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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프로구단이 선수 맞트레이드를 한다고 치자. 서로 부족한 포지션을 보강하기 위해 겹치는 포지션의 선수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객관적으로 두 선수의 기량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트레이드를 하게 된다면 '간도 쓸개도 다 내준' 트레이드라며 지탄 받을 것이 뻔한 상황이다. 이 트레이드는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가?

정답은 그 트레이드를 통해 좋은 선수를 내주더라도 '결과적으로 타 구단들에 비해 전력이 향상된다면 해야 한다'이다. 물론 트레이드 상대 구단의 전력이 더욱 향상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의 절대적 전력이 상승했다면 트레이드에 참가하지 않은 구단들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고 우승할 확률은 높아진다. 리그에 열 개 팀이 있다고 치면, 트레이드 상대 팀에 대해서는 승리확률이 낮아질 수 있지만 다른 여덟 개 팀에 대해서는 승리 확률이 올라간다.

트레이드 상대팀이 우승을 다툴 라이벌이 아니거나, 해당 선수로 다른 팀과 더 좋은 딜을 할 여지가 없거나, 또는 트레이드로 인해 프론트의 리더십이 붕괴되는 등 외적 변수가 없다면 못할 이유가 없는 거래다. 물론 팬들에게 욕은 좀 먹겠지만 말이다.

코로나 노사정 합의안, 과연 깰 딜이었나?

이번에 민주노총이 최종적으로 부결 시켜 합의가 무산된 노사정 합의안이 이런 종류의 딜이라고 생각한다. 사측은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 지원 확약을 얻어낸 반면, 노동계는 휴업수당 축소 가능성과 경영난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과 휴업을 감내해야 하면서도 해고 금지를 명문화하고 전면적인 전국민 고용보험을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특히 공적 지원을 받는 기업에서조차 해고금지 약속을 얻어내지 못한 것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1998년 정리해고와 파견법 합의의 악몽이 아직 상흔으로 남아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형편없는 거래라고 펄쩍 뛰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다. 역시 결렬이 정답이었을까?

그러나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거래 상대와의 손익계산서 비교가 아니라, 합의 전후의 손익계산서 비교다. 고용보험제도의 확대나 코로나로 타격받은 회사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고용안정과 관련한 논의를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일각에서는 합의안의 '고용유지 노력'이라는 문구가 말뿐이라고 폄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설령 무책임한 대규모 해고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합의안의 존재는 정부 개입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IL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지난 2분기 4억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무시무시한 실업과 침체의 파도 앞에서 전통적으로 재정지출에 인색한 정부와 보수의 상시 우위였던 국회가 전국민 고용보험 같은 새로운 사회복지체제에 대한 논의를 선제적으로 서두르고 있다. 여기서 나온 노사정 합의안은 대안 수립과 입법 절차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시키고 그 효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협상에 들어갔으면 철저히 협상의 논리로 임해야 한다. 자본의 이익이 되는 일을 절대로 못하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애초에 협상에 들어갈 필요가 없고 투쟁을 준비했어야 하는 것이다. 협상의 본질은 윈윈이고, 규칙은 상호 신뢰다. 이를 거부한 채 상대를 거꾸러뜨려야 한다는 것을 고집한다면 시민들로부터도 고립과 불신을 자초할 뿐이다.

사실 이런 협상의 본질적 성격을 민주노총 대의원들과 주요 간부들이 모를 리가 없다. 기업과의 단체협상과 정부와의 교섭에 이력이 난 분들이 대부분이고, 테이블이 박살나는 것보다는 합의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회적 교섭에서만큼은 저울을 놓아버린 것이 아쉽다. 만약 합의를 성사시킨 것에 비해 결렬이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번 사회적 합의안 거부 사태는 안타깝게도 민주노총에 상흔을 남겼다. 또, 코로나라는 '역대급 폭우' 속에서도 노동조합의 우산을 쓰지 못하는 알바노동자들에게도 아쉬움을 남기는 결론이었다는 생각이다. 이 거래,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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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알바노조의 공식적 입장이 아닙니다.


태그:#사회적대화, #노사정합의, #민주노총, #알바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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