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여러 환자들을 치료하는 재활 치료실 현장에 13년을 몸담았다. 뇌졸중과 척수손상 같은 중추신경계 예비장애인들을 치료했다. 20~30대 비교적 젊은 나이의 나는, 더 연배가 높은 60대, 70대 환자들을 상대로 가끔 반말을 섞곤 했다.

치료동작을 하면서 "그건 아니지", "저렇게 해야지" 등등 애드립을 했다. 당시엔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치료를 받는 환자분도 어떤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고, 선배들도 치료할 때 항상 그랬으니까. 어쩌면 환자와 의료진이라는 '구조화' 가 자연스레 내 머리에 고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하루는 다른 환자분에게 건너 건너 내 뒷담화를 듣게 되었다. '환자와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데 말을 자꾸 짧게 한다'고. 친근감의 표시라고 생각했던 내 말투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처음 있던 일이라 얼떨떨했지만, 그분이 말을 처음 했던 것이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분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하니 내 자신이 더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배려의 말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또 한 번은 사회생활을 왕성하게 하는 장애인분을 만나서 나도 모르게 입버릇처럼 '환자'라는 표현을 썼다가 상대가 불쾌감을 드러낸 적이 있다. 병원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신을 '환자'라고 부르냐고. 엄연히 병원에서 재활치료 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했는데, 후유장애가 있다 한들 어떻게 환자로 칭할 수 있냐는 취지였다.

현장에서 치료만 했던 내게 배려의 언어는 큰 숙제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현장 일을 하면서도 애초에 인권감수성이 부족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때부터 장애인을 만날 때마다 "말을 조심해야지"라고 몇 번씩 되뇌었던 것 같다.

배려의 말들

그런 고민의 시간을 보내면서 훌쩍 40대가 되었다. 배려의 언어는 여전히 내게 조심스럽고 익숙하지 않다. 배려한다고 했던 말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일도 왕왕 있었다.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책의 저자인 류승연씨는 자신의 책 <배려의 말들>에서 "배려는 무엇이 배려인지 알아야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책이 '몰라서' 말실수를 했던 분들에게 하나의 '배려 안내서'가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배려의 말들 배려의 안내서 '배려의 말들'이 출간되었다
▲ 배려의 말들 배려의 안내서 "배려의 말들"이 출간되었다
ⓒ 유유출판사

관련사진보기

류승연 작가는 발달장애인 아들과 비장애인 딸을 키우는 엄마이다. 한 때 국회를 출입하는 열혈기자로 왕성하게 일하다 지금은 '작가' 로 활동 중이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우며 느낀 점을 담은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한 책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를 냈다. 그 외에도 장애 인권과 관련한 강연을 다니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장애는 가진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것

류승연 작가는 <배려의 말들>을 통해 내가 그간 고민했던 '말'을 이야기한다. 저자도 처음엔 용어 사용에 민감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과거에 겪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저자가 어느 강연장에서 장애를 '가진' 아들 육아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연했는데, 어떤 분이 다가와 "장애는 가진 게 아니에요. 그냥 있는 거예요. 있는 자체로 그 존재를 인정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류 작가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장애는 '앓는 것'도 아니고 '극복하는 것'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혹시 '장애를 극복한'이라는 표현이 담긴 기사 제목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지 않은가. 혹은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는 어느 정치인의 말에 동의하진 않았나. 깊이 고민하지 않고 무심결에 내뱉은 말과 글이,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끔 척수장애인분들과 식사를 하거나 회의할 일이 있다. 누군가와 약속을 정하면 보통은 사전에 상대의 음식 취향을 물어보는 것이 '배려'이자 예의이다. 그런데 장애인분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휠체어를 타는 경우라면, 식당 예약할 때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지 미리 알아보거나 사전 답사를 해야 한다.

식사 장소에 도착했는데 정작 휠체어가 식당에 출입할 수 없는 계단식 입구라면 어떤 대안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나도 몇 번의 그런 실수를 경험하고 꼭 사전에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지 체크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장애인을 배제하는 일이 많다. 장애인 노동자는 직장 내 회식이나 모임 등에서 배제 당한다. 회의 장소나 회식 장소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으면 장애인은 큰 불편을 겪는다. 그런 기본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진정으로 배려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문턱이나 계단이 없으면서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회식 장소를 물색했어야 한다. 메뉴보다 통행로를 먼저 고려했어야한다." 129p
 
배려가 오가는 사회를 만들자

배려는 타인에게 행하는 것이지만, 나 자신을 배려하지 않고 타인을 향한 배려에만 몰두한다면 공허해질 것이다. 류승연 작가는 나와 타인을 동시에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이 책에서 제안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성소수자, 여성인권 등등 모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누구나 살만한 세상이 될 거라고 강조한다.

'인권'을 생각하는 건 어쩌면 불편할 수 있다. 항상 마음 편히 얘기하지 못하고 자기 검열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권 감수성을 갖기 위해 꾸준히 갈고 닦으며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자신의 언행에 '배려'가 자연스레 녹아들 것이다.

배려의 말들 - 마음을 꼭 알맞게 쓰는 법

류승연 (지은이), 유유(202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