'에 사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하루는 전자 차트 프로그램에 어린이 환자가 연달아 올라온다. 그런데 그들의 성씨가 모두 다르다. 시설 지도교사가 아픈 아이들을 한꺼번에 데려온 것이다. 3살 한 명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두 명이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지도교사는 이런 일에 익숙해 보였다. 그녀는 가장 어린 환자를 진찰용 의자에 앉히고, 나머지 두 명은 대기용 의자에 앉게 했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3살 어린이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해 주었다. '시설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필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 아이들은 너무나 달랐다.

엄마들이 데려오는 아이들의 경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있지 못한다. 진료실에는 신기한 물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놓인 청진기나 설압자에 손을 대거나, 인체 모형이 신기한 듯 '엄마 이게 뭐야?'라고 묻기도 한다. 간호사가 '그거 만지면 안 돼요'라고 엄한 목소리를 내도 잠시뿐이다.

하지만 시설 아이들은 진료실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안다. 초등학생 두 명은 의자에 얌전히 앉은 채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3살짜리는 어떨까?

감기 증상이 있는 어린이의 경우, 보통 청진기로 숨소리를 듣고 귀, 목, 코 순서로 진찰한다. 목과 코를 나중에 보는 이유는, 어린이 환자 대부분이 질색하기 때문이다. 목구멍으로 설압자를 집어넣어 혀를 누르거나, 비경으로 콧구멍을 벌린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온몸을 비튼다. 콧물을 빼기 위해 콧구멍에 흡입기를 대기라도 하면 그들은 자지러진다. 엄마를 바라보며 구해달라는 듯 눈물을 뚝뚝 흘린다. 엄마나 의사가 아무리 설명해도 본능적 두려움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때 엄마들은 혼을 내기도 하고, 잘 끝내면 뭔가 사주겠다고 달래기도 한다. 3살 어린이는 대개 엄마가 무릎에 앉혀서 팔다리를 꽉 잡아야 진찰이 가능하다.

하지만 시설에서 온 그 아이는 달랐다. 겁먹은 표정이었지만 꼼짝하지 않고 진찰을 견뎠다. 지도교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는 길에 지도교사가 그 아이를 한 번쯤 꼭 안아주었을까.

아이 키우기 포기하는 부모들

전국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는 약 1만2000명이나 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보호자로부터 버림받은 18세 미만의 아이들은 모두 4503명이었다. 과연 어떤 이유로 엄마나 아빠가 아이 키우는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두 아이의 아빠인 필자로서는 그들의 마음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단지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가부장제 문화와 성차별이 강하게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혼인 이외 출산은 여전히 금기다. 사회적 죽음에 대한 공포는 육체의 죽음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더 크다. 사회적 죽음은 종종 '경제적 이유'와 교차한다. 사회적 죽음은 '먹고 살 방편'으로부터 고립을 포함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일치 결정을 적극 환영했다.

그런데 모두가, 그래서 앞으로 태어날 아기도 자기 몫으로 기본소득을 받는 사회라면 어떨까? (물론 기본소득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성평등을 단번에 이룰 수 있는 묘책도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운동은 여성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하고자 한다) 시설에서 사는 어린이들은 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의 극단적 예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사실 대한민국에서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여성 1명이 평생 평균 1명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0점대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가 유일하며, 세계 최저 수준이다. 또 이런 추세가 지속할 경우, 우리나라 인구는 2028년부터 자연적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인구 소멸국가' 1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국인은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지난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성인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를 발표했다. '출산하지 않는 주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미혼과 기혼 응답자 모두 '경제적 불안정'을 먼저 꼽았다(미혼의 44.7%, 기혼의 37.4%). 

우즈베키스탄 엄마의 남자친구

필자가 아르메니아에서 근무할 때 한 가정에 초대받았다. 우즈베키스탄인 여성과 인도인 남성은 구호 현장에서 만난 사이였다. 그들은 결혼한 부부는 아니었지만 활동가들 사이에서 가족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여성에게는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는 인도인 남성의 이름을 부르며 잘 따랐다. 그 커플은 한참 말을 배우는 아이가 영어, 러시아어에 아르메니아어까지 뒤섞인 말을 배우고 있다며 걱정 반 웃음 반이었다. 분명 사랑이 넘치는 그래서 평범한 가정이었다. 필자는 그 가정의 '무겁지 않음'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그런 가정에 초대받을 수 있을까.

필자는 인구 감소나 한국인 소멸에는 관심이 크지 않다. 그보다는 사회의 편견과 경제적 불안정에서 벗어나, 누구나 자유롭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꾸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적어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누구라도 아이 낳고 기르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아이를 향한 사랑이 시험에 들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동네의사와 기본소득'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당원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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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본소득당 공동위원장 (전)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한국 최초 에볼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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