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4일(미국 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독립기념일 기념행사를 주최하고 있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4일(미국 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독립기념일 기념행사를 주최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UPI

관련사진보기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미국의 성조기가 날리고 비행기가 축하 비행을 하는 가운데 러쉬모어 산자락에서 트럼프는 기념일 연설을 40분 동안 진행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화합을 외치는 대신 자신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극좌 파시스트이며 시위에 동참하는 학생들이 조국을 증오한다고 일갈했다. 인종차별주의자로 판명이 난 백인들의 동상을 제거하자는 외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독설을 쏟아 부었다.

"우리의 유산을 말살하려는 자는 미국이 자긍심을 잊고 우리의 위대한 존엄을 잊어 우리 자신이나 미국의 나갈 길을 더 이상 알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을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활기차며 가장 관용적인 사회로 만들어 준 신념과 문화와 정체성을 말살하고자 한다."

트럼프의 이와 같은 거의 문화전쟁 선포와 같은 연설은 그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국론 분열의 행보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가 연설을 하는 동안 배경으로 나온 러시모어 산은 1868년 아메리카 원주민과 미국 정부가 계약을 맺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소유가 합법적으로 인정된 땅에 속한다. 그러나 1870년 이 지역에 금이 나오자 미국 정부는 이 땅을 야금야금 불법적으로 빼앗았다. 아무런 배상도 하지 않고 말이다. 1980년 미국연방대법원도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법적 판결을 내렸다.

러시모어 산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4명의 인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일삼은 이들이다. 노예 해방을 명분으로 남북전쟁에 참여한 링컨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이 또한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종차별과 관련한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미국의 비정부기구 인권단체의 대표인 틸슨(Nick Tilson)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상대로 종족학살을 저지른 인물들의 얼굴을 부숴버리고 이 땅을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트럼프는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을 극좌 폭도들이라고 당당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위대한 아메리카를 다시 세우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대한 미국?

지난주에 미국 노동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실업률은 11.1%로 4월 달의 14.7%보다는 조금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1930년대의 대공황 때의 수준과 버금가는 실정이다. 그리고 실업수당 신청자 숫자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의 많은 실업자들은 2020년 3월 27일 발효된 코로나바이러스 지원, 구호, 경제 안보법, 곧 이른바 '보호법'(Cares Act) 덕분에 1주일에 600달러(약 71만 원)를 추가 지원 받는 것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7월 말에 종료될 예정이다.

또한 현재 미국은 월세와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못하는 이들을 위한 지불 유예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또한 곧 종료될 예정이라 빈민 가정들은 파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트럼프 정부는 제2차 긴급 재난지원금을 지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제1차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개인당 1200달러(약 143만 원), 가구당 2400달러(약 286만 원)를 이미 지급한 바가 있다. 그에 버금가는 예산을 편성해야 할 형편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로는 미국의 구조적인 빈부격차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미국 국민의 하위 50%는 국부의 1%만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반면에 상위 10%는 그 가운데 70%를 독식하고 있다. 퓨연구소(Pew Research Center)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중산층은 이 국부의 17%만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 사이에 절반이나 줄어든 것이다.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 가운데 50%는 1년에 2만 달러도 못 벌고 있다. 미국 가정의 70%는 그날 벌어 겨우 그날 먹고 살아가고 있다. 지난 20년간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가 터무니없이 올라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세계사회이동성지수(Global Social Mobility)에서 조사 대상 82개 국가 가운데 미국은 27위에 불과했다. 이 지수는 한 사회의 교육, 보건, 기술 접근, 사회 보호, 노동 조건을 기준으로 사회적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수치로 산출한다. 이 지수에 따르면 13위까지가 유럽 국가들이다. G7 국가 가운데에서도 미국은 6위에 머물렀다.

이러한 미국의 극단적 불평등의 근원적 원인은 신자유주의라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놓여 있다. 현재 미국의 노동자 가운데 85%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경기가 나쁠 때 가장 먼저 치명타를 당한다. 또한 경제적 약자는 인종과도 직결된다. 미국의 흑인가정은 백인 가정에 비하여 수입이 60%밖에 안 된다. 아시아 출신의 이민 가정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이러한 빈부격차를 일시적인 정부 보조 또는 최상층의 부자들의 자선 의지로만으로는 해결할 수는 없다. 구조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탄 스티그리츠(Joseph Stiglitz)는 미국이 지난 40년 동안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약화된 결과 빈부격차의 가속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정치가들은 불간섭주의로 자본가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잉여이익을 남기는 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 결과가 2008년 미국의 월가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이다. 금융위기는 부동산 가격을 폭락을 불렀고 미국도 20% 넘게 부동산이 폭락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중산층은 실질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사실 미국의 경제는 빚으로 유지되고 있다. 주택 구매는 담보 대출 없이 불가능하고 대학교 교육도 학자금 융자 없이는 매우 어렵다. 2018년 기준 학자금 융자 총액은 1.5조 달러에 이른다. 2019년 기준 주택융자금 총액은 9조 5천억 달러이다. 그리고 2019년 2분기까지의 가계부채 총액은 13조 8,600억 달러에 이른다. 2019년 기준 미국의 GDP 21.43조 달러의 74%에 육박하는 액수이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인 디턴(Angus Deaton)과 그의 아내 케이스(Anne Case)가 공저한 <절망에서 오는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Deaths of Despair and the Future of Capitalism)>라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미국의 중산층, 특히 백인 중산층의 몰락의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 사회는 부의 불공정한 분배가 만연하고 바로 그 때문에 미국의 허리인 중산층이 몰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공정한 부의 분배는 제도적인 것이라서 깨뜨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미국 사회의 부자들의 이른바 제도적 '불노소득'(rent-seeking)으로 중산층만이 아니라 상위 1%에 속하지 않는 다른 미국 시민들이 모두 가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대수명마저 줄어

디턴은 한 마디로 트럼프는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곧 트럼프는 미국의 경제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 경제의 문제가 미국인들의 사망률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70년 후반 영국을 능가하던 미국인의 기대수명이 2007년을 전후하여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의 직접적 원인으로 디턴은 급격히 증가하는 자살, 알콜 중독의 영향, 약물 사용의 증가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디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놀랍게도 특히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45세에서 54세에 이르는 백인 저학력 노동자 계층이 1990년대 말부터 이 세 가지를 원인으로 가장 많이 사망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을 디턴은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에서 찾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백인 노동자들도 적당한 직업을 가지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30년짜리 주택담보대출금을 정년까지 갚고 나면 내 집도 생겼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나오는 퇴직연금으로 적당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구체적으로 1979년에 비해 2017년 백인 노동자의 구매력이 무려 13%나 줄어들었다. 자동화와 세계화가 이들의 노동력의 값어치를 떨어뜨린 직접적 원인이 됐다. 줄어든 수입은 건강 문제와 직결된다. 미국은 GDP의 17%를 공중보건예산으로 지출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참고로 2위인 스위스는 12%이고 한국은 6%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10% 내외이다.

미국인의 의료보험비는 3인 가족 기준으로 2만 달러 내외이다. 연봉 10만 달러인 정규직 사원의 경우는 회사의 지원이 있어서 자부담이 절반이 안 되어 이를 감내할 수 있지만 미국 노동자의 85%에 이르는 자영업자나 비정규직에서 일하는 이들의 경우는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치솟는 고용비용으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사회적 유대마저 상실하게 된다. 디턴의 말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좌절과 분노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살이나 술 또는 약물을 선택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삶과 존재의 의미이다. 그런데 그 의미가 사라지니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제적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상위 1%의 극상류층의 부는 합법적 '불로소득'(rent-seeking)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디턴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제약회사는 오바마 케어 관련법 제정 과정에 로비를 하여 약값을 회사가 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의사협회도 정계 로비를 통하여 의사 정원을 억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급여를 안정적으로 높이도록 했다. 그래서 의료 혜택을 받는 국민의 수는 늘었지만 결국 정작 그 제도에서 최대의 수익을 얻는 것은 이미 부유한 제약회사와 의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비용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하니 결국 국민은 거시경제적 차원에서 부담이 늘고 수익은 줄게 됐다.

왜 가난해지는지 모르면서 가난에 빠지는 현상
 

그런데 미국의 대다수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이 왜 가난해지는지 모르면서 가난에 빠지고 있다. 그래서 자기 부모세대에서는 대학을 안 나와도 적당한 직장에 들어가 평생 일하면 집을 사고 아이들을 대학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하며 분노하는 것이다.

이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이 전통적인 중도좌파를 표방한 민주당의 변심이다. 이들은 더 이상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지도부는 대부분 지식계층이고 고소득층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고통에 동참할 수가 없는 구조적 상황에 있는 것이다. 디턴의 말에 따르면 이제 미국의 민주당은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와 소수자들을 표밭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산층에 속하는 백인 노동자들을 대표하던 정당이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와 박탈감과 절망을 철저히 이용한 것이 바로 트럼프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하여 트럼프는 세계화와 중국 그리고 더 나아가 백인들이 보기에 아무런 노력도 안 하면서도 정부의 복지 혜택을 '엄청' 받는 소수자들, 특히 흑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그 백인 노동자의 삶은 나아진 것이 조금도 없다. 디턴이 강조한 대로 해외로 나간 미국의 공장이 미국에 다시 세워진다고 하여도 그 공장에서는 결국 백인 노동자가 아니라 로봇이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의 고민을 알고 자존감을 세워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트럼프는 정신적 위로라도 주고 분노를 '배설할' 기회라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디턴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실 미국의 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유럽식 복지제도이다. 미국도 그럴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1950년대 중반 미국의 공화당이 아닌 오히려 민주당이 공공의료제도를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그 당시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이 내는 돈으로 다른 사람들, 특히 '정상적인 시민이 아닌' 흑인이 복지혜택을 보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보의 결과를 처절하게 맛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그:#빈부격자, #트럼프, #불노소득, #미국독립기념일, #백인노동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