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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3년 간 금형세척 업무를 맡은 A씨. 하지만 2008년 2월 현대자동차로 전직한 후 업무 6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사망한다. 전 직장이었던 기아차에서 벤젠이라는 화학물질에 노출된 게 문제였다. 

2013년 근로복지공단 산하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도 "A씨가 최소 15년간 벤젠에 노출됐다, 질병과 벤젠의 인과관계가 분명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그해 근로복지공단은 A씨 유가족에게 1억 8500여 만 원을 지급했다.

"부모찬스" vs. "산재유족 구제 조항"
 
조합원이 산업재해로 사망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는 직계가족 1인에 대하여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한다.

A씨가 소속됐던 기아차·현대차가 노조 맺은 단체협약 내용 일부다. 이후 A씨 유가족(원고)은 협약에 따라 기아차·현대차(피고)에게 A씨의 직계 자녀를 채용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사측에서 해당 협약이 법적으로 무효하다는 입장을 내자, 유가족은 관련 내용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맡긴다. 

과연 A씨 유가족은 단체협약에 따라 산재 유가족으로서 '특별 채용' 기회를 받을 수 있을까?
 
 (서울=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설치된 가림막과 마스크가 눈길을 끈다. 2020.6.17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설치된 가림막과 마스크가 눈길을 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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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대법원에서는 위 내용을 두고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공개변론이 진행됐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산재 유족 특별채용 노사 협약' 규정이 법적으로 유효한지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현장에는 노동법 전문가들도 참석했다. 원고(A씨 유가족) 측 참고인으로는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피고(기아차·현대차) 측 참고인으로는 이달휴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먼저 원고 측은 노사가 맺은 규정일 뿐더러, 사회 공정성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 배려 측면에서 유효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피고 측은 '사용자(회사)의 채용계약을 현저하게 제한한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회의 균등을 해친다'며 단체협약의 무효를 주장했다.

[논쟁 ①] 채용 공정성에 어긋난다?

"기아차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3548명을 채용했다.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채용한 산재 유족은 16명에 불과하다. 비교하면 산재유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0.5%도 되지 않는다. 사용자 채용의 자유를 제한한 정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채용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원고 측 변호인의 입장이다. 이어 원고측은 "단체 협약은 노사의 분쟁 해결방식으로 도입된 것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며 "(일부) 여론을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으로 치환하고, 이를 근거로 산재 특채 조항을 무효화 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산재 유족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양 담당하는 가장의 사망은 유족들에게 큰 사회적 부담을 초래한다, 산재유족 채용은 산재 사망으로 인한 (사측의) 소득상실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피고 측은 "지난해 기준 청년 체감 실업률이 23%에 달한다"면서 "산재유족이 고용세습으로 채용되는 것은 '부모 찬스'를 이용하는 것, 양질의 일자리를 대물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5년 전 노사가 합의했다는 이유로 고용세습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청년실업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논쟁 ②] 단체협약 만든 25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피고 측은 "단체협약이 만들어진 지 25년이 지났다"면서 "(하지만) 이 사건 단체협약이 도입될 당시와 달리, 현재는 일자리 하나하나가 중요해지고 있다, 한 자리마다 경쟁하는 상황이기 대문에 채용 공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원고 측은 "25년 동안 12번 있었던 교섭 과정에서도 관련 내용을 빼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해왔다"면서 "이제 와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인 만큼, 피고 기업들은 관련 법안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교섭을 통해 이를 철회할 수도 있었다"라며 "하지만 교섭 절차 없이 이것을 법원 재판으로 끌고 와서 사회에 반하는 내용이니 무효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세계적 기업이 산재 유족을 상대로 기본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논쟁 ③] 산재 유가족 특채는 '사회적 혜택'이다?

피고 측은 "부모의 조합원 지위는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얻어지는 사회적 신분"이라며 노조에 가입됐다는 이유로 노사 협약에 따라 산재 유가족이 특별 채용되는 것은 "청년 구직자를 차별하는 일이다. 그리고 고용세습 조항은 헌법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 측은 "산재유족 보호를 위해서는 금전 보상 등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굳이 채용을 강제하는 것은 보충성의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원고 측은 피고 측이 산재 유족을 '사회적 신분'이라고 칭한 것에 대해 "산재 유족을 사회적 신분으로 보는 것은 사회적 차별과 사회적 (재난에 대한) 개선조치를 구별하지 못한 견해"라며 "(단체협약은) 산재유족에게 닥친 위험을 구제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빈곤이 확대되고 산재가 증가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공정의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사건의 단체협약 조항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 공정의 관점에 부합한다. 청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심 2심 패소한 유가족... 대법원 결정 주목

앞서 원심은 피고(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사용자 채용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반하며, 산재 유족의 생계보장은 금전 지급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관련 협약은 무효라는 판단이다. 원심은 관련 협약이 '민법 제 103조가 정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도 했다.

이번 사안이 대법원 전원합의체까지 오른 만큼, 향후 대법원의 결정과 관련해 노동계와 재계도 주목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산재유족 특별채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단체 협약을 일률적으로 반사회질서 행위로서 무효라고 볼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민주노총은 "현재 체결된 단체 협약 중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 그 유효성을 인정하더라도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은 사용자의 채용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채용의 공정 내지 기회 균등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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