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쌀 가게 1호점인 허가제126호라는 글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간판
▲ 쌀 상회 간판  쌀 가게 1호점인 허가제126호라는 글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간판
ⓒ 박미혜

관련사진보기

지난 4월부터 시작한 창원시도시재생센터의 마산여성친화거리 기록을 위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는 프로젝트에 시민참여기획단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마산을 빛낸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 일이었는데, 내겐 마산 어시장 아지매의 모습과 삶의 시간도 여성 노동이 아닐까해서 인터뷰를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부산은 깡깡이 아지매, 자갈치 아지매 등 새벽 시장에서 고된 일을 감당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참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마산을 대표하는 어시장 아지매에 대한 기록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더더욱 이번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지난 7월 28일~29일 양일간 시장을 다니며 어시장에서 오래도록 점포를 지키며 장사를 하시는 분을 추천받았다. 그러던 중, 어시장에서 60년 넘도록 2대에 걸쳐 쌀가게를 하는 집을 소개받게 되었다. 수줍게 웃으시며 '별다를 것 없다'고 말하시는 쌀가게 주인 아주머니에게 취재를 하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듣게 됐다. 

비릿한 어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지 않고 쌀가게를 차린 부모님 덕분에 지금껏 살 수 있었다고 해맑에 웃는 사장님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 주셨다. 약 60여 년 전 어시장은 인근 섬들에서 배를 타고 나와 할 만큼 큰 시장이었다.
 
약 60년의 세월을 함께 한 무게 추 
쌀이나 곡식의 무게를 달던 저울
▲ 무게 추 약 60년의 세월을 함께 한 무게 추 쌀이나 곡식의 무게를 달던 저울
ⓒ 박미혜

관련사진보기

섬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터였다. 생선가게 말고 곡식을 파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부모님이 허가를 받고 시작한 쌀가게라고 하신다. 부모님이 쌀가게를 시작할 때는 통일벼가 나오기 시작한 때라서 쌀 가게를 내려면 정부에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신고제로 바뀌었단다. 그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간판을 아직도 달고 계신다.

허가 제126호가 그 세월의 증거라고 말씀해주셨다. 허가를 받지 않고 쌀을 파는 곳이 많아 단속에 걸리곤 할 만큼 한때는 쌀 소비가 호황이었다. 그 시절을 알뜰히 보내신 부모님 덕분에 아직까지도 가게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세월의 증거는 전화번호다. 처음 한 자리 국번에서 지금의 세 자리 국번까지, 간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마산이 한창 호황기였던 70년대를 지나면서 어시장도 활기를 띠는 대표 시장이 되었고 하신다. 그러나 그런 경제적 변화로 인근 섬마을을 잇는 도로가 생기고, 쌀 소비가 줄어드는 90년대를 거치며 조금씩 쌀가게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인근 가게들이 점점 문을 닫았지만 사장님의 부모님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주셨다고 한다.

가게를 살피다가 손때 묻은 나무 상자가 있어서 여쭤보았다. 가게와 함께 나이를 먹는 나무 상자라고 하며 웃으면서 설명을 해주신다. 나무상자는 바로 쌀을 담는 계량컵이었다. 지금 시절에는 거의 쓰지 않는 '홉' 단위의 계량컵이었다.
 
무게를 다는 가장 작은 단위인 '홉'
처음 가게를 시작할때부터의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나무 계량컵이고 당시의 눈금자로 사용했던 줄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계량컵 "홉" 무게를 다는 가장 작은 단위인 "홉" 처음 가게를 시작할때부터의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나무 계량컵이고 당시의 눈금자로 사용했던 줄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박미혜

관련사진보기

시절이 시절인지라 되나 말로도 쌀을 살 수 없는 이들이 찾았던 '홉' 계량컵이었다.
자세히 쳐다보면 홉 겉면에 줄이 그어져 있다. 눈금으로 쓰였던 흔적이다. 나무 계량은 눈금을 그어놓고 무게를 달고 장사를 하지만, 속임수가 많아 그 이후에는 쇠로 만든 바가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계량의 단위도 커져서 '되'나 '말'로 사가는 손님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홉'은 가게를 지키고 있다. 아마도 부모님의 뜻을 지키고 싶은 주인 따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무게를 달아 파는 장사를 하는 사람은 눈금을 속이면 안 된다는 진심 말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정이 없다는 말도 있고, 더더욱 시장은 드센 이들이 많아 삶의 치열한 전쟁터라고들 한다. 어시장도 큰 위기를 겪었던 때가 있는데, 바로 태풍 '매미' 때였다.

시장 대다수 점포가 물에 잠기고 수해로 인해 온통 쓰레기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런 시장을 상인들이 발 벗고 나서서 지게차로 쓰레기를 치웠다고 한다. 또한 내 가게, 남의 가게 할 것 없이 손수 쓸고 닦으며 쓰레기들을 치우고 그 이튿날부터 새 물건을 넣고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서로 표현을 안 하지만, 묵묵히 쓰레기를 정리하며 수해로 엉망이 된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이다. 그래서 경상도는 속정이 깊다고 이야기를 해주신다. 투박하고 무뚝뚝한 한 마디지만 그 속에는 너나를 따지지 않는 마음 쓰임이 있다며 웃으신다.

마산 어시장은 다른 지역의 대표 시장처럼 요란하지 않다. 하지만 새벽부터 점포를 열고 장사를 하는 나부터가 남의 손을 바라지 않고, 성실히 내 일과 내 가정을 지키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하신다.

시장의 모든 이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어시장 지킴이'를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신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아침이며 일하러 나올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고, 그런 점포를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자리를 지킨단다. 지나가는 상인들과 손님께 인사를 건네는 사장님을 보면서 푸근한 엄마 같은 정을 느끼고 오게 되었다.

태그:#마산어시장, #거제쌀상회, #2대에 거친 쌀가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기억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과 그 기록들을 잘 담고 후세에 알려줄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