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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은퇴 후 첫 면접이었는데... 결국 연기됐습니다]

수차례의 면접을 거쳤다. 수십 번의 지원서를 관공서와 기업에 제출했다. 그 결과 3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모 신용카드회사 배송인이 되었다. 그것도 추천을 거쳐서 받은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정년을 하고 난 뒤 노후의 인생길에서 직업을 가지고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화려한 스펙도 과거의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청장년들의 실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용카드를 배송하는 일이라 신원조회를 거쳐야 했다. 입사 후에도 제대로 잘 배송하고 있는지, 영리 위주로 배달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니터링도 받는다. 이런 절차를 다 마친 후 배정받은 곳은 화성시 어느 동네였다. 

언제 남의 집 주소를 알아내는 일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탐정처럼 주소를 검색해서 지리를 알아보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었다. 그야말로 불모지 땅에서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일을 시작한 셈이었다.

그것도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말이다.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다니면서 탭에서 내려받은 이름을 찾아 카드를 전달하고 사인을 받는 일이었다. 베테랑 배송인은 180장을 6시간 만에 다 배송하였다고 한다.

나는 수원에 가서 카드를 받아와서 배송을 시작하면, 거의 오전 12시부터 일이 시작된다. 백팩에 카드 60장을 담아 지고 배송하기 시작하면 땀은 머리와 이마를 적시고, 태양은 얼굴을 태운다. 그래도 굴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후 8시가 되어서야 겨우 손에 든 카드를 모두 배송할 수 있었다. 다 배송을 하지 못한 경우도 생긴다. 그런 날은 다음 날 다시 가서 전달해 주곤 했다. 날씨가 덥다고 하나 더운 줄 몰랐다.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과로로 지쳐 어려움에 빠지는 일도 없었다. 고1부터 매일 아침 다진 체력이 이런 어려움을 거뜬하게 덜어 주었다. 일을 마치고 어둠을 뚫고 귀가하면서서도 기분은 상쾌했다.

온종일 집에서 책을 보다가 아니, 지금까지 실내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밖에서 생활하다 보니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새가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카드는 정확하게 배송만 하면 된다. 친절을 제일 서비스로 생각하고 카드를 전할 때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공기처럼 입에 달고 다니니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다.
 
새솔동 사람들이 배송인에게 베푸는 소박한 인간미
▲ 배송인의 나눔과 새솔동 사람들의 베풂 새솔동 사람들이 배송인에게 베푸는 소박한 인간미
ⓒ 조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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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로부터 성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으로 소문 나서 좋고, 경비원도 출입문을 열어주며 카드 배송을 도와주니 고마웠다. 너무 더울 때에는 주민들이 음료수를 제공하면서 마시고 쉬어가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배송하는 아파트 단지는 거의 25층 이상이다.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시화호 물줄기는 안양천을 따라 이 주변을 포근히 에워싸고 있다. 그 아래 펼쳐진 그림같은 갈대숲은 새들의 보금자릴 만들어 물새들의 합주곡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갈대숲을 한 바퀴 휘 돌아 나오면 마치 음악 연주회에 다녀온 것인지 콩쿠르에 다녀온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자연을 매일 대하기 때문인지 주민들의 태도가 선하다. 훈훈한 인정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주3회 카드를 배송하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누구는 왜 그런 힘든 일을 하느냐고 하지만 나에겐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또 건강을 지켜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리고 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창조적인 글감이 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태그:#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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