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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인 알바비를 받아내고 교통사고로 다친 손도 다 나았을 2015년 9월 무렵, 나는 다시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받은 70만 원은 한 달을 겨우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기에 그걸로는 앞으로 한동안 버틸 수조차 없어 다시 일해야만 했다. 

알바천국이며 알바몬에 올라오는 공고들을 보고 이곳저곳 면접을 본 끝에 내가 다시 하게 된 일은 또다시 전단지 알바였다.

이번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된 곳은 새로 생긴 과외 업체였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를 상대로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A이라는 과외 업체에 전화를 하니 내일 면접을 보러 오라 했고 나는 내가 살던 전주시 인후동에서 업체 사무실이 있는 효자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 면접을 봤다. 

사무실에는 사장과 팀장, 그리고 먼저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 전단지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가 내게 몇 가지를 질문했는데 내가 전에 전단지 알바를 한 차례 해본 적이 있다 하자 "그래요? 그럼 오늘부터 일해."라고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예? 오늘부터요? 지금 당장?'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네." 하고 대답할 수밖에. 사장은 지금부터 일을 시작하자며 내게 저쪽으로 가서 앉으라고 자리 하나를 손짓으로 가리켰고, 나는 사장이 정해준 자리에 앉아 내 앞에 놓인 명함 한 장 크기의 전단지들과 셀로판테이프와 마주했다.

"이름이 슬비라고 했지? 이거 여기에 이렇게 붙이면 돼."

내 옆자리에 앉은 이모뻘 아주머니는 전단지에 셀로판테이프를 붙이는 것에 대해 시범을 보여주었고 나는 속으로 '여기서 이렇게 작업을 먼저 하고 붙이러 가는 건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단지에 셀로판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은 어렵지 않았고, 나는 '역시 나는 단순노동 체질인가보다'라며 내가 작업한 전단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호구조사와 말 많은 사장

그렇게 전단지를 붙이고 있을 때 사장이 불쑥 내게 물어왔다. "슬비는 학교 다녀?" 순간 나는 "네? 학교요?" 하고 되묻고 말았다. 내 나이가 21살.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학생이겠거니 생각한 건가. 그보다 그건 왜 묻는 거지? 학교를 다니든 말든 그게 전단지 알바랑 상관이 있나? 

하지만 알바가 사장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뇨. 안 다녀요." 하고 대답하니 이번에는 "그럼 뭐해? 학교 어디 나왔어?" "B고 나왔어요." "B고? 거기 공부 잘하는 덴데. 그렇지?" "아, 네, 그렇죠." "그럼 슬비는 대학 안 간 거야? 왜?" "그냥요." "집이 어려워서?" "아뇨. 그냥 안 갔어요." "그럼 지금은 뭐해? 알바만 해?" "아뇨. 소설 써요."

사장의 질문은 쉴 틈도 없이 이어졌다. 무슨 소설을 쓰냐, 어디서 볼 수 있냐부터 고향이 전주냐, 그러면 전주에서 계속 살았냐, 부모님은 계시냐... 어찌나 질문이 쉴 새 없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지 이게 일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모를 지경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제발 저 질문을 멈춰줬으면 했으나 모두 그저 사장의 말 상대가 되어주는 것처럼 보이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나는 그냥 의무적으로 대답해주는 건데 말이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사장의 질문 세례가 끝난 것은 점심 시간이 되어서였다. 사장은 "우리 다 같이 점심이나 먹으러 가지. 오늘은 육개장이다. 내가 살게"라며 앞장서서 근처에 있는 육개장집으로 향했고 모두의 뒤를 따라 육개장집으로 가다 말고 나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대체 왜 그렇게 쓸데없는 걸 물어보는 건데! 내가 '너님'이랑 친해지고 싶지가 않다고요. 그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것도 일 때문에 만난, 아니지 자기에게 고용된 사람에게 뭘 그렇게 개인적인 걸 물어보는 건데!'

'앞으로 말 많은 사장 때문에 일이 험난해지겠구나'하며 나는 사장이 사주는 육개장을 다 비웠다. 어쨌든 배가 고팠고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사주겠다는 걸 왜 안 먹는단 말인가.

[나의 전단지 알바노동기]
1-1. "알바비 45만원, 30회 이상 일해야 줍니다" http://omn.kr/1no5d
1-2. 아파트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http://omn.kr/1nopj
1-3. 경비아저씨와 전단지 알바, 쫓고 쫓기는 추격전 http://omn.kr/1nr9u
1-4. 알바비를 떼이다 http://omn.kr/1nuq7 

태그:#노동, #알바노동, #수기, #전단지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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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답답한 1인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고 싶습니다만 그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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