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성 착취물 제작·유포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된 '부따' 강훈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성 착취물 제작·유포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된 "부따" 강훈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기사를 제작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기자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면 그것 역시 기사에 그대로 드러난다. 언론사가 책임감을 가지고 내부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증진시켜야 하는 이유다. 기사에 대한 책임을 가지는 것은 해당 언론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떠할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년 언론인 조사를 보면 남성 기자는 72.8%인 반면 여성 기자는 27.8%에 그친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남성 비율은 더 커진다. 이런 성비 불균형은 언론사 내부를 남성 중심 사회로 고착시키고 성평등 논의를 저지한다. 

조선일보, N번방 피해자에 무심한 모습 보여

일부 언론사들은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젠더 이슈를 담당하는 '젠더 전담 기구'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한겨레의 젠더데스크, 서울신문의 젠더연구소, KBS의 성평등센터 MBC와 SBS의 성평등위원회가 그 예다.

이 의식의 차이는 이번 'N번방 집단 성착취' 사건 보도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앞서 가해자 기사 분석 때 지적했듯 대부분의 언론사가 최소 1~2번씩 가해자를 악마로 칭했다. 그러나 특정 언론사는 문제의식이 형성된 이후로도 같은 프레임을 반복했다. 

대표적 사례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첫 보도부터 자극적이었으며 사건 후반으로 갈수록 기사의 양이 적어지는 등 이번 사건을 주요 뉴스 가치로도 여기지 않았다. 특히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춘 기사를 찾기 어려웠다. 가해자 중심 기사가 대부분이었고 피해자 지원 및 2차 가해에는 무심한 모습이었다.

반면 젠더 전담 조직이 있는 언론사는 피해자 중심 기사가 많았다. 한겨레는 제일 먼저 젠더데스크를 설치한 언론사답게 일간지 중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피해자의 입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를 통해 논평을 실었고, 가해자 대신 피해자와 연대하는 시민단체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성평등센터가 있는 KBS는 이번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의 선택을 받았다. '성범죄 보도 준칙'을 지키고 있는 KBS에 취재를 협조한 것이다.

언론사의 비교 분석을 통해 알았듯,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기사는 기자 개인의 문제보다 조직 차원의 문제가 크다. 남성 중심적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보도 흐름이 뒤바뀌긴 힘들다. 한겨레가 이번 보도에서 가장 모범적일 수 있던 이유는 젠더데스크의 권한이 콘텐츠를 수정할 수 있는 데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타 언론사에 비해 남성 중심 구조를 잘 극복한 이유를 한겨레 2대 젠더데스크 이정연 기자와 젠더 이슈 담당 박다해 기자에게서 들어봤다.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언론 조직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짚어볼 수 있었다.

한겨레, 젠더데스크 거쳐서 기사 내보내 

- 젠더 담당 기자와 젠더데스크의 역할은 무엇인가?
박다해 젠더 담당 기자 : 여성가족부를 출입하며 젠더 관련 정책이나 이슈 등을 팔로업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성폭력 사건 자체를 보도하기보다 그와 관련된 정책, 법안을 함께 취재하는 것이다. 경찰을 출입하는 사건팀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여성의 노동, 건강, 성평등 교육 등도 살핀다.

이정연 젠더데스크 기자 : 한겨레 신문의 콘텐츠 기사 내용과 제목, 시각물 활용에 있어서 문제 되는 표현이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니터링한다. 되도록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표현이나 내용을 바꿀 것을 건의하고 있다.

- 젠더데스크가 출범하기까지 내부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나?
이 기자 : 먼저 있던 젠더 이슈 담당 기자와 한겨레 기자 몇 명이 모여 젠더 부분과 관련한 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회가 열린 적이 있다. 2018년 가을쯤이었다. 그때 나왔던 안건 중 하나가 젠더 에디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젠더 데스크와 달리 젠더 이슈에 콘텐츠 생산까지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한국 언론에는 없고 뉴욕타임스에 존재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2019년은 젠더 에디터가 생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신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개선안을 내놓는 젠더데스크가 생긴 것이다.

- 아직은 소수 언론사만이 젠더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타 언론사도 설치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긴 힘든가?
이 기자 : 우선 한겨레와 타 언론사 젠더 조직과의 차이를 말하자면, 편집국 안에 젠더데스크가 존재한단 것이다. 즉, 편집물을 수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언론사는 이런 구조 자체가 어렵다. 의사결정을 하는 고위 담당자들이 기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계속 어려운 구조가 지속될 것이다.

- 활동하며 힘든 점이 있나?
박 기자 : 사실 젠더 이슈 중에 새로운 건 많지 않다. 성불평등의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오래되지 않았나. 하지만 기자는 '새로운' 뉴스를 써야 하는 직업이다. 때문에 이 오래된 이야기를 어떤 새로운 방법과 내용으로 포장해서 전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이 기자 : 기자마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성인지 감수성에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문제라고 여기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인다. 데스크의 일은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상향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보니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 젠더 이슈를 담당으로 맡아 보도하면서 한국 사회와 언론에 느낀 점이 있나? 성범죄 보도로 건강한 성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는가?
박 기자 : 우선 한국 언론은 갈 길이 멀었다. 한겨레가 예외적인 편이다. 일반적인 언론 조직은 대단히 위계적이고 수직적이며 남성중심적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다행히 젊은 기자들 중에는 성평등 의식이 높은 기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위에서부터 바뀌지 않으면 힘들다. 때문에 독자와 시청자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알려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내부 의견은 안 받아들여도 독자와 시청자 눈치는 본다. 언론이 나아질 때 한국사회의 성평등 정도도 같이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 이번 'N번방 집단 성착취'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은 어땠나?
이 기자 : 좋은 보도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지털 바이럴(클릭유도) 개선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흐름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가 많이 있었다.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많았지만 당장 기자들이 선택하는 바를 내보내기 위한 무리한 시도들도 있었다. MBC 기자가 N번방에 잠입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나. 이런 것처럼 사람들의 흥미를 유도하고 관음을 충족하는 기사들이 눈에 많이 띄어 아쉽다. 언론사 전반적으로 이런 문제의식이 공유되면 좋겠다.

- 이전 성폭력‧성범죄 보도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기자 : 언론은 미투 운동,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주요 젠더 이슈로 다뤘다. 이때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을 사용하고 피해자 기사에서 범죄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런 모습을 보며 시민들에게서 언론을 불신하는 여론이 생긴 것 같다. 한겨레는 이번 사건에서 그런 보도들을 지양하고 젠더데스크를 거쳐 보도하자고 내부적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때문에 과정에 있어서 논의가 많았고 표현이나 자료 선정에 많이 고민하며 기사를 작성했다. 그동안의 성범죄 사건들과는 다르게 보도하려고 노력했다.

박 기자 : 이번 사건을 담당하지 않았지만 기사 보도 과정에서 함께 토론하고 제언하는 역할을 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범행을 어디까지 묘사할 것이냐'였다. 범죄의 잔혹성을 알리기 위해선 상세히 묘사하는 것이 필요한데 너무 상세하게 묘사하면 선정적인 보도가 됐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 언론은 앞으로 성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나?
이 기자 : 가장 주체적이고 쉬운 방법은 기자협회나 여성가족부 등에서 제시한 성범죄 가이드라인을 단순 참고용이 아니라 기사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가해자를 이해하기보다 피해자 입장에서 서술하려고 해야 한다. 무엇보다 데스크들이 이 부분들을 실감해야 한다.

기사 방향의 차이는 인식의 차이를 만든다. 인식의 차이는 여론의 차이를 만들고 여론의 차이는 사회 구조의 차이를 만든다. 언론의 건강한 보도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이유다. 디지털 성착취를 뿌리 뽑기 전까지 제2의 'N번방'은 언제든지 일어날 것이다. 언론은 치열한 고민을 통해 그때까지 더 나은 혜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국 언론은 말 그대로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 수술을 통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회복할 것인가, 곪을 대로 곪은 병에 썩어 문드러질 것인가. 오로지 언론의 의지에 달려있다.

태그:#N번방, #언론, #성인지감수성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