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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전제해둘 게 있다. 머지않아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실현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구성원들이 가난해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더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에서다.

국가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 청년들의 학비를 대고, 그들이 졸업 후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지성인의 사명이며, 상아탑 대학의 본령이다. 공공선을 기초로 하지 않는 대학이라면 존재 이유가 없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방역에 성공하고 있는 국가가 '쿠바'다. 6월 10일 기준,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가 0.73명에 불과할 만큼 세계적인 의료 강국으로 각광 받고 있다. 지난 3월, 위기에 봉착한 이탈리아에 가장 먼저 의료진을 파견한 나라이기도 하다.

대학 무상교육은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기꺼이 공공선을 행하고 세계 시민의식이 투철한 지식인을 양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인식에서다. 무상교육 시스템에선 '먹튀' 대학생이 적을 수밖에 없다.

대학에 요구하는 학생, 정부 탓하는 대학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와 학생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학생회관 앞에서 총궐기 집회를 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이뤄져 학습권이 침해됐다며 등록금 일부 환급을 요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와 학생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학생회관 앞에서 총궐기 집회를 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이뤄져 학습권이 침해됐다며 등록금 일부 환급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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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가 길었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대학마다 원격수업이 장기화되면서 재학생들이 등록금을 반환해달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교육부가 자리한 세종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급기야 대학을 향해 혈서까지 쓰는 일까지 벌어졌다.

들끓는 여론에 국가 예산으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3차 추경에 반영하라는 여야 정치권의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진보 정당부터 보수 우파 정당까지 정부의 곳간을 열라며 한 목소리를 낼 정도다. 빚을 내서라도 지원해야 한다는 거다.

전제한 대로 대학 무상교육은 조만간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닐뿐더러 번지수가 잘못됐다고 본다. 반환이든 감면이든 등록금 문제는 학생과 대학 사이의 문제이지, 국회까지 나서서 다짜고짜 정부에 돈 내놓으라며 다그칠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해마다 전국의 대학에 엄청난 국고를 지원하고 있다. 대학 역시 온갖 수익 사업을 벌이며, 캠퍼스를 기업과 자본의 '놀이터'로 만든 지도 꽤 됐다. 이미 대학은 '기업', 학생은 '고객'으로 전락했으며, 대학마다 곳간에 천문학적인 적립금이 쌓여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장 고통 분담 차원에서라도 대학은 적립금을 풀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러잖아도 쪼들린다며 볼멘소리하기 전에 분노한 학생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오매불망 정부의 지원에만 목매단 채 학생들 앞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는 지성의 전당답지 못한 부끄러운 행태다.

그런데도 대학은 여론의 눈치만 살피며 시간을 벌고 있는 모양새다. 등록금 반환 문제가 여야 정치권으로 불이 옮겨붙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눈치다. 결국 시기와 액수의 문제일 뿐, 긴급 재난 지원금처럼 예산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뭇매 맞을 뻔했던 대학이 '표정 관리' 모드로 돌아섰다. 적어도 자신에게 향하던 여론의 화살을 정부 쪽으로 돌려놨으니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건국대학교가 전격적으로 등록금 감면 방침을 밝히면서, 수많은 대학이 긴장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이었다.

되레 등록금을 반환하면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겁박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의 지원을 더욱 늘려야 한다는 요구다. 하긴 해마다 발표되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뒤처지는 이유를 그들은 낡은 레코드판 마냥 정부의 예산 지원이 부족한 탓이라고 읊어온 터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반환 요구하는 '진짜' 이유
  
 2일 오후 경북 경산시청에서 경산지역 5개 대학 학생들이 등록금 반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 대학생은 올해 1학기가 "온라인 강의만 진행돼 학습권을 피해 봤다"며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생들은 기자회견 후 세종시 교육부까지 걸어가 오는 10일 교육부 앞에서 한 번 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2일 오후 경북 경산시청에서 경산지역 5개 대학 학생들이 등록금 반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 대학생은 올해 1학기가 "온라인 강의만 진행돼 학습권을 피해 봤다"며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생들은 기자회견 후 세종시 교육부까지 걸어가 오는 10일 교육부 앞에서 한 번 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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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태 전 대학에 입학한 한 제자와 만났다. 그는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시위에 줄곧 참여하고 있다면서 현재 대학 안팎의 분위기를 전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집회를 여는 게 쉽진 않지만,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론을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빚을 내서 등록금을 충당하는 가난한 대학생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꼬집었다. 대학 졸업장이 곧 부채증명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잣집 아이라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겠지만, 부모의 도움이 어렵다면 아르바이트에 치여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실습 등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도서관 등 학교 시설도 이용할 수 없는데 등록금을 그대로 징수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고도 했다. 대학에서는 교직원 임금 등 경직성 경비에 변화가 없다는 이유를 대지만, 등록금의 구체적인 사용 내역은 밝히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그는 이번 시위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국내외 다양한 원격수업을 찾아 들으면서 우리 대학의 강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을 깨달은 게 도화선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만도 못한 강의가 부지기수라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라고 해도, 명색이 대학이고 교수라면 원격수업이라도 '지성의 향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못해 카메라 앞에 선 듯한 교수의 표정과 시간 때우기 식 강의 내용에 혐오감이 들더란다. 그 엄청난 등록금을 과연 어디에 쓴 건지 반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더욱이 전공 관련 유튜브 강의가 넘쳐나고, 자막이 달린 외국 대학의 강의 영상까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등록금 반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찾아보면 언제 어디서든 공짜로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정말 많다. 코로나 확산 이전엔 비용을 치러야 했던 것들이다.

한마디로, 질 떨어지는 강의를 값비싼 등록금을 내고 들어야 한다는 걸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거다. 우리 대학 교육의 수준을 코로나가 정확히 알려준 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등록금 반환 요구가 '대학이 대학다워야 한다'는 외침의 뜻도 담겼다는 그의 말에 무릎을 쳤다.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에 진학하려는 아이들은 극소수다. 그것이 어찌 20년 가까운 삶을 오로지 대학입시 준비에 바친 아이들 탓일까. 사회적 책무는커녕 학벌 장사에 여념이 없고, 한낱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 명명백백 대학의 책임이다.

'대학 졸업장 없으면 사람구실 못한다'는 이야기가 초등학생의 입에서조차 튀어나오는 세상이다. 구구단 외우듯 대학 서열을 줄줄이 읊고, 대졸자의 고졸자에 대한 멸시를 당연시하는 현실에서 대학은 우리 사회의 '갑'이다. 고등학생 열 명 중 일곱 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다.

정부의 숱한 예산 지원에도 대학은 온존한 학벌구조에 편승해 안주하려는 관행을 떨쳐내지 못했다. 예산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등록금 지원을 위한 별도의 추경 편성에 앞서 대학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비록 소수일지언정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열 명 중 세 명 또한 고려해야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건강을 이유로 애초 진학을 포기한 경우도 있고, 졸업장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대학을 거부한 이들도 있다. 그들은 등록금이 배움의 대가가 아니라 졸업장의 가격이라며 조롱한다.

예산으로 등록금을 지원하는 건 차별적인 요소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과 그 가정은 아예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다수가 대학에 진학한다는 이유로 눙쳐서는 곤란하다. 청소년이 모두 학생이 아니듯, 청년과 대학생을 등치시킬 순 없다.

방역 모범국가라는 찬사를 뒤로 하고, 우리는 전례 없는 경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대학이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는 분위기에 편승해 예산으로 등록금을 지원받으려는 건 뻔뻔한 행동이다. 의무교육도 아닌데 예산을 지원하는 건 전형적인 '떼법'라는 지적도 있다.

빚을 내야 할 만큼 빠듯한 정부 예산으로 등록금 지원이 아니래도 감당해야 할 곳은 넘쳐난다. 부디 학생들은 정부에 손 내밀기보다 학벌구조에 기대어 '손 안 대고 코 풀어온' 대학과 맞서 싸우라. 국가의 재정은 사회적 약자를 어루만지고, 계층 갈등과 양극화를 막는데 우선 사용되어야 한다. 대학 등록금 지원은 그다음이다.

사족 하나. 사람들끼리 통성명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학번을 묻고 대학 졸업장이 주민등록증 구실을 하는 학벌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이참에 뒤따랐으면 좋겠다. 배움에 대한 열정도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모든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는 건, 우리 사회에 조금도 득 될 게 없는, 차라리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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