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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평화상을 받는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을 받는 김대중 대통령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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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13일 노벨위원회는 평화상 수상자로 한국의 김대중을 지명했다.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공헌했고, 남북한 사이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에 이바지했으며, 일본 등 인근 국가와의 선린 및 화해를 위해 노력'한 김대중의 공로를 인정했다.

필자는 노벨위원회 발표문에서 '오랜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장기간 망명 생활을 강요당한 상황에서도 김대중이 보여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철학과 투쟁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라는 부분에 주목한다. 대한민국을 세계인의 뇌리에 권위주의 통치가 장기간 지속된 나라, 유력 야당 정치인을 수 차례 암살하려 한 나라로 각인시킨 자들은 누구인가?

각인 시킨 자들

김대중이 넘긴 죽음의 첫 고비는 1950년에 찾아왔다. 볼일차 상경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걸어서 목포 집으로 돌아가던 중 공산군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총살 직전까지 몰렸지만 목포 형무소를 탈옥하여 간신히 살아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노벨위원회가 말한 '오랜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례는 아니다. 6·25전쟁 때 죽다가 살아난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에 견주면,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여러 차례 암살 위협에 시달린 일은 '오랜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겪은 최악의 정치 사건임에 분명하다.

1971년 8월 김대중은 무안에서 총선 지원 유세 중 죽을 고비를 겪었다. 그가 승용차 안에 앉아 있을 때 (암살 기도로 의심되는) 대형 트럭이 갑자기 덮쳤다. 이 사고로 죽지는 않았지만 고관절 손상로 그는 평생 지팡이를 짚어야 보행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1973년 8월 8일 중앙정보부는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그를 납치해 동해에 수장하려 했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납치 현장에 북한 담배를 버려두는 등 졸렬한 위장 전술을 폈다. 중앙정보부 공작선 용금호가 그를 바다에 집어던지려는 순간 미국 비행기가 나타났다. 중앙정보부는 8월 13일 그를 서울 집에 내려놓았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납치되어 동해에 수장될 위기에 처했던 김대중이 풀려난 후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납치되어 동해에 수장될 위기에 처했던 김대중이 풀려난 후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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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법정이 그에게 내란 음모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암살 대신 합법적 절차를 거쳐 김대중을 죽이려 한 기도였다. 이는 이승만 정권이 조봉암에게 행한 '사법 살인'을 본뜬 재판이었다. 그러자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형 집행이 정지되면서 김대중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암살은 정적을 은밀히 죽이는 불법 행위

암살은 정치적·사상적 목적을 위해 은밀히 진행하는 살인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암살은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에 많다. 독재 국가에서는 암살이 가장 유효한 독재자 타도 방법으로 생각된다.' 김대중은 독재자가 아니었음에도 줄곧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그 이유를 노벨위원회는 우리나라가 '오랜 권위주의 통치'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은밀한 장소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서거'한 사건에 '시해'라는 단어를 적용한다. 시해는 누군가가 임금을 죽였다는 뜻이다. 본의와 무관하게 그들은 박정희를 독재자로 자인한 꼴이다.

독재자 박정희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과 대조적으로, 여러 차례 암살 위기에 직면했던 김대중은 평화롭게 자연사했다. 사전은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에 암살이 많다고 정의했는데, 줄곧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공헌'했던 그는 2009년 8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고향 하의도의 '큰 바위 얼굴' 앞에 선 김대중, 이희호 부부의 2009년 4월 모습
 고향 하의도의 "큰 바위 얼굴" 앞에 선 김대중, 이희호 부부의 2009년 4월 모습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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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불안한 나라에 암살이 많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암살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역시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다. 시민이 주인인데 감히 누가 주인을 마구 죽일 수 있겠는가! 김대중 서거 11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역사에 새겨져 있는 중요 암살 사건들을 살펴본다.

우리 역사에서 유명한 암살 사건들

478년 백제 22대 임금 문주왕이 대신 해구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되었다. 그로부터 23년 뒤인 501년 동성왕도 대신 백가에게 암살되었다. 이는 당시 백제의 정치가 그만큼 불안정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신라도 후기로 접어들면 많은 왕들이 칼날 아래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암살이라기 보다는, 정권을 빼앗으려는 세력이 일으킨 쿠데타 와중에 죽었으니 변사에 해당된다. 신라사에서 가장 유명한 암살은 청해진 대사 장보고가 846년 조정이 보낸 자객 염장에게 죽은 사건이다.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표현) 광복회는 1917년 11월 10일 친일부호 장승원을 집으로 찾아가 처단했다. 사진은 현재 구미에 남아 있는 장승원의 집이다. 소유주는 장승원의 후손이 아니다.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표현) 광복회는 1917년 11월 10일 친일부호 장승원을 집으로 찾아가 처단했다. 사진은 현재 구미에 남아 있는 장승원의 집이다. 소유주는 장승원의 후손이 아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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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시기의 유명 암살은 1907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 처단, 1917년 11월 10일 광복회의 친일부호 장승원 처단, 1921년 2월 16일 양근환 의사의 국민협회 회장 민원식 처단, 1928년 5월 14일 조명하 의사의 일본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처단이다. 그러나 이 일들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암살이었으니 '의거'일 뿐 통념적 살인은 아니다.

독립운동 시기의 가장 안타까운 암살은 1930년 1월 24일의 김좌진 장군 사망과 1934년 9월 8일의 양세봉 조선혁명군 사령관 사망이다.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은 공산당원 박상실에게 암살당했고, 일본이 지배하는 만주에서 10년 이상 독립전쟁을 이끌어온 양세봉 사령관은 일제 앞잡이 이동양과 박창해에게 암살당했다.
  
독립 이후에는 1945년 12월 30일 독립지사 송진우가 우익 단체 '활동'가 한현우에게 암살당했다. 1947년 7월 19일에는 좌우 합작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맹렬히 '활동'해온 독립지사 여운형이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극우 청년 한지근에게 암살당했다.

그해 12월 2일에는 친일 경력이 있는 정치인 장덕수가 종로경찰서 경사 박경옥과 학생 배희범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1949년 6월 26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가 현역 장교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전두환 군부는 군사재판에서 김대중에게 내란음모를 이유로 사형을 선고했다.
 전두환 군부는 군사재판에서 김대중에게 내란음모를 이유로 사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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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김대중의 마지막 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류상영 연세대 교수의 <세계평화인물열전>에 따르면 김대중은 마지막으로 쓴 2009년 1월 7일 일기에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고 기록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김대중의 인식이 지구인의, 적어도 한국인의 보편적 인식으로 확산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심훈은 '그 날이 오면 나는 종로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라고 했다. 필자는 그 날이 오면 동해 바다를 시원하게 달리면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평생을 바친 김대중을 다시 한번 우러러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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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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