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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었던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오산)이 스포츠 인권 유린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이 담긴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습니다.[편집자말]
6월 26일 세상을 떠난 최숙현 선수가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
 6월 26일 세상을 떠난 최숙현 선수가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
ⓒ 경주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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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3종 경기(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고 최숙현 선수가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항상 그렇듯 사망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관련 기관은 호들갑을 떤다. 연초부터 제보와 신고가 있었지만, 관련 기관들은 이를 묵살한 것과 다름 없다. 그 결과 최숙현 선수는 절망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아무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알려진 스포츠 인권 사건 중 가장 추악하다. 특히 지난해 쇼트트랙 성폭력 사건으로 대통령까지 나서 체육계 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마련을 촉구한 터라 더욱 충격적이다.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도 체육계의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체육계 폭력이 반복되는 구조적 진실은 무엇일까? 구조적 진실을 덮어두고 미봉책으로 마무리한다면 앞으로도 스포츠 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스포츠 폭력의 구조적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스포츠 폭력의 탄생

2005년 태릉선수촌 쇼트트랙 국가대표 구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는 국회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하는 동안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인권보다는 메달을 우선한다'는 승리 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메달을 위해 폭력이 정당화되고 폭력을 용인하는 승리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한 스포츠 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학부모들이 신봉하는 승리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인권 대통령 정부조차도 없애지 못했다. 그 결과 심석희 선수에 이어 최숙현 선수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승리 지상주의는 박정희 유신시대의 유산이다. 1972년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 냉전 대결을 본격화했고 이때 스포츠를 총성없는 대리전으로 간주했다. 일본에 지더라도 북한만은 이겨야만 했다. 1970년대 북한보다 열세인 엘리트 체육을 강화하기 위해 합숙소, 연금, 군면제, 태릉선수촌, 특기생 제도 등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때였다. 

유신정권의 스포츠는 국위를 선양하고 체제우월성을 나타내는 도구로 전락됐다. 이때 '국가아마추어리즘'이 정착됐다. 특히 전두환 정권은 스포츠를 사회통합의 수단으로 삼기위해 서울올림픽 개최, 프로스포츠를 적극 지원했다. 1970·1980년대 스포츠는 국민 건강은 뒷전이고 국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사용됐다. 

아마추어 선수를 국가가 육성하고 보상하는 이 시스템은 북한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운영했던 사회주의 스포츠 정책과 같다. 국가아마추어리즘은 승리 지상주의를 낳았고 승리 지상주의는 선수의 인권은 뒷전으로 두고 메달과 우승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문제는 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 몰락 이후 국가아마추어리즘은 종말을 고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국가아마추어리즘을 국가 체육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한국처럼 국가아마추어리즘을 가진 나라가 없다. 연중 국가대표선수촌 운영, 특기생제도, 연금제도, 군면제 특혜, 합숙소 등의 제도와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국가아마추어리즘은 필연적으로 승리지상주의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국가아마추어리즘, 철회가 필요하다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故) 최숙현 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故) 최숙현 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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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장희진 수영선수 사건, 2005년 태릉선수촌 쇼트트랙 구타 사건에 이어 지난해 쇼트트랙 사건, 그리고 이번에 최숙현 선수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 개인의 일탈이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시대착오적인 국가아마추어리즘이 낳은 결과다. 정부가 국가아마추어리즘을 폐기할 의지가 없으니 사건에 대한 책임은 유야무야되고 대책은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스포츠 폭력은 지속되고 있고, 언제라도 불행한 일은 또다시 발생할 것이다. 정부 스스로 국가아마추어리즘을 철회하지 않는 한 스포츠 폭력은 지속될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은 스포츠 인권을 강조하며 스포츠 생태계 변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국가아마추어리즘과 스포츠 인권은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 개념이다.

국가아마추어리즘을 폐기해야 한다. '더 많은 메달'을 위해서는 더 많은 '사회주의식 보상제도'가 필요했다. 폭력은 이 구조 아래서 무한증식돼 왔다. 성과 위주의 강요를 포기하고 보상 제도를 개선·정비해야 한다. 국가와 소속 집단을 위한 헌신을 강요하지 말고, 보상 제도와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유신의 잔재이자 사회주의체제의 유물인 국가아마추어리즘 정책의 폐기 없이 선진국 수준의 스포츠 인권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와 다름없다. 국가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미련과 유혹을 버리지 않으면서 스포츠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하는 것은 구조적 진실을 외면한 처사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안은 있다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큰 대안의 하나가 바로 '스포츠클럽'이다. 스포츠 폭력을 근절하는 근본적 대안은 승리 지상주의로 점철된 국가아마추어리즘 대신 국민복지와 건강을 위한 스포츠클럽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100년 이상 시행해 오는 스포츠클럽을 도입하면 청소년과 시민들이 행복한 스포츠복지 시대를 열고 스포츠인권시대를 맞을 수 있다. 

즐거움과 건강을 위한 스포츠클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면 스포츠 폭력이 사라지고 클럽을 통해 엘리트 선수가 육성되는 새로운 체제가 확립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실천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누구나 즐겁게 운동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스포츠클럽으로 가게 되면 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 스포츠 인권은 복잡하지 않다. 신체적·언어적 폭력 없이, '하고 싶은 운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스포츠 생태계 혁신을 지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도적 혁신의 핵심인 스포츠클럽지원법이 지난 20대 국회에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국회의 책임 방기가 스포츠 폭력을 조장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직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하는 동안 스포츠클럽법을 제정하려고 했지만 무산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다행히 지난해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스포츠클럽 도입을 제안했기에 향후 정부의 분명한 의지와 실행을 기대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로 시민 건강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21대 국회가 나서 스포츠클럽법을 제정하길 바란다.

국민 누구나 클럽에서 운동을 하도록 시설과 지도자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스포츠클럽을 통해 시민들과 청소년들은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이것을 통해 우수한 선수들이 발굴되고 선수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도전하는 정상적인 스포츠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구조적 진실을 직시하고 주저 없이 실천해야 한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월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체육계 성폭행·폭행 OUT! '운동선수 보호법(일명 심석희법)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체육계 성폭행·폭행 OUT!, 발언하는 안민석 의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월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체육계 성폭행·폭행 OUT! "운동선수 보호법(일명 심석희법)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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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민석, #스포츠인권, #국가아마츄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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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안민석입니다. 제 꿈은 국민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삶의 모델이 되는 정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마이에 글쓰기도 정치를 개혁하고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 중에 하나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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