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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 그놈이다."
 
나는 저 말이야말로 시민들이 지금의 정치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2030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계 정당의 전통적 또는 콘크리트(concrete) 지지층이라고 여겨져 왔던 청년층이 이제는 그들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래의 말은 너무나도 강력하게 나의 뇌리에 박혀 있다.
 
"정치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 젊은 나이에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뛰어드는 건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 정 하고 싶으면, 자기 분야에서 업적을 쌓고 성공하고 인정받은 후에 그걸 발판으로 들어와야 한다". 

한때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유력하게 거론됐던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2017년 9월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했던 발언이다. 그는 지난 2018년 여름에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며, 당 대표나 총리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올해 4.15 총선에서 당선돼 5선 의원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게 됐다.

대체 왜 청년이라고 해서 정치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되려면 만 40세는 돼야 한다고 하니, 이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젊다고 해서 취업에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업에서는 되레 나이가 많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가? 위와 같은 발언을 했던 사람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려고 한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민주당이 지금까지 2030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를 알려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의 현실과 더불지 않는 더불어민주당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다.
▲ 굳은 표정의 이해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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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기트 타비츠(Margit Tavits)는 그의 저서 <옛 공산국가의 민주주의와 정당 조직>(Post-Communist Democracies and Party Organization)에서 이념적 리더보다는 실용적 리더가 정당 조직을 강화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정당의 조직이 강할수록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여기에서 그의 이론을 자세히 논하기란 어렵지만, '이념이 아닌 현실'은 한국의 역대 선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남북관계가, 지난 4.15 총선에서는 정부의 코로나 대응력이 유권자들에게 현실로서 다가왔기에 민주당(계)은 선전할 수 있었다. 이는 다시는 좌파 포퓰리즘이나 빨갱이라는 막연한 '이념 공격'이 유권자들을 오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역사적 사례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현재 도로아미타불이 돼 버렸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시민들의 피로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본래 대외적 요소가 너무나 강력히 작용하고 있는 이슈로 민주당이 시민들의 지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란 애초에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떠한가? 집권 세력이 여전히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구호를 내게 꼽으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를 민주적으로 개선하는 것에 있어 분명히 필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으며 나는 이것의 중요성을 결코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고,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를 도입하는 등의 개혁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금 당장 2030 세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삶의 절벽을 무너뜨리는 것과는 관계가 멀어 보인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눈앞에 닥친' 버겁고 힘든 삶을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해달라는 것이다. 여전히 젊은이들은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구하기조차 어렵고, 자신이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려니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며, 특히나 어렵사리 직장을 구한 여성들은 이미 직장 내 일상화된 성폭력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청년 눈에 비친 민주당의 대응 방식
 
지난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통로 게시판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피해자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메모들이 붙어 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통로 게시판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피해자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메모들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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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민주당은 여전히 '부동산 대책'을 투기 세력과의 전쟁으로, '인국공 사태'를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으로, '박원순 사건'을 여전히 한 동료의 죽음으로만 생각하고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멈출 줄 모르는 집값은 이른바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인구 이동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비싼 집 사는 게 죄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살기 좋은 곳의 집값은 당연히 비싸기 마련인데 그곳에 사는 것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 문제는 그 '살기 좋은 곳'이 대한민국 국토의 약 12%에만 해당하는 수도권이라는 점이며, 그 좁은 땅에 우리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쉐어하우스나 소형 주택에 청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좁은 집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정치인들이 설마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청년들은 그저 집을 살 돈이 없을 뿐이다. 더욱이 지방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만 있다면 굳이 서울에 올라와 그 비싼 집값과 물가를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상징적' 차원에서 접근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실용적' 계획을 수립하는 것부터 민주당은 시작해야 한다. 그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부동산 문제를 바라봤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는 정말 일부 보수언론의 가짜뉴스로 촉발된 것이라고만 치부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이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계급화된 노동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노력했는가? 2016년에 구의역에서 '김군'이 우리 곁을 떠났고, 2018년에는 태안에서 김용균씨가 세상을 등졌으며, 올해 4월에는 이천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민주당은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워해야만 한다.
 
게다가 비록 이러한 계급화가 부당하다고는 한들 그래도 잘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에 자리 잡은 청년들의 노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1997년의 IMF 사태 또는 그 이전부터 등장하고 있었던 비정규직이라는 노동구조는 절대로 2030 세대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민주당의 어떤 정치인이 "조금 더 배웠다고 임금 2배 더 받는 게 불공정하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정말로 청년들의 처지를 하나도 헤아리지 못한 발언이지 않은가? 참된 정치인이라면 어떻게 학벌 구조를 타파하고 노동의 계급화를 무너뜨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바른 자세이지, 현실 속에서 정당하게 자신의 위치를 차지한 청년들의 뼈를 깎는 노력 자체를 헐뜯어서는 곤란하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 대처하고 있는 집권 세력의 태도는 또한 얼마나 옹졸했던가? 피해자를 '피해 고소인'이라고 부르다가 마지못해 표현을 고치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박원순 시장 사망 이후 2주일가량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다가 23일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안희정, 오거돈 그리고 박원순마저 권력형 성범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마당임에도 민주당은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여성들의 공감을 얻을 구체적인 대책과 방안을 실행한 적이 있었는가? 민주당이 주장했던 페미니즘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함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특권만을 이야기 한 것이었는가? 그저 조화와 조문을 통해 다시 한번 집권층을 단결시키는 정치적 기회가 마련된 것일 뿐이었나?
 
더 나아가 공당의 당헌·당규에 규정돼 있는 '무공천 규정'까지 바꾸면서 내년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공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민주당 주류의 대세라는 사실은 나를 경악하게 한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부터 평등, 공정, 그리고 정의를 내세웠던 정당이 자신들 스스로가 약속한 규정을 어기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정무적인 판단이라고 한들 공정과 정의를 진정으로 요구하는 2030 세대에 무슨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잘못은 명백히 책임지지 않으려 하면서 어찌하여 청년들에게 그러한 가치를 내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청년들이 바라는 건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 여당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2020.7.16
▲ 기립박수 받은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 여당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2020.7.16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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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2030 세대의 목소리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는가? 젊은이들의 생각과 의견을 청취하고, 그것이 구체적인 정책에 반영되도록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청년 세대가 민주당 안에서 중심적인 소임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과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걸 고민해본 적은 있는가?

나는 넉 달 전에 <오마이뉴스>에 "더불어민주당을 떠납니다"라는 글을 통해 탈당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비록 일개 대학생 당원이었다고는 하나,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이 글에 공감해줬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그 글에서 탈당 사유를 표면적으로는 비례위성정당을 반대한다는 사실로 적었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내가 민주당을 떠나게 된 동기로 작용한 것은 맞다.

그러나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던 것은 민주당이 20대 당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는 전혀 노력하지 않으며 이들이 미래의 정치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당의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며 올라온 사람들이 아니라, 인재 영입이나 더불어시민당을 통해 갑작스레 민주당에 들어온 인사들이 유력한 후보자가 되는 것은 직업 정치인을 지망하는 청년 당원들에게 적잖은 절망과 시기를 안겨줬다. 그렇다면 대체 왜 대학생위원회나 청년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만든 것인지 나는 이 기회를 통해 민주당에 묻고 싶다.
 
이번 4.15 총선에서 20대의 국회의원이 민주당에서 탄생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민주당 소속 176명 의원 중의 1명에 불과하다.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당이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고 있다고는 그 누구라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직업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입당 후 대학생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나 정당 활동은 마치 자원봉사처럼 취급됐다. 남는 것은 임명장이나 활동 증명서와 같은 종잇장뿐이었다.

이로 인해 대학생 당원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매 선거마다 후보자 캠프 활동에 치중함으로써 다른 경로를 모색하거나, 로스쿨 및 대학원 진학을 통해서 일종의 문화자본을 획득한 후에 다시 정계로 진출하려고 했다. 당 내 조직은 파편화되기 일쑤였다. 나는 이러한 악순환이 결국 민주당 내에서 청년 의제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자신의 식구들에게조차 정당한 보상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민주당이 청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청년들은 지금 당장 성과를 내라고 민주당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한국 사회의 과제는 이미 너무나 굳어져 있기에, 그 문제가 한순간에 없어지리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그러한 문제가 일거에 사라지는 기적이 아니라 집권 세력과 민주당이 진심으로 청년들을 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이다. 민주당은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태그:#청년, #민주당,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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