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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서울시는 기존의 버스정류장을 업그레이드한 '스마트 쉘터'를 올 가을 시범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스마트 쉘터에는 무료와이파이와 무선충전기는 물론 정확한 정차 위치를 버스에 알려주는 센서, 승객들의 탑승을 유도하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될 예정이다. 또한 천정의 공기청정기와 벽면수직정원을 통해 미세먼지에 대비하고, 온열의자와 에어커튼을 통해 폭염과 추위를 피할 수 있다.

교통체계에 미래형 스마트 쉘터를 도입하는 것이 어떠한 배경을 통해 결정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도시개발은 최근 여러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이다. 특히 기후가 불안정해지면서 폭염과 혹한으로 큰 피해를 입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면서, 시민들을 이상기후와 환경오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도시개발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항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상기후와 환경오염은 누구에게나 큰 문제이다. 하지만 그 여파가 모두에게 똑같이 미치는 것은 아니다. 1995년 시카고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일주일 사이에 485명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어떤 자연재해보다, 심지어 허리케인보다도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폭염사회>에서 당시 시카고의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대중적 관심을 받지 못한 이유는 피해자들이 이미 사회에서 비가시화 되어 있던 고립된 이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4년 뒤 1999년에 닥친 폭염에서는 시 당국의 폭염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사망자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는데, 이러한 점을 통해 폭염을 비롯한 기상이변은 사회적 취약성과 불평등, 정책적 대응 속에서 그 피해의 규모가 달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대상에는 사회 내부의 불평등과 제도가 포함된다.

뙤약볕과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야외 노동자들은 폭염과 혹한, 미세먼지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받는 이들 중 하나다. 가스검침원, 배달노동자, 학습지교사, 노점상, 건설노동자, 농업 및 어업종사자 등 야외노동자 대부분은 일정한 사업장에 속하지 않은 비전형노동자들로 취약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햇볕에 달궈진 철재, 그늘 하나 없는 밭, 버스와 아스팔트의 열기, 헬멧과 같은 보호구는 체감하는 온도와 습도를 몇 도나 더 높인다.

2019년에는 1841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는데, 논/밭을 포함한 실외작업장에서 발생한 경우가 47%를 차지했다. 올 해도 긴 장마 뒤에 닥친 폭염으로 건설노동자와 가로수 작업을 하던 이주노동자가 숨졌다. 일을 하다 더위를 먹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물, 그늘, 휴식'이다. 탈수에 걸리지 않도록 물을 충분히 마시고, 너무 뜨거운 시간에는 그늘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내용의 폭염대비 대책을 발표하고, 각 사업장에도 이를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고만으로 '물, 그늘, 휴식'을 확보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배달노동자의 예를 들자면, 배달노동자가 바쁜 시간은 비 오는 날, 더운 날, 점심, 저녁, 야식시간에 몰려있다. 배달업 자체가 고객의 주문을 따라가는 업인데다 주문이 꾸준히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콜이 들어올 때 바짝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태풍이 와서 강풍으로 오토바이 주행이 어려울 때는 잠시 배달을 쉬는 배달대행사가 늘어났지만, 더위에 배달을 쉬는 곳은 많지 않다.

올해 부산에서는 장마로 도로가 침수된 상황에서도 배달노동자들이 오토바이를 끌고 배달을 하는 위험천만한 모습이 배달노동자의 제보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때문에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에서는 안전배달료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감의 변동 때문에 노동자들의 삶이 출렁이지 않아야 노동자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만이 문제는 아니다. 주문이 뜸해지는 오후 2시-5시는 많은 배달노동자들이 한 숨을 돌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에 가서 쉴 수 있을까? 동네 배달대행사에 속한 라이더들의 경우 대행사 사무소에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겠으나, 사무소에 가서 쉴 수 없는 라이더들도 많다. 사무소가 배달구역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최근 늘어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쿠팡이츠 쿠리어, 배민커넥트)의 경우 소속된 사무소도 없다. 요령껏 그늘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집이 가까운 이들은 집으로 가기도 하지만, PC방, 편의점, 싼 커피를 파는 카페로 향하는 이들도 많다. 로그인하면 출근, 로그아웃하면 퇴근이라고 하지만, 콜이 많은 동네로 출퇴근하는 배달노동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배달노동자들 뿐이 아니다. 가스검침원, 학습지교사, 대리운전노동자 등은 모두 도보, 오토바이, 자가용 등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일을 한다. 아웃소싱, 기술 중심의 경제가 확장함에 따라 고정된 일터 바깥의 노동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동자들에게 일할 권리에 상응하는 쉴 권리, 일하느라 소진된 자신을 돌볼 권리와 여건은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이동노동자쉼터를 지속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쉼터가 안락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반해 숫자가 많지 않아 이동 중 동선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평이다. 쉼 없이 움직이는 이동노동자들에게는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과 더불어 이동시 잠깐 들를 수 있는 근접성이 필수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같은 마포구라도 홍대 인근을 돌아다니는 이동노동자에게 마포역 근처의 쉼터는 방문할 법한 동선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도보로 이동하는 경우, 한 군데의 대형 쉼터보다는 작더라도 곳곳에 흩어진 쉼터가 효과적이다.
  
뉴욕시 택시&리무진 위원회(Taxi & Limousine Commission)에서는 휴게소의 위치를 구글맵에 기록하여 공유하고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viewer?mid=1DBI0nZ8NTAwyLggrq4-hxohNmd0Piucd&ll=40.733713214876325%2C-73.9658034871339&z=13)
▲ 뉴욕시의 택시/플랫폼 운전자들을 위한 휴게소 및 화장실  뉴욕시 택시&리무진 위원회(Taxi & Limousine Commission)에서는 휴게소의 위치를 구글맵에 기록하여 공유하고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viewer?mid=1DBI0nZ8NTAwyLggrq4-hxohNmd0Piucd&ll=40.733713214876325%2C-73.9658034871339&z=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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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시의 경우, 택시 기사들이 1시간 정도 차를 세울 수 있는 무료주차시설 (Taxi and For Hire Vehicle Relief Stand)을 시내 곳곳에 운영하고 있으며, 우버나 리프트 등 플랫폼의 드라이버들에게도 주차장 일부를 개방하고 있다. 이름은 휴게소(Relief Stand) 이지만 주차만 가능할 뿐, 화장실 등의 휴게시설은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휴게소의 기능을 제공하지는 못하며, 플랫폼 노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탓에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내 곳곳의 거리를 쉼터로 활용하는 발상만은 참고할 만하다. 우리에게도 이미 많은 이동노동자들이 쉼터로 활용하는 공간들이 곳곳에 있으며, 공영주차장과 주민센터 등 도심 곳곳에 퍼져있는 공공장소도 있다.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그늘은 새로운 보호소 뿐 아니라 다양한 자원과 구성원들을 엮어내는 새로운 운영방식을 통해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운영방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이용자 시민과 더불어 노동자 시민을 이상기후와 환경오염 대책의 중요한 주체로 인식하고 고려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스마트 시티에도 오프라인에서, 해와 비 아래에서 일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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