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점차 이겨낸다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야 하잖아."
"음... 그게 항상 가능한 건 아니잖아. 너야 진전이 있지만, 스티브는 변화가 없어."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진전이 있도록 노력을 본인이 해야지."
"성향의 차이야, 너는 좋겠다. 넌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앞으로도."


영화 <스텝 바이 스텝>(2018)의 주인공 벤(파블로 폴리)은 같은 재활센터에서 만난 친구 스티브가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술로 자학하는 행위를 한 채 발견되자 그의 행동을 이해 못한다. 하지만 또 다른 여자 친구 사미아(나일리아 아르준)는 벤의 말에 반박한다. 그 친구가 좌절하고 낙심할 수 있다는 사미아의 말이 벤에겐 낯설다. 벤은 끝까지 사미아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벤의 말은 정말 훌륭하다. 그는 희망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활센터 내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벤이 재활센터 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농담을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갑갑한 재활 과정을 견딘 것은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는 그 희망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장애인의 삶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인상적이게도 작품의 도입부는 보통 다른 장애 관련 영화의 분위기와 달랐다. 벤은 의식이 돌아왔을 때부터 매사에 낙천적이었다.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척추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발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데도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했으며 다른 장애인들에게 농담을 던지고 구김살 없이 행동을 한다. 선천적인 장애가 아니라 중도 장애를 얻게 되면 충격이 클 법한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연출가가 장애인의 현실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접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담은 영화기 때문이다.

영화가 재활의 목표에 따른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도입부를 이렇게 그렸음을 곧 이해하게 된다. 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근육 회복 속도가 빨라 희망적이다. 네 살 때부터 하반신 장애를 갖게 된 재활센터 친구 파리드(수피안 게라브)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빨랐으니, 벤에게는 더욱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밝은 표정은 곧 사라진다. 

그의 미소가 사라진 것은 재활 센터 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였다. 면담의 시작은 좋았다. 원장은 회복 속도가 빠르다며 호평했고 벤도 이를 인정했다. 이후 원장은 경쾌하게 벤에게 물었다. "내년에는 어떨 것 같아요?" 벤은 당차고 밝은 모습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속도라면 내년에 퇴원을 할 것이고, 체육 선생님이 될 공부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경기도 다시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긍정 마인드라니 더 격려를 해줘야 할 듯싶다. 하지만 원장은 순간 난처한 표정으로 "너무 앞서가지 말고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원장은 전혀 다른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한다. 뒤이어 원장은 더 직접적인 말을 한다. 더이상 예전에 하던 모든 운동을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절망스런 말에 벤의 표정과 태도가 일순간 바뀐다. 원장은 벤이 더 이상 없는 희망을 품게 하지 않았다.

원장의 의도는 무엇일까. 원장은 목표에 관해 분명하게 밝힌다. 즉 지금의 목표는 몸의 자율성을 회복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한다. 지금 나아지고 있는데 왜 운동을 못 하느냐는 것이다. 원장은 사고 후 몇 개월 동안 영양 공급을 못한 근육은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고, 운동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많은 운동선수들이 자율성을 회복했고 성과를 냈다고 말하는 원장. 벤은 그 말들이 그냥 귀에서 웅웅거릴 뿐이다.

비 내리는 쓸쓸한 밤 창밖을 보며 동료에게 벤은 말한다. 운동학으로 학위를 받고 싶었는데 불가능할 뿐이라고 그리고 부모님이 많이 실망하실 거라고. 그러자 동료는 말한다.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어쩌면 그는 슬픔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누르고 밝은 표정으로 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할 때 재활의 빠르게 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에 주변을 놀라고 자신도 성취감을 더욱 느꼈을 수도 있다.

재활센터 내 다른 사람들이 심각해 하거나 우울감을 느낄 때, 벤은 혼자 농담을 던지다가 지적을 받기도 했다. 스티브가 절망감에 몰래 알코올에 취해 넘어져 있던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벤은 이제야 그가 왜 그랬는지 느끼게 된다. 헛된 희망을 품고 열정적으로 나가는 것이 오히려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을 할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벤은 이후 재활센터 안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사소한 감정과 행동을 공유하게 된다. 자신이 본래 원하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고 현재 상태 그 자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재활의 목표다. 벤은 재활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봤던 반면에 원장은 자율성을 획득하는 단계라고 봤다. 사람의 몸은 한 번 큰 훼손을 당하면 원래대로 완벽하게 돌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벤처럼 재활 훈련이나 의학치료를 하면 원래 대로 돌아가는 것이라 당연시한다. 그런 상황에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하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감에 빠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앞서 원장이 언급한 자율성의 획득은 무엇을 의미할지 생각해야 한다. 자율성 획득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원래 몸이 목표로 하는 삶이 아니라 새로 적응한 자율적 몸에 따라서 목표를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원래의 목표대로 못할 때 좌절과 고통이 심화 된다. 벤이 체육 교사가 못되고 심지어 잘 하던 농구마저 못한다고 진단받았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목표 수정으로 벤은 목발에 의지해 몸의 자율성을 갖게 되었다. 그럴 때 그는 현실에 맞게 새로운 꿈을 갖고 성취하게 될 것이었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그 대목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그랜드 콥스 마라드 감독의 삶은 그러했다.

콥스 마라드 감독은 키 195cm의 농구 유망주였는데, 스무살 때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척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되었고, 혹독한 재활치료를 한다. 이것까지는 영화와 비슷하다. 이후 그는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 즉, 자유시의 역동적인 낭독 공연 분야에 전념했고, 음반 작업과 콘서트를 해나갔다. 1집 앨범은 70만 장 이상 팔려나갔고 프랑스의 권위 있는 음악상인 빅투아 드 라 뮤지끄(Victoires de la Musique)를 2번 받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본명 '파비앙 마소' 대신 무대 이름인 '그랜드 콥스 마라드'에서 엿볼 수 있다. 이는 프랑스어로 '거대한 아픈 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비록 자신이 원래 선호하던 체육 분야는 아니지만, 그는 예술 분야에서 엄청난 성취를 했다. 원상회복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현실 상황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자신의 자율성을 발휘한 것. 그래서 그의 성취가 소중한 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장애 예술 전문지 이미지(E美지) 2020년 봄호에 게재된 글.
장애인 영화 재활 목표 영화 ‘스텝 바이 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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