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 09:02최종 업데이트 20.07.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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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슈퍼에서 구입한 돼지고기. 목살 450g에 2.63유로, 3500원이다. 동물복지 등급 빨간딱지 1이 붙어있다. 가장 좁은 곳에서 사육된 돼지고기라는 뜻이다. ⓒ 이유진


독일은 고기가 싸다. 식료품이 전반적으로 저렴하지만 육류는 유난히 싸다. 한때 미소를 머금으며 싼 고기를 애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가장 싼 고기를 집어드는 일이 줄었다. 고기 맛을 구별할 만큼 미식가여서가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져서도 아니다. 고기 포장 용기에 붙여진 '동물복지' 등급 딱지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독일 슈퍼마켓에 진열된 육류에는 '고기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는지'가 표시되어 있다. 법적 최소 사육 조건을 기준으로 사육 공간이 조금씩 늘어날 때마다 등급이 오른다. 그 전에는 좋은 고기에는 유기농 표시가 되어 있었다. 더 좋다는 표시만 했지, 더 나쁘다는 표시는 하지 않았다. 이제는 질 나쁜 등급이 붙은 고기를 집어들면 죄책감이 함께 따라 올라온다.  


이렇게 '동물복지'를 중시하는 독일 축산업과 관련 부처의 노력이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을 무렵, 코로나19가 그들을 덮쳤다.

도축장 노동 환경, 싼 고기의 또 다른 이유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귀터스로에 소재한 퇴니스의 육류가공공장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6월 30일(현지시각) 기준 1500명 이상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공장은 물론 도시도 다시 폐쇄됐다.

퇴니스 공장에서는 대부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했다. 우리나라 콜센터와 택배물류센터 집단감염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드러낸 것처럼, 퇴니스 집단감염은 도축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고기가 싼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라는 아주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독일 최대규모 육류 가공 기업 퇴니스(Tonnies) ⓒ Tonnies

 
독일 최대 규모의 육류가공기업인 퇴니스의 공장에서는 해체를 기다리며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고기처럼 노동자들도 다닥다닥 붙어서 일했다. 코로나 시국에서도 사회적 거리 유지는 불가능했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 때문에 큰소리로 대화할 수밖에 없어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높았다. 거기에 도축장의 시원한 공기를 타고 코로나19는 빠르게 확산됐다. 노동자들은 퇴근을 하면 2층 침대가 놓인 숙소로 갔다. 집단감염이 확산되지 않을 수 없는 노동 환경이었다.  

도축장 집단감염은 퇴니스가 처음이 아니다. 3월 초 또다른 육류가공 기업인 베스트플라이쉬에서도 집단감염이 있었다. 이후 독일 전역의 관련업계 노동자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당시 퇴니스도 노동자 6600명을 검사, 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3개월 뒤 다시 시작된 집단감염은 코로나 이후 노동환경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는 7월 1일부터 도축장 노동자들의 주 2회 검사를 의무화했다.

간접고용 문제 수면 위로

육류가공업계의 노동자 간접고용의 실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퇴니스도 노동자 절반이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지난 6월 27일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퇴니스 노동자들은 집단 숙소에서 생활하며 하청업체가 제공하는 출퇴근 차를 타고 공장을 다녔다. 출퇴근 서비스 비용으로 매달 100유로(한화 약 13만5천원)를 냈다. 아파도 출근해야 했다(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독일에서는 큰 문제다). 병가를 내면 서류처리비용으로 하루에 10유로(한화 1만 3500원)를 떼었고, 일을 하지 않고 쉬어도 하루에 10유로씩 방값이 올랐다.

하지만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고,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건 불가능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독일어 수업이나 통합 지원 프로그램도 물론 없었다.

혹독한 근무 환경 때문에 1년을 버티는 노동자가 드물었지만 회사는 개의치 않았다. 노동력은 손쉽게 충원됐고 또 교체됐다. 회사는 장기간 근무 노동자에 대한 책임감을 덜 수 있었다. 
 

독일 도축장 퇴니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부분 동유럽 노동자들이다. ⓒ Tonnies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퇴니스는 "간접고용을 없애고 모든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초기 도축장 집단감염 당시 이미 논의된 사항으로 연방정부도 간접고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언제 시행될지는 알 수 없다.

인종주의 문제로 확대 

퇴니스 집단감염 사태는 인종주의 문제로까지 번졌다.

먼저 아르민 라쉐트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총리. 그는 지난 6월 17일 관련 사안을 발표하면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독일의 싼 고기를 위해 노동을 갈아넣는 이들을 바이러스 전파의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실시간 방송 중인 공식 발표 자리에서다. 

각계각층에서 강한 비판이 일었다. 독일 외무장관도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며 사과를 촉구했다. 하지만 라쉐트 주총리는 유럽 내 노동자들의 이동을 언급한 것이라고 에둘러 해명했다.

거기다 퇴니스 대표인 클레멘스 퇴니스는 경악스러운 인종차별 발언으로 분노를 유발한 바 있는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분데스리가 축구팀 FC샬케04의 감사위원장으로 지역 유지 노릇까지 하고 있는데, 지난해 8월 한 행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후보호를 위해 세금을 올리는 것보다, 아프리카에 매년 발전소 20개를 세우는 게 낫다. 그럼 아프리카인들이 더 이상 나무를 베지 않을 것이고, 깜깜할 때 아이를 만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 그는 3개월 정직 조치를 받았지만 독일축구협회는 최종적으로 '그가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판단, 그는 여전히 직을 유지하고 있다. 

퇴니스 집단감염 사태는 이러한 인종주의 발언까지 더해져 일파만파 퍼지는 중이다. 특히 FC샬케04 팬들은 퇴니스 대표의 감사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동물복지 딱지뿐 아니라 노동 환경 딱지도 붙여야

그간 동물 사육 환경과 행복에 큰 관심을 두던 독일은 이번 사태로 꽤나 충격을 받은 듯하다. 동물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들도 비용절감의 혹독함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71년 설립된 퇴니스는 '최저가' 고기를 통해 독일 최대 육류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루에 돼지 3만 마리를 분해하고, 독일에서 유통되는 돼지고기의 30%를 생산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전 세계 30여개 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70억 유로(9조 4611원), 퇴니스 회장의 재산은 20억 유로(2조 7031억)다. 그리고 이 거대한 '고기 제국'을 떠받치는 것은 값싼 외국인 노동자였다.

일터와 숙소를 오가며 종속 상태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독일 역사에서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독일 정부와 정치권은 부랴부랴 도축장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나섰다.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퇴니스 노동자들. 하지만 땅에 떨어진 퇴니스에 대한 신뢰는 회복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 Tonnies

 
독일 연방식품농림부는 6월 26일 '더 나은 동물복지, 공정한 가격, 더 나은 노동환경'이라는 주제로 육류산업계 대담을 가졌다. 동물 사육장부터 식탁 위에 오를 때까지 육류 산업의 모든 과정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다. 

육류 최저가를 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덤핑 수준의 가격은 덤핑 수준의 노동환경이 만든다. 싼 고기 소비를 줄이기 위해 언제까지 소비자의 도덕성에만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코로나19가 굳게 닫혀 있었던 독일 도축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드러났다. 이제 독일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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