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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이 '고전'이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셰익스피어야말로 '고전' 중에 '고전'이다. <햄릿>, <리어 왕>, <한여름 밤의 꿈> 심지어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그 어느 것도 읽어본 적 없으니 말이다.

십 년 넘게 매일 책을 읽으면서도 이제껏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유명해서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여기저기서 수없이 보고 들은 탓에 줄거리도 대충 알고 있고, 때문에 한 번도 읽지는 않았지만 왠지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템페스트>,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문학동네(2010)
 <템페스트>,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문학동네(2010)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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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며칠 전 갑자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게 된 계기는 특별할 게 없다. 책장을 훑어보다가 언제 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책장에 떡 하니 꽂혀 있었고, '이걸 언제 한 번 읽긴 읽어야 하는데…' 하며 책을 꺼내 들고 이리저리 펼쳐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마침,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아르테 출판사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셰익스피어를 읽을 절호의 기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셰익스피어x항광수>, 황광수 지음, 아르테(2018)
<템페스트>, 윌리엄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문학동네(2010)
 <셰익스피어x항광수>, 황광수 지음, 아르테(2018) <템페스트>, 윌리엄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문학동네(2010)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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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떤 책과의 만남은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하는데, 그게 또 독서의 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읽게 된 책은 오래도록 특별하게 기억된다. 역시 주야장천 책을 사들인 보람이 있다. 사놓으면 언젠가는 읽게 된다. 소설가 김영하가 말했듯,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책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서점과 도서관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처럼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도 읽기 전에는 '세상에 이것 말고 재미있는 것들이 쌓여 있는데 굳이 지금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의외로 재미가 있다. 단순하지만 흥미진진한 내용 안에 인간의 본성과 욕망이 절묘하게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유머가 있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의 유머와 언어유희는 온라인 댓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소위 '드립'이라고 하는 젊은 세대의 언어유희에 뒤지지 않을 만큼 기발하고 재미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안에 2000여 개의 '신조어'를 만들어 쓸 만큼 뛰어난 언어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단다. 지금도 영어권 국가에서는 그가 만든 구절들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고 하니,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의 작품 속 표현들이 얼마나 '신박'하게 느껴졌을까!

1611년 11월 1일에 초연된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가 은퇴 후 낙향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지막 작품인 만큼 <템페스트>에는 셰익스피어가 꿈꾸는 이상 세계의 모습과, 문학과 예술을 향한 사랑, 그리고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까지 은퇴를 앞둔 노작가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밀라노의 대공 푸로스퍼로는 동생 앤토니오에게 대공 지위를 찬탈 당하고 딸 미랜더와 함께 밀라노에서 쫓겨나 무인도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12년 전, 허름한 보트에 실려 망망대해에 버려지듯 쫓겨난 푸로스퍼로와 미랜더가 바다에서 죽지 않고 무인도까지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자한 노대신 곤잘로가 식량과 옷 그리고 푸로스퍼로가 아끼던 마술 서적들을 몰래 챙겨준 덕분이었다.

푸로스퍼로 부녀가 다다르게 된 무인도는 예전에 마녀 시코랙스가 살던 곳으로, 시코랙스는 끔찍한 괴물 캘리밴을 낳았고, 정령 에어리얼을 나무속에 가두어놓고 노예로 부렸다. 푸로스퍼로는 섬에 정착하여 캘리밴을 하인으로 부리고, 갇혀 있던 에어리얼을 구해주었다. 자신을 구해준 보답으로 에어리얼은 푸로스퍼로를 주인으로 모시며 그의 곁에서 심부름을 하며 그를 돕는다.

그러던 어느 날, 푸로스퍼로는 자신을 쫓아낸 동생과 나폴리의 왕 일행이 튀니스에서 귀국하는 항해 길에 있음을 알게 된다. 드디어 그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여긴 푸로스퍼로는 정령 에어리얼의 도움으로 왕의 일행을 자신이 살고 있는 무인도로 이끈다. 그러나 푸로스퍼로는 자신을 버린 동생과 자신의 왕국을 차지한 알론조 일행을 용서하고, 오랫동안 몰두한 마술까지 버린다.
 
푸로스퍼로 – 비록 그자들이 나에게 저지른 큰 죄는
나의 골수에 사무치나, 나는 고매한 이성으로써 분노를
참고 있는 것이다. 더 귀한 행동은 복수에 있기보다는
용서의 미덕에 있는 것이다. 그들이 뉘우치면 이때까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지금껏 이어진 나의 뜻은 더 이상
적의에 차지 않을 것이다. 에어리얼아, 가서 그들을 풀어주어라.
나는 나의 마술을 깨고 그들의 정신을 회복시켜서
본래의 그들이 되게 하겠다. (112쪽)

이렇듯 줄거리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비유와 은유 속에 숨은 뜻을 헤아려보면 셰익스피어가 말년에 쓴 이 작품이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평생 37편의 희곡, 150편이 넘는 소네트를 비롯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셰익스피어에게 문학과 예술은 푸로스퍼로의 '마술'과도 같았을 것이다.

평생 '마술'을 연마하듯 '문학'에 골몰하고, '마술봉'과도 같은 '펜'으로 현실 세계의 부조리를 풍자하고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던 셰익스피어에게 문학의 가치와 효용은 '관용'과 '용서', '화해'에 있었던 것일까.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관용과 화해가 이루어지는 그날에서야 비로소 문학은 그 쓸모를 다 하는 것이라고 셰익스피어는 생각했을까.

용서와 화해라니, 더구나 용서받음으로써 죄를 뉘우치고 본래의 선한 모습을 찾는 인간이라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그런 건 그야말로 문학에서나 가능한 일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책에서 본 따뜻하고 좋은 것들을 내가 사는 세상에서도 보고 싶다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다. CBS 라디오 피디 정혜윤의 말처럼, 결국 나도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타인'의 존재를 믿고 싶은 것이다. 셰익스피어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문학을 하는 이유 역시 이와 같은 마음 아닐까.
 
책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유를 댈 수 있고 책은 넘쳐흐를 만큼 나를 사랑해 주었지만 책에서 본 좋은 것을 세상에서 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이 세상에 좋은 것은 결국 우리 안에 다 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타인들은 존재하고, 나는 그것을 찾아내서 결국은 '우리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잘 전해야 했다. 운명에 맞설 나의 마술적 주문은 "지옥 같은 세상에서 지옥 같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내라"였다. (69쪽, <아무튼 메모>, 정혜윤 지음, 위고(2020))

템페스트 (무선)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은이), 이경식 (옮긴이), 문학동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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