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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시민단체가 사용후핵연료(고준위폐기물) 처리 방안에 대한 여론 수렴(공론화)을 문제 삼으며, 재검토를 정부에 촉구했다.
 지난달 30일, 시민단체가 사용후핵연료(고준위폐기물) 처리 방안에 대한 여론 수렴(공론화)을 문제 삼으며, 재검토를 정부에 촉구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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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에 대한 공론조사가 엉터리로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조작 의혹에 이은 또다른 문제 제기다. 시민참여단으로 활동중인 한 지역 주민은 '대학생 알바(조사원)'가 자신을 대신해 설문지를 작성하고, 익명성도 보장받지 못한 채 조사에 응했다고 털어놨다. 

시민참여단은 경주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조밀건식저장시설) 추가 건설 여부와 관련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구성된 집단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아래 재검토위)는 경주 시민 26만 명 가운데 3000명을 시내 60개 지점에서 임의 표집해 공론조사 표본 그룹을 구성했다. 이후 선발과정을 통해 1차 165명이 시민참여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2차 숙의학습과 3차 종합토론 거쳐 최종 145명이 시민참여단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7월 24일 재검토위는 시민참여단 145명을 대상으로 맥스터 추가 건설 여부에 대한 공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81.4%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에 정당과 지역주민, 시민단체는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와 차이가 있다며, '공론조사 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론조사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관련 기사 : "사용후핵연료 공론조사 조작 의혹, 국회 진상조사위원회 꾸리자", "민주주의 유린, 핵폐기물 처리 방안 여론 수렴 다시해야")

여기에 더해 시민참여단에 이해 관계가 얽힌 한수원 자회사 직원이 포함됐다는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자료도 나와 공론조사의 신뢰에 대한 의문이 한층 더 높아졌다.

또, 재검토위가 시민참여단을 구성하면서 대립하는 주제에 대해 주민 찬반 비율을 반영하지 않은 것를 두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공론조사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평가해 시민참여단 구성부터 공론조사 결과까지 전반적인 과정이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공론조사 대학생 알바가 대리 입력" 
 
지난달 24일 경주 감포읍 복지관에서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조밀건식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놓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한 공론조사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맥스터 추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가로막혀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지난달 24일 경주 감포읍 복지관에서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조밀건식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놓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한 공론조사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맥스터 추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가로막혀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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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마이뉴스>는 전현직 시민참여단을 통해 공론조사와 시민참여단 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증언과 증거를 제보받았다. 먼저 익명을 요구한 경주 양북면 A씨는 공론조사에서 '대학생 알바(조사원)'가 자신을 대신해 공론조사 설문지를 대리 입력했다고 증언했다.

지난 7월 재검토위는 시민참여단의 숙의학습 과정을 진행했다. 숙의학습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배경지식과 맥스터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기 위해 마련된 과정이다. 당초 재검토위는 숙의학습 과정을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서' 온라인으로 변경했다.

이에 능률협회 직원과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으로 구성된 조사원이 노트북 등을 들고 시민참여단의 가가호호를 방문해 온라인으로 숙의 학습을 하고, 2차 공론조사도 실시했다. 

A씨는 "대학생 알바가 집에 와서 온라인으로 (숙의)학습하고, (2차) 공론조사도 했다. 그런데 대학생 알바가 (온라인 공론조사) 설문지를 읽어주고, 직접 답변지를 작성까지 했다"라며 "문항도 대충 읽고 답변지도 어떻게 작성하는지 알 수 없어 '이건 아니다' 싶어서 (노트북을) 뺏어내 내가 직접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맥스터 건설 여부의 찬반 여부를 묻는 문항은 (질문) 9번뿐이었는데, 보충 설명이 너무 편파적이어서 대학생 알바에게 '왜 지진 나면 (맥스터가) 위험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은 없냐'라고 따졌다. 그랬더니 대답을 못하고 있다가 그래도 필요한 거 아니냐고 하더라"라며 "맥스터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은 나도 동감하지만 조사를 엉터리로 하고,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전문가도 없어 공정한 여론 수렴과정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라고 지적했다.

설문지 대리 입력이 위법이란 평가도 있다. 김씨의 증언대로 대학생 아르바이생(조사원)이 조사자를 대신해 온라인 공론조사 설문지를 작성하고, 시민참여단 옆에서 조사를 거들고 지켜봤다면 통계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조사의 기본 원칙은 투표와 다르지 않다, 조사자의 익명성과 비밀 투표가 보장되어야 한다"라며 "(설문지를) 대리 입력 하고 설문에 답하는 걸 지켜봤다면, 통계법에 적시된 비밀 보호 규정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라고 했다. 통계법 제33조(비밀의 보호) 1항에 따르면, 통계의 작성과정에서 알려진 사항으로서 개인이나 법인 또는 단체 등의 비밀에 속하는 사항은 보호되어야 한다.

"시민참여단에 한수원 자회사 직원 포함, 공론조사 원칙도 안 지켜"

이뿐만이 아니다. 시민참여단에 한수원 자회사 직원이 포함됐다는 증언과 증거 자료도 나왔다. 경주 감포읍 노동리 김태열 이장은 "시민참여단에 한수원 자회사 직원이 포함돼 있다"라며, 사진을 제시했다.

김 이장은 지난 6월 자신이 "시민참여단 자격으로 1차 사전워크샵 때 참석해 찍은 사진"이라며 "사진 속 4명 중 2명이 한수원 자회사인 퍼스트키퍼스(주)와 시큐텍에서 근무하고, 1명은 한수원의 납품업체 대표"라고 설명했다. 
 
경주 감포읍 노동리 김태열 이장이 “시민참여단에 한수원 자회사 직원이 대거 포함돼 있다”라고 비판하며, 증거 자료를 제시한 사진이다. 김 이장은 4명 중 2명이 한수원 자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1명은 한수원의 납품업체 대표라고 설명했다.
 경주 감포읍 노동리 김태열 이장이 “시민참여단에 한수원 자회사 직원이 대거 포함돼 있다”라고 비판하며, 증거 자료를 제시한 사진이다. 김 이장은 4명 중 2명이 한수원 자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1명은 한수원의 납품업체 대표라고 설명했다.
ⓒ 김태열 이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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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장은 이런 증거자료가 시민참여단을 편파적으로 구성하고 공론화의 공정성을 훼손한 물증이라고 주장한다. 공론화 과정을 도맡아 진행하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아래 능률협회)이 시민참여단을 모집할 때, 전제조건으로 '한수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안 된다'라고 달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능률협회 관계자와 김 이장이 나눈 전화통화 기록을 살펴보면, 능률협회 직원은 한수원에서 일한 경험을 물어보며, 과거에도 일한 적이 있으면 시민참여단을 할 수 없고, 관련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고 안내한다.

김 이장은 "시민참여단을 선발할 때, 분명히 한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민참여단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1차 사전워크숍에 가보니 우리 동네 버스(감포읍)에만 38명 중 21명이 한수원에서 일하는 사람(자회사 직원)이었다"라며 "다른 버스도 가서 일일이 세어보니 (한수원에서 일하는 것으로) 내가 아는 얼굴만 (165명 중) 총 49명이었다"라고 말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시민참여단을 구성하기 위해 표본그룹을 설계할 때부터 지역 주민 찬반 비율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재검토와 경주시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가 펴낸 '월성원전 지역 의견수렴'을 살펴보면, 시민참여형 조사방식을 설명하면서 표본 모집단 3000명 중 참여의사가 있는 응답자 중 성별, 연령대, 지역 등을 기준으로 150명을 선정한다고 적혀 있다. 즉, 찬반 비율은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따르면, 공론조사에 대립하는 주제를 다룰 때는 찬반 비율을 반영해 시민참여단을 구성하는 게 기본 원칙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재검토위는 모집단에 표집된 3000명의 시민들을 상대로 맥스터 증설에 대한 찬반 의견을 '매우 반대'에서 '매우 지지'까지 7점 척도로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재검토위가 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 의견을 묻고도 시민참여단을 구성할 때는 정작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재검토위 "공정성 문제 확인된 것 없어, 자회사 직원들 최종 구성서 제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지난 1일~2일까지 양일간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방안에 대해 전국 의견을 수렴하는 2차 종합토론회를 진행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지난 1일~2일까지 양일간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방안에 대해 전국 의견을 수렴하는 2차 종합토론회를 진행했다.
ⓒ 사용후핵연료재검토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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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잇따른 의문 제기에 대해 재검토위는 "아직까지 공정성에 문제가 될 정도로 확인된 것은 없다"라는 입장이다.

재검토위 이윤석 대변인(서울시립대 교수)은 "시민참여단 75% 이상이 50세 이상이다. 공론조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노트북을 잘 다루지 못해 대학생 알바가 사전 교육을 받고 도움을 주었을 뿐"이라며 "본인이 직접 설문을 하고 싶다고 요청한 경우는 그렇게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한수원 자회사 직원이 시민참여단에 대거 참여했다고 하는데, 1~2명이 포함될 수 있으나 대부분은 최종 시민참여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제외됐다"라며 "(한수원 자회사 직원 참여가) 공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했다.

시민참여단 구성에 주민 찬반 비율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전의 월평공원 공론화와 제주 영리병원 공론화 때도 주민 찬반 비율을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여러가지 오해가 있는 부분이 있는데, 향후 논의를 거쳐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공개할 것이다. 그리고 검증이 필요한 부분도 검증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방안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는 능률협회 관계자는 "모든 문의 사항은 재검토위에 해달라"라고 답변했다.
 

태그:#사용후핵연료공론화, #시민참여단, #공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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