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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의 장점 중 하나가 일정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은퇴자들은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인생을 즐기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시간과 공간, 생각과 행동을 자기중심으로 바꾸고 자기가 이 우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시간이나 돈에 끌려다니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은퇴 전에는 직장이나 가족에 몸이 매여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지만, 은퇴 후에는 자산만의 인생을 즐겨야 한다. 그런 수단 중 하나가 도보여행이다.
          
도보여행의 백미는 혼자 다니는 것이다. 만일 배우자가 도보여행을 좋아하면, 같이 다녀도 좋다. 그러나 단체로 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다른 조직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정이나 코스 조정 등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등산과 도보여행은 그 성격이 다르다. 등산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명이 함께 다닐 필요가 있다. 반면에 도보여행은 등산 코스보다는 훨씬 편하고 안전한 길을 걷기 때문에 굳이 여러 명이 몰려다닐 필요가 없다. 또 단체로 함께 다니면,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빼앗겨버리기 때문에 도보여행의 매력이 반감된다.

걷는 것 자체가 곧 명상이 된다. 왜 그런지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고, 혼자서 하루 10킬로미터 이상 산길이나 들길을 직접 걸어보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살면서 일이 안 풀릴 때는 무조건 걸어라. 그러면 당신이 발 딛고 있는 길이 해결책을 가르쳐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두 발로 직접 걸어가는 길이 종교인들에 의존하는 경우보다 나을 때가 많다. 당신의 길이 있다. 멀리서 어렵게 길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이번 코스는 구례군 황전마을 입구(바로 앞에 지리산 탐방안내소가 있음)에서 화엄사 4사자3층석탑까지 걷는 길이다. 편도 3킬로미터, 왕복 6킬로미터쯤 된다. 왕복에 걸리는 시간은 절에서 보내는 시간에 달려있다. 화엄사 매표소(화엄탐방지원센터)부터는 화엄사 계곡물을 따라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나무도 많아서 그늘로 걸을 수 있다. 맑은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기 때문에 주변 경치도 좋다. 화엄사 위에 자리 잡은 연기암(해발 450미터)까지 다녀오는 코스는 대강 6킬로미터에 3시간쯤 추가로 잡으면 된다.
 
성보박물관 앞에 있는 화단
▲ 화엄사 화단 성보박물관 앞에 있는 화단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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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하고 싶은 사람은 지리산으로 계속 올라가면 된다. 연기암부터 지리산 무넹기까지는 3.6킬로미터이고, 약 세 시간쯤 걸린다. 이 길은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주 악명 높은 험한 코스로 유명했다. 나도 40여 년 전 사회생활 초년병 때 회사 동료들과 이 코스로 노고단에 올라가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와 섬진강 백사장에서 텐트를 치고 은어 낚시를 즐긴 적이 있다. 등산 애호가가 아닌 도보여행자들이 걷기에는 너무 힘든 코스이다.  

이 코스는 1박 2일로 일정을 잡고,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면 딱 좋다. 템플스테이는 템플스테이통합센터(www.templestay.com)나 화엄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약하면 된다.

지리산 언저리에 왔으면, 화엄사에 있는 4사자3층석탑(국보 35호)을 보고 가야 한다. 화엄사는 절이 하도 넓어서 이 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단 절 맨 위쪽에 있는 각황전으로 가서, 왼쪽 뒤편으로 가면 이 탑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거기에 3층 석탑이 서 있다. 거기서 절 전체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또한 일품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 탑은 지금은 해체 수리 중이어서, 창고 안에 모셔져 있는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서 보아야 했다. 수리를 마치고 원상복구 하는데 아마 2~3년은 걸리지 않을까?
 
각황전 석등 사자탑
▲ 화엄사 문화유산 각황전 석등 사자탑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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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이라고 각황전 앞에 서있는 사자탑(보물 제300호)를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사자탑은 1층 몸돌 하나를 네 마리 사자가 머리에 이고 있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화엄사에는 이밖에도 문화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 불교 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각황전(국보 제67호), 몸돌 조각이 예쁜 오층석탑(보물 제132호와 133호로 동서 쌍둥이 탑. 동탑에는 조각이 없다), 높이 6.4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석등(국보 제12호) 등이 볼만 하고, 그밖에도 오래된 전각이 많아서 도보여행을 마친 후(또는 중간에) 한나절을 보내기에는 딱 좋은 절이다.

화엄사로 오가면서 절문 밖 산자락(바로 걸어가는 길 옆)에 자리 잡은 부도(요즘은 승탑이라고 한다) 밭을 둘러보는 것도 우리 문화재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거기에는 옛날의 수수한 부도와 요즘 만든 화려한 부도들이 한 줄로 서 있는데, 그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거리가 된다.

참고로 요즘 만든 것들은 대부분 부도로 유명한 사찰인 연곡사(바로 옆 피아골에 있음) 동부도(국보 제53호)나 북부도(국보 제54호) 또는 서부도(소요대사부도, 보물 1346호)를 모방한 것들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옛날과 요즘 장인(불교 예술가)들의 돌 다루는(조각) 솜씨를 비교해 보는 것도 도보여행의 한 가지 묘미가 된다.
               
절집의 예쁜 화장실
▲ 화엄사 해우소 절집의 예쁜 화장실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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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화엄사, #도보여행, #문화유산, #템플스테이, #황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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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실크로드 여행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제가 다녀왔던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기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성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도보여행기도 함께 연재합니다. 현재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관광레저학박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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