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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보호담당관(보호관)이 업무라는 이유로 '어디서 뭐 하냐', '혼자 있느냐'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어요. 보호관이 물으니 꼬박꼬박 답을 했는데, 어떤 날은 밤늦게 집까지 찾아왔더라고요. 차나 한잔하자며 하는 말이 '자고 가겠다'는 거였어요. 안된다고 하니까 혼자 있으면 위험하지 않느냐면서 '애인하라'고 하더라고요."

2017년 탈북한 A씨는 남한에 와서 처음 만난 보호관이 '두려운 존재'였다고 털어놨다. A씨를 향해 '몸매가 좋다'라고 한 보호관의 성희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그는 A씨에게 '가슴이 크다', '딱 내 스타일'이라고 하며 "연애하자"라고 했다. 20대 중반의 A씨는 40대 중반 보호관의 말에 "자꾸 왜 그러시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 28일 법률대리인 전수미·양태정 변호사는 서울 서초경찰서 소속 보호관을 강간과 유사강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탈북여성은 2016년 5월부터 약 1년 7개월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이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경찰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이탈주민 보호관으로 일했다.

양태정 변호사는 보호관에 의해 성추행을 당한 이탈주민들의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알려진 후에 자신도 보호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이탈주민의 전화를 몇 통 받았다"라면서 "보호관이 밥 먹자고 차에 태워서는 교외로 갔는데 (보호관이) 모텔을 가자고 했다더라, 이탈주민이 가지 않는다고 했더니 (보호관이)차 안에서 성추행했다는 사례도 있었다"라고 부연했다.

이탈주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70% 이상 달하는 상황에서 보호관에 의한 성추행·성희롱에 노출된 이탈주민을 위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20년 3월 통일부가 잠정 추산한 통계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3만 3658명 중 여성은 2만 4256명(72.1%)다. 2019년 이탈주민 중 여성이 차지한 비율은 80.7%(1047명)에 달했다.

"만나자는 보호관, 거절하기 어려워"
 
이탈주민들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70%가 넘는다. 그러나 경찰 보호관들의 경우 80% 이상이 남성이다.
 이탈주민들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70%가 넘는다. 그러나 경찰 보호관들의 경우 80% 이상이 남성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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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에 탈북해 서울에 정착해 사는 B씨는 "보호관은 내 집 주소부터 전화까지 다 알고 있고 아무 때나 전화하고 만나자고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보호관이) 만나서 밥 먹자고 해서 만나면 자꾸 드라이브를 하러 가자고 해요. 그냥 집 앞에서 만나자고 해도 바람 쐬게 해주겠다고 멀리 나가자고 하더라고요. 몇 번 거절하니까 '네가 뭐하고 사는지 아는 게 내 일'이라면서 무섭게 말하고요. 차에 같이 탔을 때는 손을 잡으려 한 적도 있었어요."

B씨는 "남한에 처음 왔을 때는 성희롱이 뭔지 몰라서 넘어갔는데, 지금도 한 번씩 (보호관이) 생각나면 화가 난다"라면서 "우리 쪽 사람(이탈주민)과 보호관 이야기를 하면, 다들 (보호관이) 집적거려 싫었다고 한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탈주민 등에 따르면, 보호관에 성희롱을 경험한 이들은 상당하지만 피해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B씨의 말처럼 경찰인 보호관은 이탈주민에게 권력이 있는 사람이자 신상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호관은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도입된 직책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시행령'은 통일부 장관이 보호 대상자가 거주지로 전입한 경우 그의 신변 안전을 위해 국방부 장관이나 경찰청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경찰은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제15조'에 따라 '북한이탈주민관리 및 경호안전 대책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경찰은 '보호관 제도'를 통해 이탈주민을 5년간 보호한다. 일선 경찰서 보안과 소속 경찰관들을 배치해 이탈주민과 주기적으로 전화나 대면 만남을 통해 안부를 확인하도록 한다. 보호관 제도가 잘 작동한다면, 보호관은 이탈주민이 남한에 적응하며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지원군이다. 하지만 보호관으로 인해 이탈주민이 인권침해를 당한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성희롱·성추행도 여기에 속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에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제도 개선방안 실태조사' 보고서의 설문조사 결과(응답자 남성 51명·여성 169명)를 보면, 응답자의 42%가 '신변보호제도로 인한 인권침해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대표적인 피해는 '사생활 침해' (37.7%)로 구체적으로 '정서적 침해'(7.3%), '신체적 침해'(3.6%), '성적 침해'(3.6%)를 겪은 경우도 있다. 사생활 침해의 구체적인 항목을 두고 이탈주민들은 '보호 기간(5년) 종료 이후에도 계속 연락해왔다'(17.3%), '너무 잦은 연락(전화·문자 등)으로 불편했다'(15.9%), '보호관이 교체된 이후에도 이전 담당관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계속했다'(9.5%)라고 답했다.

보호관에 의한 성추행·성희롱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단기적으로는 여성 보호관이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9일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관은 899명이다. 이 중 여성 비율은 160여 명(18%)에 그친다. A씨는 "이탈주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아무래도 여성보호관이 많아지면 지금처럼 성희롱·성추행 문제는 피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B씨는 이탈주민이 보호관의 성희롱·성추행을 즉각 인지할 수 있는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한국사회에 여러 성추행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탈주민들은 어떤 게 성추행인지 바로 인지하기 쉽지 않다"면서 "이탈주민에게는 성희롱·성추행 구별법 같은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경찰의 이탈주민 보호 업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9일 경찰네트워크와 황운하(더불어민주당)·이은주(정의당) 주최로 열린 '경찰개혁방안 모색 연속토론회'에서 장유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정보기관개혁소위원회 위원장은 "경찰의 '북한이탈주민관리'는 (이탈주민의) 사찰과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라면서 "통일부장관이 이탈주민에 대한 신변보호 업무를 (경찰에) 요청하더라도 (경찰의) 보안부서가 아닌 생활안전국 혹은 경비국 등 타부서에서 맡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태그:#북한 이탈주민, #탈북, #경찰,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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