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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통리반장 등에게 신문을 나눠주던 일명 계도지가 현재는 주민홍보지 등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 경남에서 전국 최초로 계도지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이후 전국에서 계도지 폐지 열풍이 불었지만 아직 서울 25개 자치구별로 계도지 예산이 집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는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 중 은평구청은 서울에서도 가장 많은 계도지 예산 6억 2382만원을 올해 책정했다. 

이에 은평시민신문은 계도지 예산을 개혁한 지역을 찾아 계도지 폐지의 필요성과 관언유착, 예산낭비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한다. 

기획취재 네 번째 방문지는 강원도 지역이다. 강원도에서는 원주시가 2000년 계도지 예산을 폐지했다. 횡성에서는 횡성희망신문을 중심으로 계도지 폐지 요구가 진행돼 2018년 계도지 예산 중 지역지 예산이 폐지된 상태다. 은평시민신문은 계도지를 거부하고 나선 횡성희망신문과 원주를 찾았다. 
 
'횡성희망신문은 계도지를 거부한다' 홈페이지 캡쳐
 '횡성희망신문은 계도지를 거부한다' 홈페이지 캡쳐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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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희망신문은 계도지를 단호히 거부한다. 지역 언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2019년 1월 횡성희망신문이 밝힌 계도지 거부 선언은 당시 계도지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은평시민신문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바뀌지 않고 있는 계도지 앞에서 지역 언론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너무도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잠시 잠깐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 바로 잡아 준 것도 바로 횡성희망신문의 '계도지 거부 선언'이었다. 그간 횡성에서는 계도지 예산을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횡성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꼭 옛날 대학 동아리방 같죠?"

은평시민신문을 반갑게 맞아준 이는 이용희 기자다. 몇 개의 책상과 작은 회의테이블 하나가 전부인 작은 사무실, 바로 그 곳에서 지역 언론의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횡성희망신문의 조만회 대표는 신문배송을 나갔다고 한다. 직접 취재를 하고 신문을 만들고 또 그 신문을 들고 주민을 만나러 나가는 모습, 지역신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용희 기자는 횡성희망신문의 창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어려웠던 상황과 그 속에서도 치열하게 지역 언론의 길을 걸어온 과정을 설명했다. 특히 행정이 신문구독예산이나 홍보비 등으로 어떻게 언론을 다루려고 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이용희 횡성희망신문 기자 (사진 : 정민구 기자)
 이용희 횡성희망신문 기자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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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희망신문은 2012년 창간했다. 횡성군은 이 신생 언론사에 신문구독 예산, 즉 계도지 예산은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뜻있는 주민들이 횡성군에 횡성희망신문도 좀 지원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건네면 몇 달 있으면 문 닫을 신문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들려왔다"고 이용희 기자는 전했다. 

횡성희망신문은 창간 이후 사업타당성 검증 없이 강행되는 횡성베이스볼테마파크 사업추진 문제점, 묵계리탄약고 이전문제 등 횡성의 현안과 문제점들을 짚어나갔다. 

2014년 군민대통합을 내세우며 출범한 민선6기는 2014년 9월 횡성희망신문 구독 예산을 편성하고 이후 횡성군의회까지 통과됐지만 횡성희망신문은 이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다. 횡성군의 보도자료를 베끼고 횡성군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는 건 지역 언론이 할 일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횡성군과 많은 주민들로부터 "받을 것은 받고 쓸 것은 쓰는 신문"을 요청받고 신문사 내부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늘 빠듯한 살림살이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과 언론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한 원칙,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는 게 사실이다. 결국 횡성군에 대해 비판 기사에 대해 예산지원을 못 받아서 그렇다는 등의 여론에 횡성군의 예산지원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횡성희망신문은 지역신문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공적 예산이 투입되는 건 당연하다는 판단으로 계도지 예산은 받되 몇 가지 원칙을 세우기로 했다. 발행주기를 확대하거나 기자를 추가 채용하지 않는 등 현행 체제를 유지하고 기사 방향 역시 원래의 기조대로 가기로 했다. 공적 예산은 받되 지역 언론의 역할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이용희 기자는 "언제든 횡성군이 주는 예산은 '0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일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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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제공용 신문보급으로 이름 바꿨지만 바뀐 것 없는 계도지 집행

횡성군은 민선 6기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사용해오던 '주민계도용 신문보급'이라는 이름을 '정보제공용 신문보급'으로 바꿨지만 횡성군 내 이반장, 새마을지도자, 경로당 등에 신문을 제공하는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민정보제공용 신문구독이나 횡성군 직원용 신문구독은 정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채 집행하는 관행은 여전했다. 횡성희망신문은 '혈세 먹는 언론예산'이라는 기사를 몇 차례 쓰며 횡성군의 잘못된 계도지 예산 집행, 광고·홍보비 집행을 꼬집었다. 경제적 불이익을 각오하고서라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일이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횡성군 계도지 예산은 3억5천만 원 규모였다. 구입하는 신문은 중앙지·지방지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계도지를 보내는 곳도 이반장 등에서 출향인사, 대통합위원회, 군정모니터 등으로 더 확대됐다. 대통합위원회와 군정모니터 요원은 군수가 만든 주민조직으로 '관변단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인구 4만 6천여 명의 횡성군에 많은 신문이 보급되다 보니 한 가구에 다량의 신문이 제공되는 일도 흔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어 A가구에서 남편이 새마을지도자이고 부인이 새마을부녀회원이면서 동시에 이장을 겸하고 있으면 여러 종류의 신문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횡성희망신문은 여러 차례 문제를 지적했다. 

계도지 예산을 집행하는 부서가 여러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반장 940여명에게 제공되는 신문예산은 기획감사실, 184개소의 경로당에 보내는 신문은 주민복지과, 새마을지도자에게 지원하는 신문은 자치행정과가 맡고 있다. 신문을 보급하는 일이 어떤 목적을 갖고 진행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산, 집행부서, 지원대상 등이 주민을 위한 것도 지역 언론을 위한 것도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계도지 문제 강력 비판

횡성군 계도지 예산에 변화가 나타난 건 2018년 말이다. 횡성군수가 뇌물을 받아 군수직을 상실하는 일이 일어나자 횡성희망신문은 이 과정을 보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횡성군 정책 등을 비판하는 기사에 못마땅했던 횡성군이 2019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횡성희망신문 구독료를 0원으로 만들었다. 반면 횡성군 내 다른 신문사 한 곳은 1억 3천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용희 기자는 "횡성군의회에서도 이런 예산 배정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부결시켰다. 결과적으로 횡성희망신문과 횡성군 내 다른 신문사 한 곳의 예산이 모두 0원이 되었다"고 말했다. 

예산의 형평성도 공정성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횡성군은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전과 같이 횡성희망신문 0원, 다른 신문사 1억 3천만 원의 예산을 올렸지만 횡성군의회에서 다시 부결되었다. 

2019년 1월 "횡성희망신문은 계도지를 거부한다"는 글을 통해 지역 언론의 역할과 행정의 홍보수단이 되어버린 계도지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민선 6기 들어 계도지 예산을 횡성희망신문에 편성하며 군정 홍보의 역할을 요구하고 비판기사가 나올 때마다 "군예산을 들여 구독해주는데 상도의가 없다"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은 점도 드러냈다. 

이용희 기자는 "군수가 특정 식당에서 과도한 업무추진비를 쓴 것은 문제라는 기사를 썼더니 신문 구독예산을 주는데 상도의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행정이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2020년에 들어오면서 횡성군은 횡성희망신문과 횡성군 내 다른 신문에게 똑같이 신문구독예산을 배정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횡성희망신문은 "계도지 예산계획을 세우지 말 것"을 공식 주문했다. 정권이 정권유지나 지자체장 홍보, 비판적 기사 죽이기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예산을 집행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2018년부터 횡성군 내 지역지 계도지 예산은 없앴지만 지방지나 중앙지 등의 계도지 예산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계도지 예산을 집행하지 못하면 대신 광고비 예산으로 그 효과를 보고 있다. 다른 언론사가 횡성군 광고예산을 11번 받을 동안 희망신문은 단 한 차례도 집행하지 않았다. 

구독이나 홍보비를 통해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행정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풀뿌리 지역언론의 활약상 

횡성희망신문의 바른 말과 쓴소리는 계도지 비판 이외에도 이어졌다. 취재 이후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횡성군의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강원도 내 한 언론사가 횡성군에 아스팔트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공장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언론사가 어떻게 아스팔트를 팔 수 있었을까?

이용희 기자는 "횡성군에 문제제기를 하니 담당 공무원이 사색이 되어서 다시는 그런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취재 결과 아스팔트 제조업체도 돈은 신문사가 다 가져간다며 억울해했다"고 전했다. 

이런 취재는 횡성군의 수의계약을 견제하고 예방효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작은 풀뿌리 언론 하나가 시민단체의 역할까지도 겸비하며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횡성군의 '내 고향 신문보내기' 사업은 행정의 집요한 신문구독 행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사업은 출향인사에게 신문을 보내는 사업이다. 하지만 중지된 줄 알았던 이 사업은 예산을 다른 부서에 숨겨둔 채 진행되고 있었다. 기획감사실 예산이 삭감되자 횡성군은 자치행정과 예산을 동원해 이 사업을 이어간 것이다. 횡성희망신문의 보도가 나간 이후 출향민 신문보내기 사업은 중단되었다. 

이 사업의 문제점은 예산안 숨기기 이외에도 출향민 대상을 두고도 논란이 됐다. 전임 군수와 국회의원, 군의원 등으로 구성된 지역원로모임에도 신문을 지원했다. 횡성군 내에 있는 친목모임에도 정보를 제공한다며 신문을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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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현재 

2020년 횡성군의 계도지 예산은 3억 4884만원이다. 이 예산으로 중앙지와 지역지 등을 구독해서 이반장, 경로당, 새마을지도자 등에게 보내고 있다. 2018년 지역지 계도지 예산은 없앴지만 여전히 중앙지와 지역지 등을 구독하는 예산은 남아있는 것이다. 

"횡성은 인구 4만 6천여명 규모에 한 해 예산은 5천억 규모다. 재정자주도가 80%가 넘는데 이는 군수의 힘이 막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용희 기자가 전하는 횡성 상황이다. 제왕적 군수,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는 횡성군, 그 사이에서 시민들은 정치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정치인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어용신문을 요구하기 쉽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정이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 계도지 예산을 받고 좋은 얘기만 해주고 비판은 곤란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지역 언론을 지원하고 공정한 경쟁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용희 기자는 "자치단체 조례로 지역 신문을 우리 지역 공공재로 인식하고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따라 구체적으로 지역신문의 기준과 지원 등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계도지는 국민을 계몽하고 지원한다는 건데 국민을 계도와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섬겨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횡성희망신문, #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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