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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백령도
ⓒ Korea.net / 한국문화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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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항구다. 서해의 관문이다. 그 앞 바다엔 섬들이 빼곡하다. 물경 200개다. 섬 사람들은 너나 없이 인천항으로 몰려든다. 삶에 필요한 물건이나 식량 따위를 구하기 위해서다. 대신 그들은 섬의 사연과 문화를 전해준다. 뭍에서 섬으로 나간 것만큼 섬에서 전해져 들어온 것도 많다. 특히 바다 생선과 해산물로 만드는 음식의 8할은 섬에서 왔다. 인천은 섬의 도시이기도 하다.

섬에서 온 음식 중엔 특이하게도 해산물을 전혀 쓰지 않는 것도 있다. 오직 땅의 산물만으로 만든다. 메밀로 빚은 냉면이다. 메밀은 척박한 산간지방에서 잘 자란다. 함경도가 유명하다. 남한에서도 강원도가 유명하다. 그런 메밀이 한반도 최서단의 섬, 백령도에서 많이 난다. 지금은 많이 줄었다지만 30t 이상 수확하던 때도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사실 여기엔 서글픈 사연이 있다.

백령도 메밀에 숨은 사연

이야기는 6.25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황해도 해안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대거 섬으로 피난했다. 백령도, 대소청도, 교동도 등이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면 언제든 돌아갈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전쟁은 쉬 끝나지 않았다. 장장 3년이나 이어졌다. 

가까스로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거두긴 했는데, 완전한 종전이 아니었다. 잠시 휴전이었다. 황해도 피난민들은 난감해졌다. 더 황망한 건 그들이 머물던 섬들이 어느덧 이남땅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전쟁 전엔 이북땅이었다. 고향은 헤엄쳐서도 갈 거리였다. 눈앞에 빤히 고향땅을 보면서도 그들은 배를 띄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그들은 하릴없이 짐을 풀었다. 짐보따리 깊숙한 곳엔 메밀 종자도 있었다. 섬에서 땅을 구해 메밀 농사부터 지었다. 그 메밀로 국수를 뽑아, 찬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었다. 섬 원주민들과도 함께 나누어 먹었다. 백령도식 메밀냉면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도 인천 곳곳에는 그 후예를 자처하는 냉면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부평의 부평막국수, 주안의 변가네옹진냉면은 사실상 그들의 효시다. 그 두 식당의 창업주들은 백령도 출신이다. 그들은 70년대 중반 뭍으로 나와 각자의 식당을 열었다. 솔직히 백령식 냉면은 적응하기 힘들다. 식당 음식인데도 인공조미료 향이 전혀 없다. 익숙하지 않다. 참 밍숭밍숭하다. 처음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이 성공했다. 맛을 바꾼 게 아니라 사람들의 입맛을 바꿨다. 처음 먹어본 사람들은 그 이질적인 맛에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며칠 지나면 그 맛이 오감으로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테이블 서너 개로 시작한 매장은 머잖아 독립 건물을 올릴 만큼 성장했다. 부평막국수는 인천의 북부지방을, 변가네옹진냉면은 남부를 평정했다.

끊임없는 연구와 혁신, 백령면옥
 
반골(소꼬리뼈)과 잡뼈를 함께 우린 육수가 한결진하다. 면은 얇지만 식감은 풍성하다
▲ 백령면옥의 물냉면 반골(소꼬리뼈)과 잡뼈를 함께 우린 육수가 한결진하다. 면은 얇지만 식감은 풍성하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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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이어 사곶냉면, 신화동 냉면 등의 독립 브랜드들이 인천 본토에 속속 문을 열었다. 1세대들이 직접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들은 청운의 꿈을 안고 뭍으로 나온 친인척들에게 아낌없이 비법을 전수했다. 특히 부평막국수의 후예들은 '백령면옥'이라는 고유상표를 개발해 인천냉면계의 강자로 부상했다. 

부평막국수 장학봉 창업주의 아들은 서구 심곡동에 터를 잡았다.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다. 뒤이어 지난 2004년 외조카인 이성겸(53) 사장이 미추홀구 도화동에 같은 상호로 문을 열었다. 이 사장은 백령도 진촌 출신이다. 20여 년 전 뭍으로 나와 외삼촌네 식당에서 3년간 맹렬하게 수련했다. 외삼촌의 가르침에 자신만의 연구 노하우를 접목해 야심차게 가게를 냈다.

도화동 백령면옥 매장의 지하에는 간이 방앗간이 있다. '간이'라고 하지만 시설과 규모는 여느 방앗간 못지않다. 이 사장은 여기서 직접 백령도산 메밀을 제분한다.

"메밀이 정말 중요하죠. 전 매년 11월 백령도에 직접 가 거기 메밀을 수매해 옵니다. 백령이라는 간판 걸고 다른 데서 가져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최근 백령도 메밀 생산량도 늘어 곧 거기에 메밀가루 공장을 지으려 준비 중입니다."

이 사장의 백령메밀 사랑은 남다르다. 몇 해 전 봉평 메밀마을에 다녀온 후부터 더 커졌다. 봉평 못지않은 백령도 메밀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다. 지역 특산물은 산업뿐 아니라 관광과 문화까지 성장 발전시키는 소중한 자원이라 굳게 믿는다. 고향 백령도에 메밀밭과 가공공장, 전문식당가와 전시장 등이 함께 어우러진 메밀관광단지 조성이 지상과제다.
 
지하1층 지상2층 규모. 지상 1,2층이 매장이고 지하 1층에는 백령도에서 공수한 메밀을 제분하는 방앗간시설이 갖춰져 잇다.
 지하1층 지상2층 규모. 지상 1,2층이 매장이고 지하 1층에는 백령도에서 공수한 메밀을 제분하는 방앗간시설이 갖춰져 잇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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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경 쓰는 만큼 백령면옥의 강점 중 하나는 '면'이다. 메밀국수답지 않게 얇다. 소면보다 아주 조금 두꺼운 정도다. 대신 향은 짙고 식감은 쫄깃하다. 이 사장 말을 빌리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메밀 분을 넣어' 그렇단다. 찰기를 위해 밀가루와 전분을 함께 섞는데, 그 비율은 며느리에게도 알려 주지 못한다며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육수는 여느 백령식처럼 한우잡뼈를 기본으로 쓴다. 남다른 감칠맛이 있어 물었더니 '반골'을 넣는다고 귀띔해 준다. 반골은 소의 꼬리뼈 부분이다. 한 마리에 하나밖에 없으니 당연히 귀하고 비싸다. 그래선지 이 집의 육수는 유난히 진하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이 사장은 연구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에 유명한 뭐가 있다면 반드시 쫓아가 먹어본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정통 황해도식 냉면의 진수, 황해 순 모밀냉면
 
뽀얀 육수에 양이 압도적이다. 면 옆의 갈색물체는 육수를 내린 양지고기다. 실처럼 얇에 찢어 고명으로 올린다.
▲ 정통 황해도식 냉면 뽀얀 육수에 양이 압도적이다. 면 옆의 갈색물체는 육수를 내린 양지고기다. 실처럼 얇에 찢어 고명으로 올린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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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인천 냉면계에 영화의 프리퀄 시리즈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백령도에 메밀을 전파해준 황해도 사람의 후예가 인천 만수동에 냉면식당을 낸 것이다. 주인공은 박정매(76) 여사. 황해도 해주가 고향이다. 그의 할머니 대부터 해주에서 냉면집을 했다고 한다. 그 때 쓰던 냉면 국수틀을 피난 나올 때도 갖고 나왔다.

그 할머니와 어머니가 소청도에 자리 잡고 냉면을 말았다. 그 두 분이 사실상 백령냉면의 원조였던 거다. 그런 집안 장녀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국수틀을 들고 인천 냉면무림계에 나타난 거다. 그야말로 '진짜가 나타났다'였다. 그런데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했다. 고르고 고르다 한적한 주택가에 가게를 냈다. 단독주택과 고만고만한 연립주택만 모여 있는 동네였다.

겉으로만 보면 도저히 장사 할 만 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정매 사장은 과감하게 승부를 걸었다. 가게 이름부터 공격적으로 지었다. '황해 순 모밀 냉면'이었다. '황해'라는 지명을 앞세워 자신들이 황해도 냉면의 본산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메밀마저도 그냥 '메밀'이 아니라 아닌 북한 사투리로 '모밀'이라 썼다. 한 가운데 박힌 관형사 '순'은 그 중 백미였다.

온가족이 매달렸다. 엄마는 주방에, 아들, 딸은 서빙을, 아버지는 카운터를 보는 식이었다. 맛은 정직하다는 신념 하나였다. 할머니와 어머니께 전수받은 전통방식을 고집했다. 조미료는 물론 백령식 냉면의 필수재료가 된 까나리 액젓도 일절 쓰지 않았다. 자연히 맛은 백령식보다 훨씬 투박하고 심심했다. 그런데 거기엔 참 오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자다가도 생각나는 맛이었다.

넉넉한 인심은 배고픈 중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양이 압도적이었다. 그릇부터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만큼 컸다. 가격도 착하다. 지금도 물냉면 한 그릇이 7000원이다. 다른 곳보다 2~3000원 싸다. 서울 물가야 댈 것도 없다. 다른 백령냉면집은 서비스로 면수를 주는데, 여긴 뜨끈한 육수를 내 준다. 그 맛이 일류 설렁탕집 뺨치게 구수하다. 주인장의 푸근한 마음이 느껴진다.
 
정통 황해도의 본산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지명'황해'와 '모밀'이란 ㅏ투리를 썼다. 가운데 박힌 '순'이 정점이다
▲ 황해 순 모밀 냉면 식당 전경  정통 황해도의 본산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지명"황해"와 "모밀"이란 ㅏ투리를 썼다. 가운데 박힌 "순"이 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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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냉면의 육수는 한우 잡뼈와 양지를 섞어 쓴다. 고기가 들어가선지 구수한 향이 짙다. 고기는 다 우리고 나서 잘게 찢어 고명으로 올린다. 실처럼 얇지만 국수와 함께 몇 가닥 씹으면 식감이 말도 못하게 풍성해진다. 다른 백령식 냉면에는 없는 서비스다. 이 집도 메밀은 직접 사다 말리고 빻아서 쓴다. 옥상에서 말리고 지하실 제분기에서 빻는 식이다. 두툼하지만 그만큼 씹는 맛이 좋다. 향도 살아있다.

어머니로부터 본점을 물려받은 장남 김계천 사장(55)은 '전통의 보전'을 제1의 가치로 여긴다.

"처음 가게를 연 날부터 지금까지 찾아주시는 몇 십 년 단골손님이 많아요. 그 분들은 우리 어머니가 해 주시던 맛을 잊지 못하고 찾아오시는 거죠. 그런 분들께 아들이 물려받고 나서 맛도 인심도 변했다는 소릴 들어서야 되겠어요?"

둘째 아들은 만수동에 가게를 냈다. 거기도 냉면집 할 자리는 아니다. 위치야 대로변이지만 터가 작고 주차공간도 없다. 그런데도 사시사철 장사는 잘 된다. 주인네와 손님들 간 이심전심의 결과가 아닐까. 넓은 마음씨와 넉넉한 인심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통하는 법이다.

오직 고객을 위한 

이 두 냉면명가는 2세대들이 운영한다. 황해 순 모밀 냉면의 김계천 사장은 사실이 그렇다. 백령면옥 이성겸 대표는 외삼촌으로부터 비방을 전수 받았으니 그런 셈이다. 그들은 1세대 못지 않은 열정과 성실함으로 가업을 잇고 있다. 물론 그 둘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백령면옥'의 이성겸 사장은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혁신을 추구한다. '황해 순 모밀 냉면'의 김계천 대표는 전통의 계승과 발전에 역점을 둔다.

그들의 고향과 가업에 대한 자부심은 정말 대단하다. 그것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한결같이 손님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점도 같다. 그들에게 손님은 가족이다. 가족을 먹인다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면을 삶고 육수를 우린다. 고객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넬 때가 가장 기쁘다. 신뢰를 쌓는 건 어렵지만 잃는 건 순식간이란 진리가 가슴에 새겨져 있다.  

유래 없는 긴 장마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새벽이면 이불을 찾을 만큼 선선하다. 서민들이야 안 더우니 살맛난다. 이런 여름이 또 있을까 싶게 반갑다. 하지만 냉면집 사장님들은 울상이다. 코로나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 판인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아무리 유명한 식당이라도 다 그렇다고 한다. 그들과 어려움을 나누는 마음으로라도 오늘 점심은 시원한 물냉면이 어떨까. 

*문의
① 「백령면옥」, 인천 미추홀구 도화2동, 032-881-8489
② 「황해 순 모밀 냉면」, 인천남동구 만수동, 032-464-8349

 

태그:#냉면명가, #백령황해냉면, #인천냉면, #백령면옥, #황해순모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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