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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에 폭우가 내리면서 8일 오전 전남 구례군 섬진강의 물이 불어 범람 위기에 놓여 있다. 2020.8.8 [전남 구례군 제공]
 남부지방에 폭우가 내리면서 8일 오전 전남 구례군 섬진강의 물이 불어 범람 위기에 놓여 있다. 2020.8.8 [전남 구례군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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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2020년 여름 기후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핵심어는 시베리아 열파(heat wave 극심한 이상 고온이 수일 또는 수 주간 계속되는 현상)이다.

북위 60도 부근에 위치한 시베리아 북부 베르호얀스크(Verkhoyansk)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올해 1월부터 평년보다 5℃ 이상 높은 이상 고온 현상이 지속되었다. 이 지역의 기온이 절정을 이룬 시기는 6월 20일로 38℃를 기록했다. 이러한 고온 현상 탓에 영구 동토층이 녹고 건물이 붕괴했으며 산불이 났다.

시베리아 열파는 지구온난화로 북극권의 기온이 빠르게 상승하여 중․저위도 지역과의 기온차가 감소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극권의 기온이 상승해 북극권과 중위도 간의 기압 차가 줄어들면 편서풍 파동이 증폭하게 된다. 편서풍 파동이란 중위도 상공에서 편서풍이 남북 방향으로 파동을 이루는 현상으로 저위도의 열을 고위도로 나르는 역할을 한다.

시베리아 열파가 2020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기후 변화의 위협이 중·고위도 지역에까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2000년대 이래 평년 기온보다 2℃ 이상 높은 고온 현상이 자주 일어났다. 

올해 시베리아 열파는 가장 심각했다. 2020년 시베리아 고온 현상을 연구한 오토(Otto) 옥스퍼드 환경변화연구소 소장은 "기후 변화로 전 세계의 열파 현상이 얼마나 본질적으로 변했는지를 재차 확인시켜준 사건이다"라고 지적했다(The Guardian 2020년 7월 15일). 열파가 중·고위도를 넘어서 극지방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말이다.

고위도 지역의 고온화는 태양 복사 에너지 반사율이 높은 얼음을 녹인다. 이는 태양 복사 에너지를 반사해 지표의 고온화를 억제하는 동토의 긍정적인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 개체의 행위가 인과 관계를 거쳐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현상)를 파괴하고, 세계 최대의 숲이 있는 시베리아에 산불을 더 자주, 더 넓게, 더 세게 일으킨다.

실제로 2020년 시베리아의 산불은 4월에 이례적으로 일찍 시작되었고 그 이전 해보다 북쪽으로 확대되었다. 6월 중순 이후 화재 규모는 그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 100만 헥타르를 넘어섰는데 이 산불로 이산화탄소 59메가톤(5억9천만 톤)이 방출되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약 70메가톤)에 버금가는 막대한 양이다.

툰드라 지역의 해빙은 동토의 지하에 저장된 메탄얼음(methene hydrate)을 녹여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효과를 발휘하는 기체인 메탄을 대기로 대량 방출한다. 이 메탄이 산불 발생을 조장하고 확대한다.

7~8월 폭우... 왜?
 
[그림1] 2020년 4월 전 세계 500hPa 평균 등고선 분포
 [그림1] 2020년 4월 전 세계 500hPa 평균 등고선 분포
ⓒ 김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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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열파는 올 여름 우리나라의 역대급 폭우에 영향을 미쳤다. 

그림 1에 2020년 4월의 북반구 500hPa(헥토파스칼) 평균 등고선이 나온다. 베링해에서 우리나라 쪽으로 거대한 기압골이 만들어져서 북극권의 찬 공기가 자리 잡았다. 반면에 우리나라 북북서쪽 북위 60도 부근에는 기압능(저기압을 나타내는 선에 둘러싸여 골짜기를 이루는 고기압 구역)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문제의 시베리아 열파가 기승을 부린 곳이다. 시베리아 열파에 밀려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와 우리나라쪽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기압 유형은 올 1월부터 정착되어 여름까지 이어졌다.

이 찬 공기가 장마전선의 북상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장마전선이 남쪽 먼 해상에 머물러 있던 7월에는 서쪽 끝 부분으로 내려가 온대 저기압을 만들었다(이를 전선파동이라 부른다). 이 온대 저기압이 느린 속도로 동쪽으로 빠져나가면서 7월 우리나라에 강한 비를 뿌렸다. 그 사이에 장마전선은 남쪽 먼 해상에 그대로 정체했다(그림 2).
 
[그림2] 정체전선(장마전선)의 서쪽 끝에서 전선 파동으로 발생한 온대저기압이 우리나라를 지나는 사례(2020년 6월 24일)
 [그림2] 정체전선(장마전선)의 서쪽 끝에서 전선 파동으로 발생한 온대저기압이 우리나라를 지나는 사례(2020년 6월 24일)
ⓒ 김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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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되어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강해지면서 장마전선이 북상해 북쪽 찬 공기 세력과 대치하면서 남부 지방과 북한 사이를 오갔다. 두 공기 세력이 강하게 대치하는 동안 대만 앞바다에서 북태평양고기압의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장마전선으로 수증기가 강하게 유입되었다[이 수증기 유입 경로를 대기의 강(atmospheric river)이라 부른다]. 이 때문에 좁은 전선대에서 강한 비구름이 형성돼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일반적으로 장마전선을 따라서 내리는 강수 구역은 남북 방향으로 100km 내외로  좁은데 8월에 내린 전선대는 남쪽과 북쪽의 기단 세력이 강하게 대치한 탓에 폭이 더 좁았고 폭우를 만드는 대류 활동은 매우 활발하였다.

결과적으로 7-8월에 내린 폭우는 시베리아 열파에 밀려 내려온 찬 공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기상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상청은 5월 23일 2020년 여름 기후 전망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였다. 이 보도자료에서 기상청은 북쪽에 찬 공기 세력이 강하고 남쪽 해상의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은 발달이 늦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서 장마의 시작과 끝도 평년 대비 5일 정도 늦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장마가 끝나는 7월 말부터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우리나라 쪽으로 북상하고 티베트 고기압과 중국 내륙에서 만들어지는 고온의 공기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쳐서 고온이 평년보다 길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여름철 기온은 평년보다 0.5∼1.5℃ 정도 더 높고 폭염 일과 열대야 일수는 평년보다 10여 일 정도 더 자주 발생한다고 예측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기상청의 2020년도 여름 전망은 7월 말까지는 대체로 적중했지만 8월부터의 기후 전망에서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기상청이 시베리아 열파로 강하게 자리 잡았던 동아시아 상공의 찬 공기세력이 7월 말 정도면 해소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 상당수의 기상학 교수들은 시베리아 열파가 남쪽으로 확장하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우리나라를 지나갈 저기압의 진로를 막을 것이며 나아가 직접 우리나라에까지 뜨거운 열기를 공급해 역대급 폭염을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견해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널리 전파되어 역대급 폭염이 된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필자는 4월 말에 올해는 덥지 않은 여름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렇게 판단한 전문가의 수는 많지 않았다. 

기상청이 8월에 나타난 역대급 폭우를 예상하지 못한 것도 결국은 북쪽 찬 공기 세력이 그렇게 오랜 기간 강하게 유지될 줄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런 현상까지 정확도 높게 전망하는 것은 현재의 기후학 지식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일본과 중국 기상청도 제대로 전망 못 하는 건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장래 한국의 여름은

기후변화가 진행되면 금세기 후반에 장마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를 다룬 전망자료를 찾아보면 ▲ 북태평양 고기압의 발달이 늦어진다 ▲ 여름철에 접어들어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은 8∼10일 정도 발달하고 7∼8일 정도 약해지는 상태 변화를 반복한다 ▲ 장마의 시작과 마침은 모두 평균 4일 정도 늦추어진다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그런데 장마가 7월 말, 때에 따라서는 8월에 끝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할 수 있다고 하며 강수량은 장마전선의 서쪽(중국 내륙과 일본 시코쿠)은 증가하고 한반도와 일본 본토 쪽은 감소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 전망과 올해 장마 활동을 비교해 보면 장마에 수반된 강수량이 감소한다는 점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래 우리나라 폭우 현상은 경향적으로는 장마철에는 감소하고 가을철에 증가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하지만 해에 따라서는 올해 여름과 같이 여름 장마철에 폭우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기후변화의 진행에 따라서 편서풍 파동의 진폭이 장래에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열파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2020년에 처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단지 북반구 편서풍 파동의 진폭이 크게 발달하여 그곳의 고온이 특별히 일찍부터 시작되었고 기온 상승도 대폭 높았을 뿐이다. 따라서 앞으로 기후변화가 더욱 진행되어 편서풍 파동의 진폭이 더욱 커지면 시베리아 열파도 더욱 강화될 개연성이 높다. 그렇게 되는 해에는 올 여름보다도 더 큰 물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우리나라 여름 기후를 지배하는 상황 변화를 감안해 전망해 보면 장래 한국의 여름은 2016년, 2018년과 같은 폭염의 해가 되든가 2019년, 2020년과 같은 폭우의 해가 될 가능성이 점차 커질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폭염의 여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강한 가을 장마전선과 강한 가을 태풍의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가을 폭우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남쪽 해양의 해수 온도는 여름보다 가을에 더 높아서 여름 태풍보다 가을 태풍이 훨씬 강하다.

과거엔 8월 하순 이후 태풍의 진로는 대부분 일본 열도 혹은 그 이남이었는데 최근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그 시기에도 여전히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어서 9월에도 태풍이 한반도로 향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언제 슈퍼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슈퍼 태풍은 풍속이 초속 67m 이상이고 강수량이 하루에 1200mm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올해 장마철에 내린 물 폭탄보다 두 배 이상의 비를 내리게 된다. 이러한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해졌다.

나라의 품격은 높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재난 앞에서 초라해지지 않는 안전한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태그:#기후변화,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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