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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식을 마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고 있다.
 취임식을 마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고 있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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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 날

1993년 2월 25일은 제 14대 대통령 취임식 날이었다. 김영삼은 예삿날처럼 오전 5시 10분 상도동 주민 100여 명과 새벽 조깅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조깅을 마친 뒤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했다. 청와대로 떠나기에 앞서 김영삼 내외는 전날 마산에서 올라 온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항상 국민의 편에서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라."
 

아버지의 말씀을 뒤로 한 채 김영삼 내외는 30년 가까이 산 상도동 집을 떠났다. 먼저 국립묘지를 참배한 다음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 집무실에서 황인성 국무총리, 이회창 감사원장, 천경송 대법관 국회임명동의 요청서에 서명을 한 뒤 여의도 국회의사당 취임식장으로 갔다.

김일성 주석에게 회담 제의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1993. 2. 25.).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1993. 2. 25.).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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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타는 열망으로 거룩한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안으로 나라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부정부패는 안으로 나라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부정부패의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곧 위로부터 개혁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꾸민 모두가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노력 없이 부정부패는 근절되지 않습니다.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 협력할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는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과 국가 사이에도 다양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김 주석이 참으로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듯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터놓고 민족의 장래를 의논해 봅시다. ..."
 
취임 연설을 하는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취임식 날 낮 12시,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등산로를 개방했다. 청와대에서 첫 집무가 시작된 날, 김영삼 대통령은 집무실 한쪽 모퉁이의 작은 방에 있는 초대형 금고를 떼어내라고 지시했다. 과거 청와대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오고갔는지를 알게 하는 금고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들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들고 있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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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1993년 2월 27일 첫 국무회의에서 김영삼은 솔선수범으로 재산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뒤를 이어 국무총리, 부총리, 감사원장 등 주요공직자 9만여 명의 재산등록을 의무화시켰다. 재산공개 과정에서 부도덕한 재산증식 혐의가 있는 인사는 여론의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다. 일부 인사는 정계를 떠나면서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이란 말을 뱉어 한동안 시중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첫 국무회의가 끝난 뒤 오찬이 있었다. 메뉴는 칼국수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말했다.
"청와대에서 점심하자고 불러 대단한 줄 알고 오셨겠지만 오늘 메뉴는 칼국수입니다." 

그날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칼국수에 또 한 번 놀랐다.
    
안가 철거

1993년 3월 4일, 김영삼은 과거 군사독재 정치의 대표적 상징물인 청와대 주변의 안가 철거 지시를 내렸다. 당시 청와대 주변 궁정동, 청운동, 삼청동 등 세 곳에 안전가옥이란 이름의 호화주택 12채가 있었다. 이곳은 대통령이 유흥을 즐기던 곳이었다. 그들은 재벌총수를 그곳으로 불러들여 정치자금을 상입받기도, 현역 군인을 불러서 술을 먹이고 돈을 주면서 사조직을 유지해 갔다.

김영삼 대통령 지시로 안가 12채를 모두 철거했다. 그런 뒤 무궁화동산으로 조성하여 서울시에 기증하기도 하고, 일부 안가는 원래대로 산으로 복구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초기 이러한 개혁 조치들로 국민들의 지지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무려 90%가 넘는 지지도를 보였다.

김영삼은 그제야 다시 회심의 개혁카드를 꺼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인왕산을 개방하자 시민들이 '야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인왕산을 개방하자 시민들이 "야호"를 외치고 있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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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김영삼 회고록> 등 수십 권의 참고자료와 동시대 신문 및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썼습니다.


태그:#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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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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