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디토리협동조합
▲ 미디토리협동조합 미디토리협동조합
ⓒ 미디토리협동조합

관련사진보기

 
지역에서 변화를 만드는 이들이 먹고사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산의 사람들과 부산의 이야기를, 다양한 미디어로 담아내는 부산 미디토리협동조합의 김영 운영팀장을 8월 11일, 기자가 만났습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미디어 콘텐츠를 디자인∙제작하면서 먹고사는 미디토리협동조합, 이곳에서 운영팀장을 맡고 있는 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 미디토리협동조합(아래 미디토리)은 '문화예술단체'로 불리기도 하고, 또 어디서는 '사회적기업'으로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미디토리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어… '미디토리'라는 이름 자체가 정체성인 것 같아요. 미디어(Media)+스토리(Story), 두 단어를 엮어서 만든 이름인데요. '미디토리'는 부산 지역 이야기를 다양한 미디어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사업을 하거든요. 영화∙라디오∙책, 지금은 SNS까지 미디어는 다양한데, 저희는 그보다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에 더욱 주목해요. 그런 일을 수익사업과 공익사업, 두 방향으로 균형감 있게 진행합니다."

- 그렇군요! 미디토리가 하는 일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돈 버는 일을 먼저 말하면 (웃음),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영상 프로덕션에서 하는 일들, 말하자면 홍보영상∙행사 기록∙모션그래픽을 제작하고, 리플렛∙사례집∙뉴스레터 같은 인쇄디자인도 하고요. 공익적인 일은 '커뮤니티 미디어'라고 해서 미디어교육이나 퍼블릭액세스 제작지원, 부산MBC <라디오시민세상>과 같은 시민참여 방송을 제작지원하고, 비영리 미디어 콘퍼런스를 매년 개최하기도 하고요."
     
 
미디토리협동조합
▲ 미디토리 미디토리협동조합
ⓒ 미디토리협동조합

관련사진보기

  
- '퍼블릭액세스'라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알고 보니 미디토리는 부산의 퍼블릭액세스 팀으로부터 시작되었더군요? 
"맞아요. 미디토리는 부산에서 '퍼블릭액세스' 제작을 도왔던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된 조직이에요. '퍼블릭액세스'는 쉽게 말하면, 공중파 방송 채널에 광고주나 자본이 개입하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만드는 방송을 내보낼 수 있게 하자는 흐름이고, 국내에서는 2000년 초 관련 법이 통과되면서 시민방송 송신권이 생겼어요. 하지만 TV에 방송을 내보내려면 영상 기술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퍼블릭액세스' 제작지원 팀을 만들었고, 이 활동을 안정적인 사업으로 할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든 것이 바로 미디토리협동조합입니다."

- 조직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잖아요.  특별히 '협동조합'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각자 독보적인 개성이 있는 만큼 1인 1표제로 의사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을 텐데요. 
"협동조합을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고, 이미 미디토리 운영방식이 협동조합 그 자체였어요. 저는 대학교 행정직, 중소기업을 거쳐서 미디토리에서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대학교도 대기업처럼 뭐 업무 하나 하려면 결재라인이 쫙 있고, 중소기업은 대표가 마음대로 운영하고, 그런 회사에서만 일하다가 미디토리를 왔더니 정말 다른 조직인 거예요(웃음). 지금 시민사회에서 어떤 이슈가 중요하냐 이런 거 얘기하고. 각자 공부해온 것 펼쳐놓고 이게 맞네, 저게 맞네 막 토론하고. 아니, 회사에서 맨날 이렇게 이야기만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업무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협동조합 7대 원칙 가운데 민주적인 관리, 경제적 참여, 자율과 독립 이런 말이 있어요. 누가 얼마나 올바른 생각을 설득력 있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의사결정이 되고, 또 지역하고 같이 발전과 연대를 지향하고 하는 것. 그리고 주식회사가 아니니까 누가 투자금 갖고 있다면서 사업 방향에 개입하지도 않고. 이런 요소들을 따져보니 미디토리가 협동조합이라는 옷만 안 입었을 뿐, 이미 협동조합이구나라고 깨달아서 자연스럽게 조직체를 결정했죠."
  
-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네요. 만약 미디토리 내부에서 작업의 우선순위, 또는 가치관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의견 조율을 하시나요? 이 작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팀원 간 의견이 불일치한다면요? 
"제가 처음 와서 보니까 막 겁나게 싸우데요. 막 대놓고 싸우고, 어느 조직이든 겪을만한 갈등을 다 겪었는데. 그렇게 싸워가면서 점차 민주적으로 회의하는 방식을 배운 것 같아요. 누가 퍼실리테이터 교육과정을 듣고 오면 의견 수렴하는 방법 적용해보고, 포스트잇 붙여가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팀원마다 두드러지는 역할이 하나씩 있어요. 촬영∙편집∙디자인  기획, 이런 식으로? 그래서 담당자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고민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 사람 의견을 주로 따르되 옆에서 힘을 보태주거나 하면서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고 있죠."
 
미디토리협동조합
▲ 미디토리협동조합 미디토리협동조합
ⓒ 미디토리협동조합

관련사진보기

  
- 서로 다른 능력치를 갖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 혹은 애로사항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동반성장하는 즐거움도 있을 테고, 때론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도 있을 텐데요. 
"우리 대표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분한테만 가면 컴퓨터가 고장이 났었어요.(웃음) 정말 기계하고 상극인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유튜브 기획, 제작, 촬영, 편집을 혼자 다 하고 계시거든요? 저는 이게 딱 미디토리 10년 역사인 것 같아요. 능력치가 다른 만큼 성장 속도도 다르고요. 오랫동안 성장하지 못해서 동료들에게 미안한 시간을 보냈다는 팀원도 있어요. 그때마다 격려해 주거나, 때로는 뼈아프게 충고해 주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콘텐츠를 제작하는 걸 안 하고 말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해요."

- 미디토리 협동조합은 현재 업력 10년 차 회사입니다. 상당수 사회적기업이 정부 지원이 끝나는 시점에 완전한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경우도 많은데요. 미디토리가 지금까지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 혹은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뭐랄까, 그냥 존버하는 거? (웃음) 무조건 버티는 것. 그게 기본이고. 미디토리가 10년간 계약을 깬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영상 업계에서는 계약 사고가 단 한 건도 안 났다는 점이 엄청난 신의 더라고요. 사실 사업 5년 차쯤 모든 작업이 종료되어서 앞으로 어떻게 영업을 해야 할지 컨설팅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멘토 분이 오셨는데 (쭉 보시고는) 대책이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웃음).
  
미디토리는 100만 원짜리 영상이든 500만 원짜리든 1000만 원짜리든 모든 작업을 최선의 노력으로 만들어요. 클라이언트가 왜 이 영상이 필요했는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서 진심으로 담아내죠. 가끔은 제가 돈 안 남는 건 하지 말라 해도 팀원들이 되게 용쓰면서 (제작을) 해요. 이게 큰 확장은 아니지만 한 번 작업했던 곳은 계속 일을 맡기시고 또 소개해 주시고. 그래서 어느 순간, 좋은 포트폴리오가 결국 우리의 영업방식이라는 걸 스스로 깨쳤어요. 그래서 미디토리 홈페이지도 포트폴리오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고요."
 
미디토리협동조합
▲ 미디토리협동조합 미디토리협동조합
ⓒ 미디토리협동조합

관련사진보기

  
-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 굉장히 창의적인 일이잖아요. 작업을 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 쉬운데, 미디토리에는 'Creative Time'이라는 복지제도가 있더라고요? 어떤 내용인가요? 
"'Creative Time'은 일주일에 4시간을 본인이 원하는 시간으로 쓸 수 있는 복지예요. 나에게 힘이 되는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고,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연간 정해진 한도 안에서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있고요.  4~5년 전쯤 미디토리 직원들에게 어떤 복지가 필요할지 함께 알아봤어요. 구글부터 시작해서 여행박사, 제니퍼소프트, 하여튼 좋은 회사라고 소개된 곳들 복지정책은 다 조사를 해왔거든요. 대신 우리는 돈이 없으니까 돈 안 들어가는 것만 다 골라보자, (웃음) 그때 만들어졌어요. 

창의적인 생산활동을 계속하다 보면 매너리즘에도 빠지고 콘텐츠 패턴도 비슷해져요. 그래서 한 번씩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가는 팀원도 있고, 미술관에 가서 전시회를 보거나 BIFF(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면 하루 종일 계속 영화만 본다고 하는 팀원도 있고요. 장비를 너무 오래 들어서 몸이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으러 가기도 해요."

-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는 말도 있죠. 특히, 영상을 업으로 한다면 일감도 많고 자원도 모여있는 서울을 꿈꾸기 마련인데요. 부산에서 사업을 지속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린 부산 사람이니까… 다 부산에 나고 자란 사람들이니 우리가 (부산 이야기를) 만들어야 되지 않나면서 의식적으로 부산에 있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미디어 분야를 직업으로 삼겠다면 당연히 서울로 가서 방송국 PD가 되거나 제작사에 취직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부산에 재미난 활동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이런 걸 서울에서 담아주지도 않을 거고, 한다고 해도 왜곡된 시각이 많을 거고요. 역사에도 보면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는 다 있는데, 박아무개 이아무개 이렇게 주목받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는 다 흘려보내잖아요. 부산도 마찬가지로 센텀시티 발전하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담지만, 기찻길 옆 작은 마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요. 아무도 주목하진 않지만 지금도 생존하는 그런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싶었어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 과정을 다룬
▲ 르포<종이배를 접는 시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 과정을 다룬
ⓒ 미디토리협동조합

관련사진보기

  
- 지금까지 미디토리 작업한 결과물이 촘촘히 쌓여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한 가지 꼽는다면요?  
"기억나는 한 가지를 꼽는다기보다는… 하나의 이슈를 아카이빙 하면서 같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걸 지켜보는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서 콘텐츠 제작지원을 5년째 하고 있는데요. 아미동은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밀려나면서 공동묘지 터에 자리 잡은 동네예요. 무덤 사이사이에 집을 지어서 비석 자체가 집 기둥이고, 무덤 앞 받침대가 집 마당에 있고 그러거든요. 지금도 저소득층 아이들이 그곳에 살고 있어요.

작업하면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자기 마을에 애정을 갖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다양한 미디어로 고민해본답니다. 물론 이를 통해 마을 공동체가 하나 되는 시간도 갖고 있고요.  또,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 르포 <종이배를 접는 시간>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 과정을 책과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것인데요. 긴 시간 동안의 작업만큼 남다른 의미를 갖는 작품들입니다.

팟캐스트 <베트남 목소리> 제작지원도 3년 넘게 했어요. 베트남 이주여성들이 베트남어로 수다 떠는 라디오방송인데, 이분들이 한국에 와서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이 모국어를 못 쓴다는 거였어요.  일단 한국어가 서툴고, 베트남어에 성조가 있으니까 베트남어로 얘기하면 시끄럽다고 시어머니가 때리기까지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컷 떠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죠. 그러다 보니 조회 수도 베트남 쪽에서 더 크게 나왔어요."  

- 지금 당장 미디토리협동조합에게 3천만 원이 생긴다면?
"우선은 운영자금으로 쓸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행사가 많이 취소되고 있어요. 그래서 당장의 자금 유동성이 떨어진 상황이거든요. 그리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한 장비를 구매할 거예요. 독립영화(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예전보다 점점 좋은 장비와 화질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제작에 들어간 부산여성운동의 이야기를 담는 <마녀들의 카니발(가제)> 촬영은 물론이고, 시민미디어 제작에도 좋은 카메라로 부산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좋겠죠. 마지막으로 우리 구성원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행복한 제작자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만나고 싶네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미디토리가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다큐멘터리 <마녀들의 카니발>을 제작 중이에요. 20~30년 넘게 부산에서 여성운동을 해오셨던 분들 이야기를 주목하고 있는데요. 예전 여성운동들이 젊은 세대와 만나고 연관되고 이어지는 흐름이 정말 놀라워요. 또 일제시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한 발언을 찾다 보면 지금보다 더 쎈 (?) 것들이 있어요. 우와, 100년 전에 이런 걸 하셨다고? 깜짝깜짝 놀라는데,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잘 다듬어서 세상에 보이고 싶습니다.

특히 지역에서도 여성운동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 우리의 실력이 쑥쑥 길러지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가현씨는 '임팩트 투자'로 사회혁신기업을 지원하는 P2P 플랫폼 비플러스 소속입니다. 본 인터뷰 콘텐츠는 현재 비플러스 공식 네이버 포스트(http://naver.me/FuiBjUjU)에 발행되었으며, 이후 다른 외부채널들에도 공개됩니다.


태그:#부산, #협동조합, #로컬, #미디토리, #미디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