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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도 변해야 합니다.  이에 현장 교사들이 진단하는 학교 교육의 문제점과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실천교육교사모임 소속 교사들의 제안을 담은 현장 이야기를 싣습니다.[편집자말]
관련기사 : 초2학년이 지나면 막둥이는 어디로 보내야 할까요?  http://omn.kr/1nwr9

지난 글에서도 자랑(?)했지만 저는 세 아이를 기른 지난 18년 동안 개인적 경험과 동시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만난 경험, 또 학부모로서 세 자녀를 보낸 학부모로서의 경험 등으로 인해 개인적 경험이라고 하기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아동 청소년을 대하는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아이를 낳은 직 후 봄볕 따스한 날 유모차를 끌고 외출을 좀 하려 할 즈음, 사람들 사이에서 'NO KIDS ZONE'(노키즈존)과 '맘충'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론 동의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사회적 언어의 탄생 이면에 깔린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몹시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대로 늙고 힘없는 엄마는 침몰하는 것인가라는 두려움도 밀려왔지요. 

유난히 요즘 영유아 엄마들이 더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없는 사람들이 된 것일까요?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사회의 관대함과 따뜻함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자되세요!"라고 어느 광고에서 미모의 여배우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돈'이 최고의 가치임을 외치기 시작한 그 즈음부터 '돈'많은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께서 권력을 잡았고, 돈에 대한 개인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정당화 되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건전한 개인주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제겐 양육의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한 건전한 개인주의의 파도 앞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것은 아동과 청소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세월이 흐르고 흘러 코로나 시대의 위기상황에서 온 국민이 모두 집콕생활을 해야할 때 아동 청소년들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우리모두가 충격적으로 목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그동안 내 눈에 아이들이 띄지 않으니 어딘가에서 무럭 무럭 잘 자라고 있겠거니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 말고는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그것도 무려 "공짜로" 갈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지 말입니다. 게다가 긴급한 비상사태에도 이기적인 철밥통 선생들은 얼핏 보면 일도 안하는 것 같은데,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힘들다고 징징대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학교문을 열어서 교육말고 긴급돌봄을 하라는데 그 공간만 빌려주는 단순한 일에 왜 이렇게 징징대는 거지?'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문을 열어버린 학교에서 지난 20여년간 이뤄진 것은 진정한 "돌봄" 이었는지. "교육"까지는 바라지도 못하지만 "돌봄"이 이루어졌는지 우리 모두 코로나 시대에 정직하고 치열하게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이루어진 "돌봄"이 아니라 겨우 겨우 "수용"에 가까움을 인정하고, 아동들의 진정한 돌봄을 고민하는 시점이 아닌가 함께 이 고민에 이웃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교직 초기, 앞 글에도 썼지만 가난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중학생이어도 학원과 학교 아니, 좋은 어른과 만나 사랑을 받거나, 인생의 크고 작은 자잘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단절된 아이들을 만나면서 고민이 깊었습니다. 다행히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지역공부방, 그리고 "청소년 문화의 집"을 찾아내어서 아이들을 안내하고 친구들의 빈집을 우르르 몰려다니던 아이들에게 방과후에 "좋은 어른"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었던 것이, 지금은 비록 소규모지만 20년이 지나 이렇게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학교 끝나면 가서 차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심지어 어떤 똘똘한 제자는 청소년 문화의 집 복지사 선생님께 영어숙제도 도움받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막혀버린 것인지, 분명히 아동과 청소년들의 돌봄을 법적으로 제정한 제도와 기관이 이미 존재하는데도, 말그대로 시작만 하고 다시 그 공들이 학교로 돌아온 것이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 정책의 민낯이었습니다. 

 2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부족한 공간. 아동들과 청소년들이 돈 없어도 갈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한 나라. 돈이 많은 분들은 돈 자랑을 하다 못해 얼마전 방영된 '스카이캐슬'처럼 맞춤형 스승님이 준비되었지만, 그야말로 생계형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의 몸과 마음의 빈 곳은 누가 그 가정의 동반자가 되어 돌봄의 여정을 동행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종일돌봄' 법안 발의됐지만... 

현재 초등학교 1, 2학년의 학교 돌봄에서 올해는 3학년 내년에는 4학년, 점차 6학년까지 학교 공간에서의 돌봄이 늘어날 추세라는 취지의 '온종일돌봄법안'이 지금 발의됐지만, 정말 재밌는 것은 학원협의회에서는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학원연합회는 모든 국민들이 신뢰하고 가장 안전한 공간이며, 믿을만한 교사들이 있는 학교에 6학년까지 오후 돌봄 및 저녁 돌봄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긴장감이 없는 것일까요? 결국 부모들이나 아이들이 이용하지 않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올 것을 예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목도한 아동 청소년들의 삶의 공백이, 삶의 여백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맞벌이 부모를 두었으나 그분들의 퇴근시간은 매우 늦고 주변 친구들도 모두 그런 상황이라 이 아이들이 함께 의기투합해서 무엇인가를 모의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할 때 따뜻하게 지켜볼 다양한 어른들과 편안한 공간이 국가적으로 마련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작지만 큰 힘이었던 '청소년 문화의 집', 주민센터 2층의 쾌적한 공간에서의 청소년 회의실, 크고 작은 소규모 공부방들이 분명 우후죽순처럼 퍼질거라는 낙관적 기대를 가져봅니다.

셋째를 이제 세상에 맡겨야하는 시점에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별로 나아질 기미가 없습니다. 그나마 있던 관공서에서의 소규모 방과후 문화센터도 사그러 들고, 도서관도 한창 확장하더니 멈추어 있고, 코로나 시대를 맞아 집안에 틀어박혀서 혼자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얼마나 더 쓸쓸하고 불운해야하는 걸까요?

며칠 전 뉴스 장면에서 지나가듯 수능을 위해 땀흘리며 열심히 공부하는, 단 한명의 조는 친구도 없고 엎드려 있는 친구도 없는 한 고3 여학생들이 교실모습이 지나갔지만, 실제로 세상에 그런 학교는 거의 없습니다. 주변에 그런 학교가 있다면 '아 내가 정말 잘 사는 동네에 사는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의 학교는 결코 그런 풍경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삶의 공백만 있고 여백은 없는 사회, 공부를 못할 경우 자책감과 열패감과 정처없는 마음의 흔들림을 학교, 가정에서 채우지 못하면 벌거숭이처럼 혼자 외롭게 쓸쓸히 시들어야하는 사회가 지금 코로나 시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중3의 자살 시도율이 높다는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도 있지만 저는 몇해전 허망하게 세상을 스스로 등져버린 고등학교 제자와의 이별을 뼈아프게 경험습니다. 한 친구는 이혼한 부모님 사이에서 핑퐁으로 오가다가 결국 너무 쓸쓸하게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이 보이는 아파트 옥상에서 노숙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아이가 보낸 마지막 다정한 눈빛과 마음 씀씀이, 시 해석에 담긴 그 쓸쓸함을 생각하면 그 밤에 혼자 외롭고 고독했을 그 마음이 생각나 늘 가슴이 찢어집니다. 입시제도 해결하는 것 말고도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존재자체로 사랑받고 공부 이외에도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존중받는 경험을 할 제반 여건을 마련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간절합니다. 어차피 넘어야할 공부의 산이고, 진로선택의 산이라면 건강하고 탄탄한 마음으로 아파하며 넘어갈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사회적 돌봄의 문화를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간절히 청하자면, 아이들에게 주어진 삶의 여백을 채워줄 멋지고 깨끗한 공간, 언제라도 다정하게 맞아주는 어른들이 있는 아동 청소년들만의 공간과 준비된 선생님들을 국가적으로 마련해주십시오. 학원가가 비웃는 긴급수용시설에 가까운 학교 돌봄 시스템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길거리에서 어른들의 비난의 눈빛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곳, 용돈이 없어도 편안하게 차 한잔 마시면서 모둠수업도 준비하고 스스로 놀 수 있는 끼가 많은 아이들이 보호받으며,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강한 공간을 동네마다 마련해 주십시오. 

학원/학교만이 전부여도 만족했던, 지난 세대와는 완전 다른  다음 세대들의  삶의 환경을  중하게 여기고 투자해주십시오. 아이들이 자라며 경험하는 삶이 그 아이들의 미래입니다. 우리 어른들과는 다른 미래를 선물하기 위해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연습할 공간과 시간을 선물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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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경력 19년이 유일한 자랑스러움. 이것을 벼슬삼아 자부심삼아 살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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