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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리산에 들어온 지 7일째.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올라가려고 아침 공양을 마치자 마자 서둘렀다. 구례를 출발하여 천은사에 들러 성삼재로 가는 버스시간이 너무 늦어(7시 50분인가?), 천은사 주차장 입구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길가에 서서 9킬로미터쯤 떨어진 성삼재까지 태워 달라고 손을 흔들어 댔지만, 몇 대는 그냥 지나가고 기아 카니발(?)이 한 대 섰다. 요즘 같은 코로나 정국에도 낯선 사람을 태워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 내 나이(58년 개띠) 또래의 부산 아저씨 4명이 정처 없이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멋진 인생들이다. 은퇴 후에는 저렇게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분들 덕분에 성삼재 주차장에 쉽게 도착했으나 안개가 엄청 심하게 끼어 2~3미터 앞도 볼 수 없었다. 등산로 입구는 물론이고 주위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주차료 징수원에게 다가가서 노고단 입구를 물어보고 오니, 나를 태워준 차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고맙다고 인사도 못했는데, 그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 비 예보까지 있어서, 노고단에 올라갈지 말지 망설였다. 걸어서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국토종단을 해본 내 경험으로 보면, 여름철 도보여행 때는 폭우가 아닌 이상, 비는 도보여행 동반자가 되는 좋은 친구다. 땡볕에 걷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폭염보다는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비가 백배는 더 낫다. 그래서 노고단 산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중간쯤 올라가자 안개가 걷히고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도중에 계단을 타고 지름길로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등산객들은 저렇게 계단을 타고 질러 가기 때문에, 등산 시간이 도보여행 시간보다 훨씬 짧아진다. 섬진강과 구례 읍내가 멋지게 내려다보이는 무냉기 전망대를 거쳐, 노고단대피소에서 잠깐 쉬었다. 거기까지 대강 한 시간쯤 걸린 거 같다.
 
섬진강 지리산 노고단 무냉기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 섬진강 지리산 노고단 무냉기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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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거리를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갔기 때문에 대피소에서 먹을 것을 사려고 했더니, 햇반 외에는 파는 게 없다. 이제 대피소에서는 환경보호 때문에 먹을거리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 참 잘한 정책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산에서 등산객들이 사용하고 버리는 엄청난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인력과 예산도 엄청나게 들고. 이건 비단 지리산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유명한 산에 다 해당되는 문제인 것이다.

자동판매기에서 500원짜리 핫초코 두 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노고단 고개로 향했다. 대피소 직원이 노고단 정상에 올라가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예약기를 이용하여 예약접수증을 받았다. 내가 앱으로 할 줄 모른다고 했더니, 그 직원이 예약기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해준 것이다. 이제 우리처럼 60대 이상의 사람들은 앱을 사용할 줄 모르면, 아무것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30분쯤 지나 고개에 다다랐다. 오른쪽으로는 안개 속에 노고단 정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처음 가는 사람들은 노고단 고개(해발 1440미터)와 정상이 혼동된다. 노고단 정상(해발 1507미터)은 지리산 종주길에서 서쪽으로 700미터쯤 떨어져 있다. 그러니까 정상에 가고 싶은 사람은 종주길을 벗어나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길을 700미터쯤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천왕봉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고개에서 앞에 보이는 반야봉을 보고 동쪽으로 계속 길을 가면 된다. 아까 대피소에서 받아온 예약증 QR코드를 출입구 기계에 체킹하고, 정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정상에 올라가자 비바람이 몰아쳐 주위 경치도 전혀 안보이고,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다행히 오가는 길에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어서 정상까지 올라갔다온 보람이 있었다.
 
노고단대피소 지리산 노고단대피소
▲ 노고단대피소 지리산 노고단대피소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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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쯤 성삼재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너무 배가 고팠다. 내가 노고단을 너무 우습게 본 거 같다. 탐방센터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스콘 하나와 카라멜라떼 한잔으로 점심을 때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성삼재 휴게소는 재건축을 하느라 공사 중이어서 식사다운 식사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바람 속에 정령치에 부근에 있는 개령암터 마애불까지 답사를 하려고 그쪽으로 가는 차를 찾았으나 허사였다. 주차장에서 나오는 10대 넘는 차들에게 물어보았으나, 그쪽으로 가는 차는 하나도 없었다. 천은사 쪽으로 내려가는 버스도 3시 반경에나 있다고 했다. 마침 구례로 가는 택시를 4만 원에 부른 사람들이 있어서 합승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만 원을 주고 천은사 입구까지 다시 내려왔다.

등산 애호가들이 아닌 사람들은 노고단에 등산길 말고 도보여행길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러나 아주 훌륭한 도보여행길이 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정상까지 등산코스는 2.7킬로미터다. 노고단 고개까지가 2킬로미터, 거기서 정상까지가 700미터이다. 이 코스는 등산객들이 다니는, 주로 나무 계단으로 된, 급경사 단축 코스이기 때문에 도보여행자들이 걷기에는 힘들다.

도보여행자를 위한 코스는 따로 있다. 이 코스는 굽이굽이 완만하게 돌아서 올라간다. 휠체어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좋다. 성삼재 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센터 입구에서 노약자에게는 휠체어를 빌려준다. 이 코스로는 성삼재에서 노고단 정상까지 5.4킬로미터다. 노고단 고개까지 4.7킬로미터, 거기서 정상까지 700미터. 등산코스보다는 두 배쯤 더 길다. 왕복으로 걸리는 시간은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면서, 길가의 예쁜 들꽃을 찍으면서 걸어도, 다섯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초보 도보여행자들에게 딱 좋은 길이다.

일부 지리산 둘레길에 비하면(예를 들면, 화개 가탄마을 – 피아골 기촌마을), 힘도 들지 않고 정말 기분이 좋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노약자를 위한 등산로가 있는 줄 몰랐다. 성삼재 주차장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센터에서 휠체어를 빌려주는 것을 보고 노약자들도 노고단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약자를 위한 등산로는 곧 도보여행자들에게 안성맞춤인 길인 것이다.

노고단 정상까지 올라간다고 하니까 도보여행자들에게 너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삼재(해발 1090미터)와 노고단 정상(해발 1507미터)의 표고차가 400여 미터 밖에 안 나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다. 더구나 앞에서 얘기했듯이 굽이굽이 돌아가기 때문에 처음과 마지막 구간을 제외하고는 평지를 걷는 느낌이 든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의 로망 중 하나가 금강산과 지리산(방장산)을 유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유람록(여행기)을 남겼는데, 지리산 서쪽에 있는 노고단까지 올라온 선비는 별로 없다. 지리산에 오면, 당연히 동쪽의 천왕봉을 오르는 것이 유람의 목표였기 때문에 노고단까지는 발길이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노고단에 가장 가까이 온 사람이 남효온(1487년 9월 27일-10월 13일 음력)으로,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왔다가 화엄사로 내려간 경우이다.

노고단으로 올라가면서 멀리 내려다보는 섬진강 언저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 코스는 내가 꼽은 우리나라 최고의 도보여행 코스 중 하나다. 그 어떤 길도 이보다 멋진 도보여행 코스는 보지 못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모습이 다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여, 앞으로 기대가 크다. 최소한 계절마다 한번씩은 올라와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비교해 볼 것이다.

그럼 이 길이 왜 도보여행자들에게 멋진 길인가? 첫째, 이름이 희한하고 재미있는 야생화가 지천에 널려 있다. 야생화 천국인 점봉산 곰배령 만큼은 아니어도, 봄철에는 히어리, 개불알, 쥐오줌풀, 금난초, 처녀치마, 금강애기나리, 봄구슬봉이, 복주머니란, 돌단풍 등이, 여름철에는 노루오줌, 지리터리풀, 산오이풀, 흰제비난초, 미나리아제비, 원추리, 둥근이질풀 등이, 가을철에는 누른종덩쿨, 곰취꽃, 꽃향유 등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핸드폰 꽃 이름 찾기 앱으로 꽃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리터리풀 지리산 노고단에 피어있는 야생화
▲ 지리터리풀 지리산 노고단에 피어있는 야생화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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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처음부터 정상까지 아름다운 새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내가 숙소(템플스테이)로 정했던 천은사에도 새들이 많았었는데, 노고단 코스에도 새들이 참 많아서 걷는 내내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준다. 아마도 등산객들이 먹을 걸 자주 던져주어서 등산로 주변에 산새들이 많은 거 같다. 산새와 인간이 공존하는 지리산 생태계는 얼마나 건강한가.

셋째, 산허리를 걸어가면서 내려다보는 구례 읍내 쪽 전경이 일품이다. 특히 산자락 사이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구름 속에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은 가히 최고의 풍경이다. 도보여행은 등산과 달리 시간이나 속도를 다투는 레저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주변 자연과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넷째, 걷는 사람의 안전이다. 이 코스는 지리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그 어떤 차량도 진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걷는 동안 모든 차량으로부터 안전하다. 가끔 공단 순찰차가 천천히 지나다닐 뿐이다. 그 다음, 길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걷다가 발이 삐거나 부상당할 가능성도 적다. 계단도 전혀 없어서 무릎이 약한 사람도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 노고단 고개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700미터 구간도 계단과 경사로가 따로 구분되어 있어서, 경사로로 올라가면 된다. 경사로가 부담되면, 고개까지만 올라가도 된다.

노고단 고개에서 등산을 더 하고 싶은 사람은 지리산 종주 등선을 타고 계속 천왕봉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러나 노고단 고개 다음 구간부터는 경사도가 심해서 도보여행길로는 적당하지 않다. 이 글은 도보여행자를 위한 정보 제공이 목적이기 때문에 등산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주의사항: 요즘에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지리산 대피소들이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내려오도록 코스를 짜야 한다. 노고단 고개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미리 인터넷 예약을 해야 올라갈 수 있다. 현장(노고단대피소와 정상 출입구)에서도 가능하지만 인터넷 정원에 여분이 있을 경우에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인터넷으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 정상 700미터 전방에 체크포인트(출입구)가 있다. 노고단대피소에서는 햇반 외에 컵라면 등 먹을거리를 일체 팔지 않는다. 따라서 물 등 먹을거리는 본인이 준비해 와야 한다. 구례에서 성삼재까지 오가는 버스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미리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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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실크로드 여행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제가 다녀왔던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기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성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도보여행기도 함께 연재합니다. 현재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관광레저학박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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