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트랜드 분석가 김용섭은 2019년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Weak Ties)>라는 책을 내고 '작은 연대체'(small solidarity)에 대한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작가가 설명하는 느슨한 연대란, 실제로 대면하는 것보다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관계를 더 편하게 여기고 결혼·출산·가족 제도에서 벗어나 동거와 대안 가족과 셰어하우스를 찾는 것, 끈끈한 직장 문화를 버리고 긱(gig) 노동과 원격 근무 혹은 다양한 겸직까지 하는 직장인이 늘어가는 것, 살롱 문화와 애자일 조직 확산 등의 문화 전반적인 특성을 지칭한다. 

실제로 이와 같은 접근이 아주 새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령화와 더불어 느슨한 연대의 개념이 대두되었다. 지역의 독거 노인을 중심으로 '느슨한 가족'이라는 이름의 모임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고 한 달에 한두 차례 생존 확인을 겸한 식사 자리도 만들어 졌다.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건 고령화와 핵가족화, 경제 구조상 부양능력의 한계 등을 고려한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느슨한 연대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나 또한 '시민사회의 느슨한 연대'를 주장하고 싶다. 다만 전자가 심리적 연대라면 내가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것은 형태적∙특수목적 지향적 연대를 뜻한다.
 
small solidarity 거대한 네트워크를 지향하기 보다는 작은 연대체가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방식이 실제적인 연대를 만들어 가는데 용이할 것이다.
▲ small solidarity 거대한 네트워크를 지향하기 보다는 작은 연대체가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방식이 실제적인 연대를 만들어 가는데 용이할 것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과거 시민단체들은 많은 부분 민주화투쟁 가운데 성장했기에 태생적으로 연대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단체와 단체 간 같은 목적 지향을 가지고 한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이유는 정부와 시장이라는 거대한 공룡 틈 사이에서 나름대로 제 목소리를 갖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시민사회 실무자의 세대도 바뀌어 가면서 조직 간의 연대보다는 각단체의 개별 사업이 중요해지고 단체 간의 소통도 부족해졌다. 물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단체 간의 연대에 대한 노력이나 결과물이 이후에도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 참여 대상 단체의 폭이 좁고 특정 이슈 안에서 연대 욕구가 부각되었음을 상기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동담론이 사라지면서 시민사회는 개별 사업이나 프로젝트 중심으로 '치고 빠지는' 모양새가 이어졌고, 그 후속을 도모하기도 어려워 연대감은 집행 예산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이처럼 연대가 어렵거나 혹은 실무자 측에서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호기심에 몇몇 단체 활동가에게 인터뷰를 진행해 본 바가 있다.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중복적인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연대체는 개인 업무에 추가되는 업무를 발생하며, 개인적∙조직적 차원의 이익이 적고, 연대체에서 결정된 것이 개별 조직에서는 관철되지 않는 경험을 너무 많이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연대체의 필요성은 동의하나 그 진행 요구는 개인적∙조직적 피로도를 상승시키고, 그 피로도의 상당부분은 연대체 혹은 개별 단체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동의단계에 얽혀 있는 의사결정의 지난함 때문인 것이다.

이상의 아쉬움들을 돌아볼 때 '큰 연대(big solidarity)'를 버리고 '작은 연대(small solidarity)'를 취하는 방식을 시민사회에 제안하고 싶다. 작은 연대란, '단체 대 단체'가 아닌 '부서와 부서' 간의 연대를 말한다. 기관의 성격이 다소 상이하더라도 공통적인 직무는 존재한다. 그런 공통직무를 중심으로 부서 실무자 간의 연대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민단체의 HR부서 간의 연대체라면 좀 더 포괄적인 '비영리단체스러운' HR운영 방식을 만들고 실험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체의 미션을 시민들에게 확산하는 교육부서는 교육부서 간의 연대를 통해 다양성과 확산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이 점점 올드해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왕왕 듣고는 한다. 동일한 고민을 하는 기업들이 애자일 모델 등의 파격적인 조직 운영 체계를 도입하려는 이유도 결국은 팀과 직급의 구조를 탈피하고 효율성 있는 의견 수렴과 진행을 통해 조직을 쇄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델이 시민사회 안에서도 자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작은 연대체 논의가 시민단체들을 보다 젊게 만들 수 있는 방식이다. 작은 연대체들은 규모에 맞는 기획, 적은 리스크로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으며 공동 학습과 그를 통한 담론 생성에도 용이하다. 

에릭 올린 라이트의 책 <리얼 유토피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란 단단하게 통합된 총체라기보다 느슨하게 연결된 체계'라는 개념설명이다. 나는 그 '사회' 앞에 '시민'이라는 단어를 붙여 넣고 싶다. 느슨하고 작은 것이 결국 단단하고 큰 것을 하나둘 만들어 갈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비영리단체 교육부서에서 나눔과 순환의 주제로 다양한 세대를 만나가며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활동가는 노동자인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