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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모님은 한국전쟁 후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런 탓에 평생 농부로 고생하고 살았다며 자식들은 공부해서 대학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구해 자식들이 본인들보다는 덜 고생하며 사는 것. 아주 단순한 공식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공부하면 조금은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습니다.

부모님에게 '성공'은 경제적인 안정이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좋은 직장'이란 높은 급여를 받는 안정적인 직업이었고, 공부는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공부했던 이유도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 높은 수능 점수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상위 몇 %에 들기만 하면 이후의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는 서열화된 구조를 점점 더 강화시켰고 학교에는 끝없는 경쟁만이 남았습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도 자녀들을 소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수험 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같은 교육구조의 폐해를 개선하고자 수십 년에 걸쳐 교육당국과 의식있는 교사, 학부모들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변화를 체감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요즘 대한민국의 입시는 유아기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정도로 학생들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까지 경쟁이 확장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암담한 교육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요? 입시 위주 교육의 원인이 되는 대학 서열화 구조를 없애자, 학벌을 타파하자, 입시제도를 개혁하자, 획일적인 공교육 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학교, 혁신학교를 만들자 등 다양한 해법과 주장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가 가진 욕망을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자녀들의 삶에 대한 그림이 기존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떤 장치와 방법으로도 지금의 교육현실은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교육을 바라보는 철학이 바뀌어야 변화도 가능합니다.
 
 삶을 위한 수업 표치
 삶을 위한 수업 표치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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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훌륭한 교사라 평가받는 이들의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 <삶을 위한 수업>은 덴마크 저널리스트 마르쿠스 베른센이 쓰고,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우리말로 편역해 출간했습니다. 오 대표는 이 책의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삶을 위한 수업>을 읽으며 내가 바라는 자녀들의 삶과 교육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부모가 정말 걱정해야 할 것
 
"덴마크의 부모들은 자식의 연봉이나 직장의 안정성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걸 걱정합니다. '내 아이가 열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과연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244쪽)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삶을 관장하는 힘이죠. (중략) 진짜 무서운 것이 뭘까요?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어느 날 아침에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닐까요?"(100쪽)

자녀들이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고 할 때 기꺼이 그러라고 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만약 중학생인 자녀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할 때 부모들은 걱정이 앞설 것입니다.

실제로 아직 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미숙한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부모는 아이들이 직접 부딪혀 경험하도록 지켜보며 안내하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 한 대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던 한 지인이 자식들 학점 관리를 위해 부모들이 학교에 전화를 해대서 너무 힘들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대학생이 된 자식들까지 쫓아다니는 한국 부모들의 자식 걱정과 덴마크 부모들의 자식 걱정은 너무나도 대비됩니다.

자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관장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진정 자식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요.

왜 공부해야 하지?
 
 헤닝 아프셀리우스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우리는 지금 왜 여기에 앉아 있을까?"라고 물으며 왜 스스로 배워야 하는지 알게 하려고 노력한다.
 헤닝 아프셀리우스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우리는 지금 왜 여기에 앉아 있을까?"라고 물으며 왜 스스로 배워야 하는지 알게 하려고 노력한다.
ⓒ 이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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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반 학생들 모두에게 똑같이 높은 기준을 정해준다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이 패배자로 남지 않겠어요? 그 패배감이 아이들의 의욕을 빼앗을 거예요. (중략)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하나의 정해진 목적지는 없어야 합니다."(84-85쪽)
"한국의 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학생들만 좋은 교육을 받고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나머지 다수는 뒤처진다. (중략) 무언가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들의 능력 밖에 있다. 결국 지쳐 절망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16-17쪽)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입시라는 정해진 목적지와 그것에 부합하는 소수의 학생을 위한 교육.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합니다. 덴마크 뇌뢰 귐나시움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헤닝 아프셀리우스 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우리는 지금 왜 여기에 앉아 있을까?"라고 물으며 왜 스스로 배워야 하는지 알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지' 혹은 '좋은 대학 가야지'라는 이유 이외에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목적은 단 하나, 좋은 점수를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같은 학생들 일부만이 큰 고민 없이 이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왜 배워야 하는지 스스로 묻지도 않은 채로.

제대로 된 동기부여를 위한 이 물음은 비단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학생들과 교실에 함께 있는 교사들도 다시 물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왜 교사가 되었는지,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무엇을 목적으로 가르칠 것인지 말입니다.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 책임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는 덴마크를 벤치마킹해 보는 건 어떨까요.

국가와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입시제도 개혁, 대학평준화, 학벌우대 사회 해체 등 교육을 바꾸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교육, 특히 공교육에 과감히 투자해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학생, 교사, 부모 등 사회구성원의 교육에 대한 의식변화와 함께 일부에서 주장해오던 대학교까지의 무상교육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국가가 되면 좋겠습니다.
 
"덴마크는 초중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비가 무료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600개가 넘죠."(181)

우리 사회는 교육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요.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만 해도 약 19조 5천억원이라고 합니다(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 통계청). 대학교까지의 무상교육은 재원문제보다는 사회 전체의 의지 문제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별로 투자하는 교육비 지출만 기금으로 운용할 수 있어도 무상교육이 불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다녀야 하는 학교가 아니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얻는 과정을 배우고, 스스로 질문하고 선택하며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장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삶을 위한 수업'이 이뤄지는 학교를 만들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교육 현실에 있는 학생, 부모, 교사 모두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 오연호 (편역), 오마이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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