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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중국으로 건너간 후 중국을 두루 돌아다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우리 선조들의 흔적을 만날 때다. 랴오닝 신빈에 세워진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장군(1898~1934)의 동상, 광저우 혁명열사능원에 있는 중조혈의기념정, 님 웨일즈가 정리한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처형된 샨베이고원, 단재 선생이 신혼 생활을 했던 베이징 진스팡지에 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장 마음을 흔드는 곳은 랴오닝과 지린성 가운데, 북한과 멀지 않은 곳들이다. 그곳은 경술국치 후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신흥무관학교가 있던 류허현(柳河縣) 싼위안바오(三源堡), 류인석 의병장이 돌아가신 관뎬현 등도 그렇다.

격변의 시기, 한계를 넘어 활동하다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소재로 한 <의병장 희순> 표지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소재로 한 <의병장 희순>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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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춘천에 와서 내가 잘 알지 못하고 지냈던 분을 발견했다. 바로 류인석 의병장의 조카 며느리인 윤희순 의병장이다.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자 노래와 총으로 싸운 분이다. 지난 2019년 8월에 방영된 KBS 프로그램 '우리 조선 아낙네들 나라읍시 어이살며'를 통해서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최근 윤희순 의병장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알기 쉽게 정리한 만화 <의병장 희순>이 출간됐다.

이 책은 방송일을 하다가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는 권숯돌 작가가 글을 쓰고, 역사 만화가로 활동하는 정용연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윤희순 의병장과 류인석 의병장의 활동, 독립운동가 집안의 삶을 잘 담아냈다.

윤희순 여사는 1860년 서울 회현방에서 태어났다. 안타깝게 생모와 새어머니까지 여의면서 힘들게 살다가 16세 때 화서학파 유학자인 외당 류홍석의 장남이며 의암 유인석의 조카인 류제원과 결혼한다. 시댁은 고흥 류씨의 집성촌인 춘천 남면 가정리 항골이다.

당시는 격변의 시대였다.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에 이어지고, 기고만장해진 일본은 1895년 을미사변까지 일으킨다.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에 한계가 있었지만 윤희순 여사는 <안사람 의병가> 등을 지어 항일 의지를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의병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벌인다.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에 세워진 윤희순 동상 춘천시 온의동에 있는 이 동상은 윤의병장의 의지를 잘 표현했다
▲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에 세워진 윤희순 동상 춘천시 온의동에 있는 이 동상은 윤의병장의 의지를 잘 표현했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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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세이던 1907년에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해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와 화약을 제조하는 일을 같이한다. 의병장으로 불린 것도 이 활동을 통해서다.

하지만 류인석이 이끄는 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에 실패하자, 의병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한다. 이곳에서도 윤희순 의병장은 본분을 잊지 않았다. 남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동창학교의 분교인 노학당을 세우고 교장을 맡아 민족 교육에 앞장선다.

1914년과 1915년에 시아버지 류홍석, 재당숙 의암 류인석, 남편 류제원 등도 세상을 떠난다. 이후 푸순현 포가둔으로 이동해 살아간다. 1919년에는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조선독립단'에 참여하고 지원하면서 항일투쟁에 나선다. 76세이던 1935년에는 큰 아들 류돈상이 푸순감옥에서 고문 끝에 숨을 거둔다. 비통해 하던 윤희순 의병장은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쓴 <일생록>을 남기고 서거한다.

짊어져야만 했던 삶의 무게

그로부터 10년 후에 조국은 해방을 맞지만, 윤 의병장은 한참이 지난 2012년에야 고국 땅으로 돌아온다. 남편의 묘가 있는 춘천시 남면 가정리로 이장해 합장된 것이다.

이번에 만화로 재현된 윤희순 의병장의 이야기는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던 곡진한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다. 해방 후 귀국해 청계천 넝마주이로 살아야 했던 고흥 류씨들의 설움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경술국치 이전 춘천 남면과 일제 하 간도에서 윤희순 일가의 힘든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결국에는 고문으로 옥사하는 큰아들 류돈상의 인생을 관조하는 윤 의병장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줘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마지막 순간에도 남은 이들에게 죽음보다 어려운 삶을 떠안긴 채 혼자 떠나는 것이 죄스럽다고 말하면서도 쉬고 싶다고 했다던 그. 윤 의병장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를 차마 가늠하지 못하겠다.

윤희순 의병장은 남녀 간 역할이 분명하던 시기에 그 간극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실천한 사람이다. 그간에 이런 삶의 이야기가 잘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 시대에도 여전히 남녀의 역할을 구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의암류인석기념관에 전시된 윤희순 의병장 영정 온 집안이 싸우고, 망명해 항일 운동을 한 고흥류씨 집안의 자부심이 있다.
▲ 의암류인석기념관에 전시된 윤희순 의병장 영정 온 집안이 싸우고, 망명해 항일 운동을 한 고흥류씨 집안의 자부심이 있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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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잘 돌아보면 윤희순 의병장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적지 않다. 시댁인 춘천 남면 가정리에는 '의암류인석기념관'이 있는데, 잘 들여다보면 윤희순 의병장의 흔적들이 많다. 또 기념관에서 1킬로미터 거리인 남면 가정리 고흥 류씨 선산에는 남편인 류제원, 윤희순 의병장, 장남 류돈상의 묘가 조성되어 지나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또 춘천시 온의동에 있는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에는 윤희순 의병장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한 손에 책을 들고, 포효하는 윤 의병장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안타까운 것은 길에서 멀고 도서관의 후원에 있다는 점이다. 윤 의병장을 추도하는 이들은 이 동상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의암공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또 독립기념관에도 '안사람 의병가' 등을 수록한 '윤희순 의병가비'가 세워졌다.

중국에도 윤희순 의병장의 흔적은 있다. 랴오닝성 환인현 노학당 분교 터에는 노학당 유지비가 있는데, 이곳에 윤희순 의병장의 노고가 기록되어 있다. 윤 의병장의 생은 이번 만화뿐만 아니라 2009년 심옥주씨가 저술한 <윤희순 평전>을 통해서도 잘 재조명됐다.
 

의병장 희순 - 노래로, 총으로 싸운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정용연, 권숯돌 (지은이), 휴머니스트(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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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 저서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5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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