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원순 서울시장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여러 의견과 평가나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마이뉴스>는 박노자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박원순 서울 시장의 비보를 처음 들었을 때, 제 뇌에서 스쳐 지나간 첫 생각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고위 공직자마다 '여비서'가 달려 있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죠. '비서'가 왜 필요한지 알겠지만, 이 비서를 묵시적으로 (젊은) 여성으로 상정하는 우리 '상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한순간엔 아주 궁금해졌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여비서'에 해당하는 직책을 찾기는 힘들 것입니다. 조정의 비서 격은 아마도 승정원의 승지이었을 것인데, 승지는 정치적 논의에 개입할 수 있는 고급 품관이었습니다. 서울시라면 조선시대의 한성부에 해당하겠는데, 한성부 부윤에게는 영조 원년 (1725년)부터 주부(主簿)라는 비서 격의 보조원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부의 직무는 '잔심부름'이나 '일정 확인'하고는 그 성격이 아주 달랐습니다.

조선시대뿐만입니까? 제가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 중의 하나는 <스탈린의 전직 비서의 회고>이었는데, 이 '스탈린의 전직 비서'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습니다. 보리스 바자노프 (Boris Bazhanov, 1900-1982)라는 인물인데, 그 사람은 1925년까지는 소련 공산당 정치국 회의 때에 그 회의록을 작성했던 비서였습니다.

1928년에 서방으로 극적으로 탈출했는데, 죽을 때쯤 출판한 그 회고록에서는 스탈린이 그 경쟁자들을 정치국에서 어떻게 내밀어버렸는지 아주 상세히 잘 묘사된 것이지요. 좌우간 그는 비서긴 비서이었는데, 1920년대에 공산당의 분위기에서는 비서를 성적 대상화 하는 것은 (아직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비서직은 꼭 '여성'에게 할애되는 몫도 아니었고요. 

직장에서의 남녀평등 실현돼야

일정한 노동 부문들을 여성에게 도맡기다시피 해 거기에다가 저임금이나 성적 대상화를 '덤'으로 얹히는 것은 바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특징입니다. 하기야 현재 러시아에서는 'sekritutka' (sekretar(여비서)와 prostitutka(매춘녀)라는 단어의 조합어) 같은 신조어들이 태어난 거로만 봐도, 이미 여비서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성적 착취는 거기에서도 거의 정착되었다고 봐야겠죠. 한국만의 고질은 절대 아닙니다.

저임금 직종들의 여성화, 그리고 '여성적' 직종들의 성애화(erotization)는 전 세계의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폐풍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도 그 판 속에서도 한국의 사정은 상대적으로 좀 심한 편이죠. 노르웨이 도시 시장의 여비서는 얼마든지 50대 여성일 수도 있고 남성일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도지사님, 시장님의 여비서라면? 거의 대부분 미혼의, "뛰어난 미모"의 비교적 젊은 여성들입니다. 

직장 세팅부터 이와 같은, 지극히 가부장적인 방식으로 해두는 것은 성적 착취의 잠재적 가능성을 애당초부터 제공하지 않나요? 그것뿐입니까?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휴가차 온 베르겐이라는 노르웨이 도시입니다. 코로나 시국, 외유 통제령으로 외국에 갈 수가 없어서 지금 아이를 데리고 여기로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 비행기에서는 여승무원 두 분이었는데, 두 분 다 50~60대로 보이는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내 항공사는 과연 기혼의, 50~60대의 여승무원들을 많이 고용합니까? 불문가지의 문제지요. 물론 노르웨이라고 해서 직장에서의 남녀평등을 이룬 것은 아니고 아직은 갈 길은 멀어도 아주 멀지요.

예컨대 제가 몸담고 있는 고등교육 부문 같으면 여교수의 비율은 30% 정도밖에 안 됩니다. 10년 전에는 20%이었는데, 여성들에 대한 취직 시 역차별 정책 등을 통해서 이렇게 10년 만에 10%나 높인 거죠. 그래도 원칙상 반반, 남녀가 50%씩 돼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데에는 아마도 20~30년 더 걸릴 것입니다. 노르웨이도 아직 이 부분에서 갈 길은 멀지만, 국내의 이공계나 법대, 아니면 예컨대 한국사학과 등의 교수진 구성을 한 번 보시지요. 여성 비율은 어떻게 될까요? 

직장에서의 성적 대상화와 성추행, 성 착취를 근절하자면 일단 직장에서의 진정한 남녀평등부터 실행되는 게 장기적으로 결정적이지 않을까요? 예컨대 대학에서 대학원생의 다수가 여성인데, 그 지도교수의 다수가 남성이라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세팅인가요? 

가부장적 사회, 불평등 구조의 결과물인데, 적극적인 역차별 정책 등을 동원해서라도 이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정당에서 지자체 수장들의 후보를 낼 때는 그 절반은 여성들에게 할당돼야 하지 않을까요? 비서직 등으로 남녀를 골고루 뽑고, 여러 연령대의 노동자들에게 골고루 그 자리들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여자는 사무실의 꽃"과 같은 과거의 가부장적 통념들을 완전히 벗어나자면 사무실의 젠더적 구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일 듯합니다. 공직 사회나 기업에서의 성추행에 대한 조기 신고가 관행화돼야, 그리고 취직 때부터 신고의 방법 등을 모두에게 잘 알리고 조기 신고를 권장해야, 여러 가지 비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들이 너무 많습니다.

태그:#박노자, #박원순 사건, #박원순 서울 시장 사망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