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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기자말]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2018년 11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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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힘 안 들었지? 한빛, 한솔이는 알아서 공부했지?"
"남자애들은 여자애랑 다르잖아. 우리도 엄마 속 많이 썩이지 않았니?"
"그래도 힘들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도대체 뭘 해달라는 건지? 말도 못 붙이고 애 눈치만 살펴. 나 병날 것 같아"

재수를 하는 조카가 여름을 지나면서 슬럼프가 왔나 보다. 막내 여동생이 전화로 하소연을 해왔다.
  
'대한민국 고3 수험생 엄마'에 고충을 알기에 수험생 조카가 이해되면서도 동생이 안쓰러웠다. 동생은 성격이 여유로운 편이다. 형제들이 질투할 만큼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도 수험생 엄마는 피해갈 수 없나 보다. 동생한테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들의 슬픈 눈, 엄마는 후회했다

한빛이 중학교 입학 후 치른 첫 중간고사가 생각난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도 시험 기간이라 일찍 집에 왔다. 점심을 차려주면서 한빛의 영어시험지를 봤다. 1학년 영어시험은 우리 학교에도 만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한빛은 여러 개를 틀렸다. 쭉 훑어봤다.

내가 아는 문제가 눈에 띄었다. 동사 'have와 has'를 채우는 문제였다. 이건 눈감고도 맞출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순간 이 쉬운 것도 모르나 어이가 없었다.

"이것도 틀렸어? 아니 삼인칭에는 has를 쓰고 일인칭에는 have를 쓰는 거잖아. 이건 기초 중의 기초 아냐? 이것도 몰라?"

나는 한빛을 다그쳤다. 그때 나는 슬픔이 가득 들어있는 한빛의 눈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황망해 하는 표정을 읽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억울함도 있는 것 같고 자신이 형편없음을 인정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내가 너무 한심해 소름이 돋았다. 미쳤구나 미쳤어. 이러고도 엄마라니. 미안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많은 말들을 내뱉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밥을 차려 주었다. 밥을 안 먹겠다는 말도 못 하고 꾸역꾸역 먹고 있는 착한 아들. 한빛을 보면서 나는 이 시간 이후부터 다시는 한빛에게 시험점수를 가지고 닦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키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나는 어쨌나? 'have와 has'나 알았지, 고3 때 예비고사 영어나 수학은 목표한 점수의 반이라도 간신히 맞혔다. 노력으로 가능한 암기과목 덕분에 그나마 지방 국립사범대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국어과도 만만치 않았다. 여학생이 20명이었는데 16명이 대학이 위치한 도청 소재지의 최고 명문 C 여고 출신이었다. C 여고 특별반(우수반) 출신으로 대부분 고3 때 같은 반이었다. 모두 우스갯소리로 우리 과를 C 여고 부속 대학교라고 했다.

예비고사 합격생이 겨우 3명이었던 시골 학교 출신인 나에게는 우열로 나눌 만큼 학생 수가 많다는 것이 신기했다. 더욱 부러웠던 것은 국어과인데도 모두 수학을 잘하는 것이었다. C 여고 특별반은 '이과반'이라고 했다. 문과, 이과 구분 없는 학교를 졸업했지만, 이과반 출신이 국어과를 온 것도 나에게는 특이했다.
  
덕분에 1학년 교양 수학 시험 때 나는 그들이 풀어놓은 과정을 달달 외웠다.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를 그들은 의아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하긴 수학을 외우는 나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외워서라도 겨우겨우 수학 시험을 치러냈다. '국어 전공할 건데 수학을 왜 잘해야 해'하며 위로했지만, 초라했고 불쌍했다.
  
이런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알량한 'have'와 'has' 가지고 한빛을 그렇게 몰아붙이고 한빛이 공부하는 과정은 살펴보지도 않고 천재이길 바랐던 나.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참으로 무책임한 엄마였다.

점수가 잘 나오길 바랐던 엄마, 아들이 행복하길 바랐던 엄마 

중학교 1학년 한빛의 깊고 슬픈 눈이 가슴 아프게 남아있기에 나는 이후 시험점수에, 공부에 무심한 척했다. 물론 힘들었다. 속마음까지 완벽하게 감추지도 못해 한빛 편에 서지도 못했다. 나도 보통의 수험생 엄마였고 게다가 이중적인 태도로 내내 갈등했으니 한빛이 그 정도도 눈치 못 챘을까?
  
나는 흔들릴 때마다 기다리자는 주문을 외우며 노력했다. 성적에 관해 묻고 싶을 때면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수학 때문에 눈물을 훔쳤던 절망감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한빛이 재수할 때 원룸에 갔었다. 수능이 얼마 안 남은 날. 문제를 풀던 한빛이 갑자기 짜증을 내며 책을 밀어버렸다. 자는 척하던 나는 가슴이 쿵 했다. "왜 그래?"하고 묻고 싶었지만 뻔하지 않은가? 안쓰러워 눈물이 왈칵 솟았다.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한빛에게 정말 미안했다.
  
다음 날, "수능 다가오니 초조하지? 그래도 느긋하게"하고 무심한 척 말했다. "엄마는 지금 정말 행복해. 그러니까 너도 꼭 SKY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에 너무 많아. 한빛아, 너무 힘들게 살지 말자" 이중적이었을지는 모르나 진심으로 한빛이 행복하길 바랐다.

한빛은 말했다.

"영어, 수학은 한 문제만 틀려도 전국 등수가 확 밀려요."
"그럼 다 맞아야 해?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잖아."

"이 세계에서는 실수도 실력이라고 해요."
"그러다 다 미치는 거 아냐? 사람이 어떻게 실수도 안 해?"


한빛은 기가 막혀 하는 내 말에 그냥 웃었다.

석차 백분율이 전국의 몇 퍼센트 이내여야 하고 전국 등수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는 내가 수험생 엄마인 게 창피했을까? 아니면 엄마의 이중적인 마음을 알아채고 더는 솔직해지기 싫었을까? 하긴 어느 쪽도 수험생 한빛에게는 도움이 되는 엄마가 아니었다.

한빛아, 아직 너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엄마는 수학도 암기과목이었고 예비고사 영어도 찍었어. 예비고사 시험장에서 연필이 가는 대로 답 달고 나니 시간이 엄청 남아 제발 반만이라도 맞게 해 달라고 간절히 주기도문만 외웠단다. 그래도 엄마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고 너한테 말했어야 했는데.

한빛아, 엄마가 너를 많이 외롭게 했구나.

[기획 / 새 이름을 갖고 싶어]
① 너 없이 퇴임하지만 슬퍼하지 않을게, 너도 기뻐해줘 http://omn.kr/1ocaj
② 너는 늘 내 가슴에 있으니 우리는 매일 만날 수 있네 http://omn.kr/1occt
③ 나는 한빛이가 아름다움만 느끼고 좋은 면만 봤으면 했다 
http://omn.kr/1odmq

덧붙이는 글 | '새 이름을 갖고 싶어'는 가수 '시와'의 4집 노래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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