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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리산에 들어온 지 8일째. 이번 도보여행은 실상사 주변에 널려있는 승탑(부도)를 찾아가는 길이다. 전체 거리 다 합해도 2킬로미터가 될까 말까 하니까, 도보여행이라고 하기도 좀 머쓱한 산책 코스다. 그러나 내용은 알토란같은 우리 문화유산 답사 코스다.

연곡사 부도 코스를 연상하면 된다. 연곡사 부도 코스는 약 800미터 거리 안에 동부도 북부도 서부도와 탑비들 그리고 삼층석탑이 다 들어있지만, 여기 부도 코스는 절 안과 밖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점이 좀 다르다. 걷는 거리로 치면, 여기가 연곡사보다 두세 배는 된다. 그러니까 실상사 템플스테이에 숙소를 정하고, 시간 날 때 천천히 둘러보면 된다.            

실상사에는 승탑 외에도 쌍둥이 삼층석탑(보물 제37호), 철조여래좌상(보물 제41호), 석등(보물 제35호) 등 볼 만한 문화유산이 많이 있다. 특히 왼쪽 삼층석탑은 상륜부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탑인데,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구할 때도 바로 이 탑의 상륜부를 참고해서 만들었다.

석등 앞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실제 불을 붙이기 위해서 올라갔던 돌계단이 남아 있다. 아침저녁 예불 때마다 울리는 동종 소리도 정말 아름답다. 나는 어느 절집에서도 이렇게 울림이 깊고 여운이 길게 퍼져나가는 종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실상사 삼층석탑과 석등
 실상사 삼층석탑과 석등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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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감상한 다음에는 절 안에 자리 잡은 승탑부터 찾아간다. 승탑을 찾으려면 우선 도법스님 선방이 있는 극락전을 찾아야 한다. 종무소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극락전이 나오고, 극락전 오른쪽 작은 선방이 도법스님이 거처하는 선방이다. 내가 스님으로부터 차 한 잔을 얻어 마신 곳이다. 극락전 마당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스님은 풀을 매지 않고 일부러 둔다고 한다.

우리가 꽃밭을 가꾼다는 것은 꽃에 우선순위를 매겨서, 우리 인간의 마음에 드는 꽃만 선택하여 꽃밭에 기르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한단다. 이 땅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모든 꽃은 그 아름다움에 우열이 있을 수 없고, 모두 나름대로 자기 위치에서 어떤 가치가 있기 때문에 도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선방 앞마당에 자라는 개망초를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마당 한가득 핀 하얀 개망초와 색 바랜 극락전의 고고한 모습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연곡사에서도 집단으로 피어있는 개망초꽃이 절집 지붕기와와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주위에 너무 흔하디흔해서 홀대 받는 개망초꽃도 자기 주위를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사 승탑

바로 그 극락전 앞에 홍척국사(시호는 증각대사)탑비(보물 제39호)가 서 있고, 왼쪽으로 돌아 뒤로 좀 가면 극락전 왼쪽에 홍척국사탑(보물 제38호)이 숨어있다. 탑비에서 잘 안보여 처음 가는 사람들은 이 승탑을 찾으려고 좀 헤맨다.

이 승탑은 연곡사 북부도와 비슷하다. 홍척국사는 통일신라 헌덕왕(재위: 809∼826년) 때 당나라에 유학 갔다가, 826년(흥덕왕 1년)에 귀국했다. 그는 구산선문 중 최초의 산문인 실상사를 창건했다. 그의 입적연대는 9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며, 이 승탑 또한 그때쯤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탑명은 응료탑(凝蓼塔)이다.     
             
홍척국사탑비는 홍척국사탑의 내력을 설명하는 비석이다. 현재 몸돌(탑신)은 없어지고, 머릿돌(이수)과 받침돌만 남아있다. 받침돌의 거북이 머리는 대개 용의 머리를 하고 있는데, 이 비는 거북이 머리 그대로 조각되어 아주 희귀한 작품이다. 머릿돌에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극락전 바로 오른쪽에는 수철화상탑(보물 제33호)이 서있고, 그 10여 미터 오른쪽에는 수철화상탑비(보물 제34호)가 서있다. 수철화상은 홍척국사의 제자이고, 실상산문의 2대 조사이다. 화상이 893년에 77세로 입적함에 따라 진성여왕은 수철화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탑(楞伽寶月塔)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 승탑은 목조 건축의 세부 양식을 충실하게 따랐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철화상탑비에는 화상의 출생에서 입적 및 탑을 만들게 된 경위까지 기록되어 있다. 비문을 짓고 쓴 사람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푸른색(지금은 검은 색으로 보인다) 화강암 비석은 손상된 부분이 많아 완전하게 해석하기는 힘들다. 비석의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듯한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는 능가보월탑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네 가지 승탑과 승탑비는 모두 극락전 주변에 몰려 있어서 찾기도 쉽고, 많이 이동하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어서 수월하게 답사할 수 있다.  

우리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도보여행

이번에는 절 밖으로 나가보자. 실상사의 출입문 격인 천왕문 20여 미터 앞에는 약수암과 조계암터(편운화상탑)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약수암 쪽으로 200여 미터쯤 가다보면, 왼쪽으로는 편운화상탑, 오른쪽으로는 용담대화상탑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먼저 왼쪽으로 20여 미터쯤 들어가면, 폐사지인 조계암터에 편운화상탑(전북 유형문화재 제247호)이 서 있다. 벙거지를 쓰고 있는 듯한 파격적인 모습의 이 승탑은 신라말 지방 호족의 지원을 받은 선종 사찰 유물의 분위기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편운화상은 실상사 창건조인 홍척국사의 제자로 수철화상과 동문 법형제라 할 수 있으며, 성주 안봉사를 창건한 인물이다. 이 승탑은 지대석과 하대석, 중석, 탑신 및 옥개석 등이 모두 원형으로 넓고 둥근 원형의 지대석 위에 1단의 각을 이룬 받침대를 두고, 그 위에 운문의 하대석과 3단 층단의 괴임대 및 원형의 중석이 한 돌로 이어지고 있다.

탑신 또한 특이하게도 원형이면서 위는 크고 아래쪽은 작은 상후하박형이다. 탑신 중앙에는 희미한 두 줄의 띠줄이 음각되었으며, 탑신의 측면에는 '正開十年庚午(정개십년경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정개는 후백제 견훤의 연호로 이것으로 보아 910년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성시기가 명확하고 당시 10세기 초반 부도 발달사를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승탑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연호인 '정개(正開)'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실상사가 후백제 견훤을 지지하고 있었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 정개 1년이 901년이니까, 정개 10년은 910년이 된다.

조계암터에서 약수암 가는 길로 다시 나와, 바로 오른쪽에 있는 논두렁길로 들어가면, 100여미터 앞에 용담대화상탑이 있다. 이 승탑은 1762년 6월 실상사에서 62세로 입적한 용담화상의 사리탑이다. 내가 갈 때는 논두렁길에 물이 넘치고 있어서, 발이 빠져 들어갈 수 없었다.

이번에는 실상사에 들어올 때 건넜던 해탈교로 가서 석장승 3기를 구경한다. 실상사 쪽에 두 기가 서있고, 다리 건너편에 하나가 서있다. 이 석장승은 돌벅수라고도 하며, 민중 신앙의 하나로 남원 지방에 널리 퍼져 있다. 절집 앞에 석장승이 서있는 것은 민중 신앙과 불교가 융합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석장승 부근에는 목장승과 솟대도 서너 개가 함께 서있다.

해탈교에서 람천 강둑을 따라 걷다가, 실상사 공양간인 양혜당 쪽으로 좌회전하여 입석마을 쪽으로 가면, 회명당대선사승탑과 실상사승탑을 만날 수 있다. 회명당대선사승탑은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석종형 승탑이다. 윗면에는 인도에서 사용되는 문자인 '범(梵)'자가 새겨져 있고, 탑의 가운데 '회명당대선사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거기에서 200여 미터쯤 더 가면, 실상사승탑이 있다. 이 승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누구의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실상사승탑으로 부른다. 고려 전기의 특징으로 무늬가 많이 사라지고, 연꽃 조각이 간단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8각형 승탑의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으면서, 간략하고 소박한 조각이 특징적이다.
 
▲ 실상사 개구리 울음소리
ⓒ 고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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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바퀴 돌고나면 거의 2킬로미터는 걷는 셈이다. 실상사 주변의 승탑을 답사하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도보여행이 되는 것이다. 더 걷고 싶은 사람은 람천 강둑길을 따라 람천교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다. 편도 1.5킬로미터, 왕복 3킬로로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강둑에서는 남쪽으로 멀리 천왕봉 등 지리산 영봉들이 보인다. 실상사에서 탬플스테이를 하면서 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산책길이 된다. 밤이 되면 템플스테이 주변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합창소리는 덤으로 얻는 한여름 밤의 추억거리가 된다. 
             
요즘 실상사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사찰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모범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실상사는 수행과 삶이 하나 되는 사대부중 공동체를 가꾸기 위한 시도로 생명공동체운동을 펼치고 있다. 땅을 살리고 농업 농촌을 살리는 유기농업, 생명평화의 철학과 삶을 익히고 주체적으로 실현할 힘을 기르는 대안교육, 마을주민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공동체를 가꾸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도법스님 중심으로 실상사가 실천하는 생명공동체운동은 요즘 절집 규모의 확장에만 집착하고 있는 불교계에 던지는 하나의 죽비소리가 될 수 있다. 실상사 순례길을 산책하면서 내가 이 운동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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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실크로드 여행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제가 다녀왔던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기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성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도보여행기도 함께 연재합니다. 현재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관광레저학박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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