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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통반장 등에게 신문을 나눠주던 일명 계도지가 현재는 주민홍보지, 주민구독용 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 경남에서 전국 최초로 계도지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이후 전국에서 계도지 폐지 열풍이 불었지만 아직까지 서울에는 이 계도지 예산이 약 100억 원 규모로 집행되고 있다. 이중 은평구청은 서울에서도 가장 많은 계도지 예산 6억 2382만원을 올해 편성했다. 

이에 은평시민신문은 계도지 예산을 개혁한 지역을 찾아 계도지 폐지의 필요성과 그 이후 변화한 지역 언론 지형 등을 취재해 관언유착과 예산낭비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한다. 

기획취재의 첫 번째 방문지는 전국 최초로 계도지 예산을 없앤 경남이다. 경남에서는 2001년부터 계도지 예산이 사라졌고 2010년에는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를 만들어 이듬해부터 지역신문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경남방문에서는 당시 계도지 폐지운동에 앞장섰던 경남민언련 강창덕 이사와 계도지 관련 취재를 끈질기게 진행한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이사 그리고 경남도청 소통기획관실을 찾아 당시 상황과 현재 경남의 지역언론 정책을 취재했다. 이번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진행됐다...- 편집자 주


"경남에서 시작된 계도지 폐지운동 전국으로 확산되며 언론개혁 이끌어"
"지역 공론장 역할 하는 지역신문이 살아있어야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2000년 12월 6일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한 ('관언유착' 계도지 전면폐지) 기사
 2000년 12월 6일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한 ('관언유착' 계도지 전면폐지) 기사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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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언유착 계도지 관행, 시민과 언론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없애 

"지역 언론과 행정기관의 대표적인 유착고리로 지목돼온 '계도지(주민홍보지)'가 이제 경남에서는 영원히 사라지게 됐다."

2000년 12월 6일자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관언유착' 계도지 사라졌다> 기사 첫머리다. 기사에 따르면 1998년 울산광역시 5개 구·군청이 계도지 예산을 폐지한 데 이어 도단위 광역단체 중 최초로 경남에서 계도지가 사라졌다. 

계도지 관행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던 관언유착의 폐해였지만 경남의 시민사회와 지역언론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마침내 경남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2000년 10월 경남의 5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는 '계도지 폐지를 위한 경남시민연대'를 결성하고 행정정보공개운동, 단체장 면담, 주민혈세 지키기 등의 활동을 통해 계도지 폐지를 이끌었다.

당시 경남민언련 대표를 맡아 계도지 폐지 운동에 앞장섰던 강창덕 경남민언련 이사는 "당시 언론사의 갑질로 인해 공무원 사회에서 언론사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언론의 역할을 못하는 지역 언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관행을 끊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경영이 어려운 언론사 입장에서는 손쉽게 구독료를 확보할 수 있고 행정에서는 구독을 이유로 언론사를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구독료를 빼앗긴 언론사가 행정을 상대로 보복성 기사를 쏟아내지 않을까 하는 점도 단체장들의 발목을 잡았다. 강창덕 이사는 "계도지 폐지 이후 혹여 언론사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비판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계도지폐지운동 당시 경남도민일보 기자로 계도지 폐지의 정당성 관련 취재를 꾸준히 이어갔다. (사진 : 정민구 기자)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계도지폐지운동 당시 경남도민일보 기자로 계도지 폐지의 정당성 관련 취재를 꾸준히 이어갔다. (사진 :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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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는 당시 계도지 폐지 관련 기사를 가장 많이 쓴 기자였다. 김주완 이사는 "당시에는 연말이 되면 출입기자들이 공보실을 상대로 계도지 예산을 더 타내려고 온갖 로비, 공갈, 협박 등이 있었고 신생 언론사였던 경남도민일보에 계도지를 얼마나 책정해 주면 되겠는가 되묻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경남도민일보는 1998년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폐간된 경남매일신문을 6천여 명의 시민들이 시민주 방식으로 재건하면서 출발했다. 새로운 출발과정에서 참언론을 세우기 위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됐다.

계도지 예산을 받을 것인가를 두고도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언론개혁의 가치를 지키려면 받지 않는 게 옳지만 연간 억 단위의 수입을 포기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남도민일보는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계도지 예산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경남도민들에게 이 예산이 왜 문제가 있는지 알려나가는 연속기획 기사를 마련했다.

김주완 이사는 "1년 동안 계도지 관련 기사를 50여건 썼다. 정말 끊임없이 썼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계도지를 없애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2000년 11월 경남 20개 시·군 자치단체장으로 구성된 시장·군수 협의회는 "과거 어리석은 주민을 계도한다는 취재로 행정기관이 신문을 일괄 구입, 배포해온 관행은 지방자치시대에 맞지 않다"며 계도지 폐지에 전격 합의했다. 결코 허물어질 것 같지 않았던 계도지 관행이 자취를 감추는 순간이었다. 

경남도민일보는 2000년 12월 7일 계도지 폐지를 환영하는 논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70년대 군사독재정권이 국민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홍보용으로 출발한 계도지가 그 기능을 일찍이 상실했음에도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주된 이유는 관은 돈의 힘으로, 언론은 붓의 힘으로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으며 공생한 데 있었다. 양자가 공범이었다면 공짜구독자는 물론 수혜자였던 셈이며, 이런 연결고리의 흑막 하에서 언론이 제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이다."

김주완 이사는 "계도지가 폐지되는 모습을 보며 명분이 있고 여론이 있고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오던 계도지라는 적폐를 언론과 시민단체가 연대해서 없앴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경남의 계도지 폐지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서울 민언련에서도 계도지 폐지를 전국사업으로 채택하며 경남의 지역 언론 운동이 전국 이슈가 등장하며 각 지역의 계도지 예산 폐지를 이끌었다. 

기자실 개혁으로 이어진 언론 개혁운동
 
강창덕 경남민언련 이사. 계도지 폐지운동 당시 경남민언련 대표를 맡아 전국 최초로 계도지 폐지를 이끌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강창덕 경남민언련 이사. 계도지 폐지운동 당시 경남민언련 대표를 맡아 전국 최초로 계도지 폐지를 이끌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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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계도지 폐지운동은 기자실 개혁운동으로 이어졌다. 지역 언론 개혁운동의 시작이 계도지 폐지였다면 그 다음 주자는 비리의 온상이었던 기자단과 기자실이었다.  

김주완 이사는 "당시 경남도민일보는 유착의 온상이 되는 기자단에는 합류하지 않고 공적으로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기자실은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은 기자단이 투명해졌지만 20년 전에는 기자단을 통해 공공연히 촌지수수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기자들이 경남도민일보의 기자실 출입을 막기도 하고 촌지도 나눠주겠다는 회유를 벌이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당시 기자실 폐지 운동에 대해 강창덕 경남민언련 이사는 "기자실을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바꾸고 기자 지정석도 없앴다. 누구나 브리핑룸을 예약하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동안 기자실을 폐쇄적으로 이용하던 기자들의 반발이 가장 심했다"고 말했다. 

그간 중앙지기사실과 지방지기자실로 따로 분리돼 있던 것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프레스센터로 거듭났다. 전면에는 브리핑 탁자가 설치되고 누구든 출입자체를 제한하는 일도 사라졌다. 기자실의 변화는 은밀히 주고받던 촌지를 사라지게 하고 '당고'라고 하는 기사담합도 사라지게 했다. 

기자실 개방은 시민단체에도 변화를 주었다. 단체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거나 보도자료만 보내는 게 아닌 브리핑룸에서 여는 기자회견이 가능해졌고 시민단체도 제대로 논리를 갖추지 못한 경우 기자들의 호된 검증을 받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기자실 개방이 지역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한 셈이다.
 
경상남도의회가 16일 전국 최초로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를 통과시켰다. 사진은 9월3일 제281회 경남도의회 제1차 정례회 모습(경남도의회 제공)
 경상남도의회가 16일 전국 최초로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를 통과시켰다. 사진은 9월3일 제281회 경남도의회 제1차 정례회 모습(경남도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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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수성 살린 지역 언론 지원 조례 마련

극심한 중앙집권과 서울집중의 언론구조를 개선하고 지역의 건전한 공론의 장을 마련을 위한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이 2004년 국회를 통과했다. 지역신문특별법은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기반을 조성해 여론의 다원화, 민주주의의 실현 및 지역사회의 균형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건강한 신문사는 살아남아 지역 언론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경남에서도 지역신문발전지원을 위한 조례가 제정됐다.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일간지와 주간지의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 6개월간의 회의를 통해 조례 초안을 만들었다. 문체부의 지역신문 발전지원과 중복되는 사업은 최소화하고 경남지역의 특수성을 찾아 지원 내용을 마련했다. 

현재 경남은 경남에 등록된 일반일간신문과 일반주간신문을 대상으로 12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필수조건을 맞춘 언론사를 대상으로 우선지원사업 기획취재지원, 인턴사원 지원 등 역량강화 사업과 지역주민 참여,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지역성 구현사업을 한다. 우선지원대상사 선정은 '경영건전성, 취재윤리강령 준수, 종사자임금체불, 공익사업 실시'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우선지원사업에 선정되지 않는 지역 언론은 다시 일반 공모를 통해 공익광고료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열악한 지역신문 재정에 도움을 주어 지역신문이 역량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우선지원대상사 선정 과정에서 행정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를 배척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 경남도청 소통기획관실 김창환 사무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지원대상사를 선정하고 있다. 행정이 개입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오히려 신문사 편집의 독립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편집의 독립성이 보장된 신문사가 지역 문제를 잘 드러내고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는 동기부여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계도지 예산 100억원대를 집행하고 있는 점에 대해 강창덕 이사는 "계도지 예산은 단체장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 계도지 예산을 들여 단체장을 홍보하는데 그게 유용하게 쓰일까? 아니다. 예산대비 얻는 이익은 극히 일부분이다. 한 자치구에서라도 물꼬를 트면 1~2년 안에 없앨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이사는 "통반장 등에게 줄 수 있다는 조례 내용은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구청장이 제3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돈을 우회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도지는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금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김주완 이사도 "관언유착의 고리인 계도지는 없어져야 한다"며 "단체장 입장에서는 언론을 길들이는 수단이 되고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계도지를 활용할 수 있다"며 계도지 폐지 입장을 밝혔다. 단체장의 계도지 활용은 언론 본연의 역할인 견제와 비판보다는 행정에 종속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남 지역신문발전 지원 조례 내용 중
 경남 지역신문발전 지원 조례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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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길들이기 홍보비 지출 여전히 문제 

계도지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남는 숙제가 바로 홍보비 지출이다. 지자체 홍보예산이 사실 단체장들의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홍보비 예산이 의회를 통과하고 나면 이후 구체적으로 집행되는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강창덕 이사는 "계도지 폐지 이후 홍보예산이 증액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지역신문의 경우 해당 자치단체 의존도가 높다. 각종 축제나 행사 등에 쓰이는 홍보비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지역 언론의 수입 대부분을 지자체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개선시킬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주완 이사도 "어느 신문사에 얼마가 갔는지 어느 방송사에 얼마가 집행되는지는 단체장 마음이다. 우호적인 곳에 많이 주고 비판적인 곳은 빼버리고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용도로 홍보비 예산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역주민들이 이런 실태를 알고 관련 예산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잣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신문법에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자치단체장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 홍보예산도 지역신문법에 따라 지원조건에 해당하는 신문사를 우선으로 하고 그 외 신문사는 나름의 자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공동체 발전 위해 지역신문 반드시 필요

종이신문 대신 온라인신문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 들어선 지 한참이다. 새로운 뉴미디어 시대에 지역신문은 여전히 유효한가? 지역신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김주완 이사는 "어떤 시민은 지역신문 하나가 시민단체 몇 개를 보탠 것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지역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지역신문이 살아있어야 그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지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강조한다. 지역신문이 아니면 지역의 공론장 역할은 누가 할 수 있는가하는 주장이다.  

강창덕 이사 역시 "건강한 신문사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로 경남의 지역언론지원조례도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이어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선정한 우선지원대상사는 문체부가 인정한 언론사다. 한마디로 KS 마크를 달아준 건데 다른 신문사와 똑같은 선상에서 지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지역신문이 나아갈 길에 대해 김주완 이사는 "지역신문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건강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과 접점을 넓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민과 언론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지역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이런 언론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언론개혁도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계도지폐지, #지역언론, #서울, #경남,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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