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크라(오른쪽)는 큰 돈을 벌고 싶어서 돈을 주고 태국으로 온다. 파인애플 공장에 갈 줄 알았지만 실제로 온 곳은 생선잡이 배였다.

차크라(오른쪽)는 큰 돈을 벌고 싶어서 돈을 주고 태국으로 온다. 파인애플 공장에 갈 줄 알았지만 실제로 온 곳은 생선잡이 배였다. ⓒ 영화사 그램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또래들이 학교에 갈 때, 땀을 뻘뻘 흘리며 포대를 옮겨도 제대로 된 보상이 없다. 아빠는 다그칠 뿐이다. "맨날 죽어라 일하면 뭐 해요. 어차피 한 푼도 못 받을 텐데." "배불리 먹여주고 재워주잖아." 14살 소년 차크라(삼 행)가 가족 몰래 태국에 가기로 결심한 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솔깃한 이야기를 을은 게 계기. "태국은 어때?" "한 달 일하면 8000밧(태국 화폐 단위)은 벌 수 있어."
 
브로커에게 줄 돈이 없었다. 차크라는 첫 월급을 까는 것으로 하고 외상으로 해달라고 했다. 브로커는 파인애플 공장으로 간다고 했다. 어둠을 뚫고 달려와 도착한 곳. 파인애플 통조림 하나 안 보이는데 덩치 큰 사내가 한 명 있다. "너희는 배 타고 공장 갈 거야." 공장이 아니라 바다였다. 육지에서 배로 갈아타는 차크라. 배 위의 그물이 풀리며 생선이 쏟아진다. 차크라와 사람들이 어리둥절 서있으니 "일해!"라며 선장의 욕설이 시작된다. 어두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영화 <부력>(감독 로드 라스젠)의 초반부다. 차크라가 배에 입성하는 순간, 그렇게 노동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믿을 수 없는 광경들. 착취, 협박, 구타, 배고픔… 그리고 죽음까지.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 위, 배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폭력.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인간미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만큼은 배는 노동의 현장이 아니라 소용돌이의 중심 같다. 

나는 낭떠러지에 놓인 주인공을 보며 '도망갈 수 있을까?'라며 물음표를 떠올렸다. 이 감정은 이내 '탈출해야 한다.', '살아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그 배에 '노동의 가치'는 없었다
 
 영화 <부력>의 한 장면.

영화 <부력>의 한 장면. ⓒ 영화사 그램

   
노동의 가치? 땀의 가치? 이 영화에 그런 건 없다.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이용하는 악의 무리는 제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인간답게 살 자격이 있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일한 만큼 돈을 받고, 일터에서 적당한 밥을 먹고, 적당한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다. 영화지만 영화 밖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호주인인 감독은 태국 어업계에서 살인과 고문과 일상적이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인신매매를 당해 노예 노동을 겪은 60여 명의 생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각본을 썼다.
 
"취재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아야만 선상 생활의 고통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터뷰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라스젠 감독)
 
그렇다면 한국은 이런 사건에서 멀리 벗어나 있을까? 아니다.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오세용 소장은 "이주어선원은 평균 18시간씩 조업하고 30시간씩 자지 않고 일하기도 한다"라고 이주어선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언급했다.

그는 "이주어선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폭행과 폭언에 시달려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음에도 욕은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략) 선주가 쌀과 달걀만 제공해서 이주 어선원들은 밥과 달걀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오마이뉴스> 2020년 6월 9일 기사 참조).
 
 영화 <부력>의 한 장면.

영화 <부력>의 한 장면. ⓒ 영화사 그램

 
우리는 이런 사건을 뉴스로만 들을 게 아니라 영화로도 접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인식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니 우리집 식탁 위에 오르는 생선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보게 된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시작한 생각은 '생선을 잡은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로 마무리 되었다. 25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부력 노동 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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