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6 18:32최종 업데이트 20.07.1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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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독일은 미국, 영국, 호주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국 학생들을 유치하는 나라다. 영어권 국가가 아니라, 언어장벽이 높다는 단점이 있으나 학비가 거의 무료에 가깝다는 장점과 함께 일부 분야는 여전히 매력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이 같은 장점은 지난해부터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위험은 2018년 마크롱 정부가 외국 유학생 유치를 두 배로 늘리겠다는 야심을 품고 내놓은 개혁안 '프랑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Bienvnue en France)에서 비롯된다. 2018년 독일이 프랑스를 제치고 4번째로 많은 외국 유학생을 받아들이면서, 프랑스 정부는 뒤바뀐 순위를 탈환하기 위해 외국인 학생들에게 더 쾌적한 대학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대학에서의 영어 수업 확대,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불어 강좌 강화, 학생 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 그리고, 놀랍게도 비유럽권 학생들에게 15배의 등록금 부과를 이 계획에 넣는다. 일반인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마크롱주의'적 사고의 소산이었다. "그들의 편의를 위해 대학을 개선하되, 그 비용은 그들이 내야 한다"는 철저히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기존의 프랑스 교육이 갖는 보편적 권리라는 원칙과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의 불복종  
 

2018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생들이 정부의 외국 유학생 등록금 대폭 인상 방침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 EPA/연합뉴스

 
이 같은 결정은 즉각, 커다란 반발에 부딪혔다. 정부의 개혁안은 2019년 9월부터 비유럽권 학생에 대해선 학사 과정 2770유로(약 370만 원), 석사 과정 3770유로(약 500만 원)를 적용하게 했다. 기존 학비는 각각 170유로(약 23만 원),  243유로(약 33만 원)이었다.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적인 등록금 적용, 외국인 학생에게만 15배로 뛴 등록금에 유학생들은 물론 프랑스 학생들, 교수, 학장들까지 대학에 있는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반대했다. 이 같은 조치는 유학생들을 더 유치한다기보다, 있던 유학생도 돌아가게 할, 애초의 목적에 반하는, 헌법이 규정한 교육에 대한 동등한 접근과 무상교육의 원칙을 파괴하는 조치였다. 파업과 성명, 집회로 이어지는 격렬한 투쟁이 학사 일정을 마비시켰다. 

그 결과 정부는 박사 과정에 한해서는 기존의 동일한 등록금 체계를 유지한다며 한 걸음 물러났고, 2019년 4월에 발표한 이 개혁안의 시행령에 몇 가지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 전체 학생 가운데 10%(프랑스 대학의 평균 유학생 비율은 13%다)는 학비를 면제해줄 수 있으며, 전체 학생의 27% 선에서 최고 5천 유로까지 장학금과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여 재정적 어려움이 학업에 장애물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의 개혁안 자체는 그대로 두었다.

그럼에도 절대 다수 대학들은 정부 방침에 불복종을 결의한다. 전체 72개 공립대학 가운데 6개 대학만이 정부안을 따랐고 나머지 대학들은 비유럽권 학생들에게 부과한 15배의 등록금을 학교 방침에 따라 면제해 주는 방식을 택해 정부안을 무력화했다. 6개 대학에서도 실제로 15배의 등록금을 낸 학생은 극소수였다.

정부의 일방적 조치가 합헌인지 따지는 법정 싸움도 이어졌다. 첫 결과는 프랑스대학생연합 등 수십 개의 단체가 제기한 위헌 소송에서 나왔다. 2019년 10월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무상교육 원칙은 대학교육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저렴한 수준의 등록금을 대학이 부과하는 것을 배제하진 않는다"라는 다소 모호한 판결을 내놓았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저렴한 수준의 등록금'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헌재의 판결은 정부와 대학 측에 각각 절반의 승리를 안겨주면서 또렷한 결말을 제시하지 못했다. 저렴한 수준이란 200유로인가 3000유로인가?

이달 초 행정법원도 비유럽권 학생 등록금 인상 조치에 대해 판결했다. 행정법원은 정부 조치가 합법이라며 그 논거로 또 '저렴한 수준의 등록금'을 제시했다.  
 
"문제의 등록금 인상은 학생들의 재정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비용의 부분적 혹은 전체적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그들의 교육에 대한 접근에 어떤 장애도 초래하지 않았다. (중략) 국가 학위를 얻기 위해 대학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저렴한 수준의 등록금은 제공되는 교육의 비용이라는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는 정부가 개혁안을 내놓으며 제시한 논리 중 하나였다. 회계감사원이 평가한 대학 교육의 연평균 실질 비용은 약 1만 유로(약 1350만 원)이며 대학이 비유럽권 학생에게 요구하는 등록금은 실질 비용의 30% 수준에 불과하기에 이는 저렴한 수준의 비용이라는 것이다.

저렴한 등록금, 헌법 가치 뒤흔들다 

프랑스대학생연합(Unef)은 "정부의 이러한 원칙은 돈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대학 교육에 드는 비용을 외국인 학생들의 돈으로 채우겠다는 속셈"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들은 헌법이 보장해 온 보편적 권리로서의 교육에 비용 개념을 도입해 그것을 저항이 약할 수밖에 없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먼저 적용했다며 정부의 조처는 비유럽권 학생들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차별'을 넘어 헌법의 원칙을 파괴하려는 시도라고 규탄했다.

또, 마크롱 정부가 재정 건전화를 이유로 서서히 자국 학생들에게도 이를 적용하려 할 것으로 본다. 다행히도 이 문제에 있어서 학생과 교수, 학장들은 비슷한 관점을 유지한다.
 
"행정법원의 이러한 결정은 적절한 학비라는 개념을 일반화 하고, 정부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모든 학생들은 그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라는 논리를 정당화 할 수 있다."
- 프랑스대학총장회의 변호인 
 
법적 판단은 종결, 선택은 학교 몫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EPA

 
분명한 건 마크롱 정부의 외국인 유학생 2배 증가 프로젝트는 완전한 실패이며, 이 괴물 같은 개혁안을 원하는 사람은 대학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 발표 후 대학들이 불복종 저항을 했지만 유학생 수는 감소했고 코로나19 발발로 그 숫자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행정법원은 정부의 개혁안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할 뿐 그 조치를 강제할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정법원의 판단이 대학의 불복종 저항에 찬물을 끼얹은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마크롱은 취임 초 시민들과 정부 지도자 간 오랜 불화의 전통을 깨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피력한 바 있다. 7월 14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를 알고 있으며 초기의 포부를 실현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개혁안으로 대학 사회에 혼란을 초래한 정부, 혁명이 수립한 근본 가치마저 비용과 이윤의 이름으로 파괴하는 대통령과 시민의 불화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리하여 올 9월에 청구될 유학생들의 등록금은 여전히 학교와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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