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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가 들었나 싶을 정도로 되는 일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올해는 연초부터 그랬다. 우선은 내가 잘못 벌인 일이 있어서 그 일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책과 후회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얼마였던가. 그 와중에 방송국 개편 시즌도 아닌데 일하던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잘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들이닥친 코로나 재앙. 일도, 사람도, 재수도 모두 끊긴 날들이었다.

그렇게 근근이 살고 있던 5월의 어느 날, 작년에 함께 일했던 피디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작가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전화를 한 거였다. 속으로 '앗싸~' 했다. 아마도 아직 내가 쓸 만하다는 유용성을 인정받은 느낌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피디와의 미팅이 있는 날,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갖고 피디를 만났다. 그러나 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실은 다른 작가를 구했어요."

아니, 이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 피디는 급한 마음에 당장 이번 주부터 쓸 수 있는 작가를 구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저에게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기가 막혀서 물었다.

"앞으로 다른 자리가 날 수도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서 인사라도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씀 안 드렸어요."

간 보는 게 역력했다. 맘도 상하고, 기운도 빠졌다. 그렇다고 소개해 준 분의 얼굴이 있으니 정색을 할 수는 없었다.

"인사를 하며 안면을 트는 건 좋은데, 저에게 미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제가 알고 만나는 것과 아닌 건 좀 차이가 있는 것 같거든요. 솔직히 좀 당황스럽네요."

사리가 나올 만큼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대략 인사치레의 시간을 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 전철 안에서 온갖 생각이 올라왔다.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떨어질 때가 있었구나.'

이상했다. 사람은 너무 기가 막힌 상황에 처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마 다 내려놓게 되어서일 것이다. 그 순간이 그랬다. 그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명랑한 오기가 올라왔다.

'그래. 운명아. 할 테면 해봐라. 아주 내가 보란 듯이 명랑하게 살 거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고 하는 캔디과 캐릭터는 딱 질색인데, 자연스럽게 마음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진짜 나는 명랑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런 시간들이 있다. 자칫하면 독기가 쌓일 수 있는 시간들 말이다. 정말 빌어먹을 일들이 이어달리기처럼 계속 되는 때. 운명이 나를 약 올리는 듯 안 좋은 선물을 잔뜩 놓고는 치고 빠지는 것 같을 때 말이다.

그럴 때마다 수없이 좌절하고 자책하고 후회하곤 했지만, 그러다 나중에 기어이 선택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독기를 품지 말자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해져야 했다. 감정도 생각도 말도 표현도. 좋다가 만, 풀릴 것 같다가 주저앉아 버리는, 삼재가 든 것 같은 삶 속에서 나에게 가장 적당한 것들을 찾을 수 있었던 비결은 '돌아봄'이었다.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겉표지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겉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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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주영 편집기자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된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연재하며 서툴렀던 지난날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연재가 이번에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로 출간되었다.
 
"나이가 들면, 나와 다른 사람의 비교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내 몫의 삶과 행복에 자족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성숙함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옵션처럼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내 일상을 흔드는 크고 작은 바람은 언제나 불기 마련이고, 그 바람의 강도는 늘 내 선택에 따라 허리케인이 되기도 하고, 미풍에 그치기도 한다. A의 결혼과 함께 불어온 바람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쩌면 나는 결혼 생활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며 위안을 삼았던 건 아니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으로 우열을 가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내 딴에는 많이 배려하는 좋은 상사라고 자부했는데, 바로 그 '내 딴에는'이라는 말이 얼마나 일방적 배려의 생색인지, 그 시절의 나는 몰랐다."
"배앓이를 하고 나서 A에게 메일을 보냈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솔직히 부러워서 질투했노라고. A는 성공한 사람다운 너그러움으로 금세 문자를 보냈다. "뭐든지 하나를 얻으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는 걸 믿어요. 소영 쌤처럼요." 나도 좀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마냥 부러워하면서 '나는 그냥 이 정도야'라고 스스로를 주저앉힌 건 못난 일이었다." - 본문 중에서

이렇듯 직장생활하면서, 인간관계 안에서,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그동안 흩어졌던 후회의 시간들이 소환되었다. 내 치사함과 초라함을 대면하는 것이 쉽진 않았으나, 쓰면서 후련해졌고 독자들의 반응도 예상 외로 좋았다.

공감의 댓글도 줄줄이 이어졌고, 메일로 고맙다는 인사와 격려를 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오히려 내가 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고마운데 말이다. 잘해야 10회 정도 쓰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쓴 글이 수차례나 몇 천개씩 공유되는 걸 보며 어리둥절하면서도 더 써야겠다는 용기가 났다.

덕분에 흩어져 있던 후회들을 짚어보며 정돈할 수 있었다. 내가 버려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정돈하고 조금 더 보완해서, 봉지 일러스트 작가의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운수대통이었으면 좋겠다. 책은 읽히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 그래서 듣보잡 작가이지만 이 책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욕망을 감추지 않겠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동안 출간 제안을 적어도 20번 넘게 받았다는 어필을 뻔뻔하게 하며, 이 책을 셀프 추천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어", "잘하는 건 딱히 없고 애매하고 어중간했어요", "열심히는 그만 됐고 정성스럽게 살고 싶어요" 하는 것에 한 가지라도 공감하는 당신이라면, 또 자신에게 적당한 것을 찾고 싶은 당신이라면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괜찮은 건가?' 책을 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내가 나의 초라함과 치사함을 감추지 않고 솔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내 모습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과정이 나를 위로하고 치유해줬을 뿐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마주한 당신이라면, 분명 크고 작은 후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솔직한 글을 읽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고 안도감을 느꼈듯 결핍과 오버 사이에서 좌충우돌한 나의 시간들이 당신에게 소박한 격려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프롤로그 중에서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 나는 돌아보는 태도의 힘을 믿는다

신소영 (지은이), 봉지 (그림), 웅진지식하우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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