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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에 반대해 무기한 파업 중인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단체행동에 나섰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7일 희망자에 한해 사직서를 내는 '제5차 젊은의사 단체행동'을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응급진료센터 모습.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에 반대해 무기한 파업 중인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단체행동에 나섰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7일 희망자에 한해 사직서를 내는 "제5차 젊은의사 단체행동"을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응급진료센터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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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중환자실 전공의들도 파업에 동참한다고 한다.

문득 해와 구름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릴 때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해와 구름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먼저 벗기나 내기를 했다. 구름은 강한 바람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날려버리려 했으나 강한 바람을 만들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 꽁꽁 여몄다. 반면에 해가 강한 빛을 내리쬐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그네가 더운 날씨에 스스로 외투를 벗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전공의들이 파업을 철회하고 진료 현장으로 와서 예전처럼 다시 일하게끔 하는 것이다. 단순히 전공의들을 처벌해야 하는 거라면 그건 아주 쉽다. 잡아서 가두면 되니까. 근데 그럴수록 우리가 원하는 바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의료대란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전공의들을 진료 현장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지만 평안감사 같은 좋은 보직도 아니고 최저시급으로 주당 88시간 일해야 하는 자리인데, 그 자리로 전공의들을 복귀시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전공의들을 강제로 일하게 만들 방법이 있긴 있을까?

지금 상황을 보면 모두 구름과 같은 작전만 펼치고 있는 것 같다. 전공의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협박해봤자, 그렇게 강한 바람으로 외투를 날리려고 해봤자, 절대 그 외투를 벗길 수 없다. 계속 강한 바람만 불어댔다가는 외투를 벗기기는커녕 강한 바람이 닿을 수조차 없는 동굴로 숨어버릴지 모른다.

환자나 의료진이 아닌, 병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은 전공의 파업을 보고 괘씸한 마음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라면 전공의들 보고 남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하냐고 욕할 자격이 없다. 그들도 자기 생명이 걸린 일이 아니면서 환자들이 어떤 피해를 보든 말든 속 시원한 사이다 한방을 위해 계속 정부에게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의료대란 속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당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인생이 달린 일이고 생명이 걸린 일이다. 어쩜 그렇게 쉽게 갈 데까지 가보자, 파업하는 것들한테 치료 안 받아도 된다, 면허 다 정지시켜라, 이런 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중환자실엔 의사가 필요하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의사단체 집단행동에 대한 대응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의사단체 집단행동에 대한 대응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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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만 봐도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고 시민단체들이 연달아 비난 성명을 내서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가? 의대생이나 전공의 가운데 겁을 먹고 '저희는 처벌이 두려우니까 빠질게요'라고 한 사람이 있었나?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것처럼 외부의 공격에 더 단단히 뭉치고 더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하나도 해결된 것은 없고 파업 참여율만 대폭 올라갔다. 오늘부터는 중환자실 전공의들도 파업에 돌입한다고 한다. 그리고 파업을 안 하던 전임의들과 일부 교수들까지 가세했다.

처음부터 보건복지부가 접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이유는 전공의들의 단체행동 참여율이나 수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의 90% 이상이 동의해서 단체행동을 하기까지 이르렀다면 그건 이미 그 집단 내부를 설득하는 강한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단순한 밥그릇 논리일까?

인간은 아주 복잡한 존재다.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봐도 돈이 좋긴 좋지만 오로지 100% 돈이 최우선이고 돈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불사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90% 넘는 집단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들도 마찬가지다. 전공의들의 싸움을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만 치부해서는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본인들은 복잡한 존재이면서 왜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은 설탕물에 꼬이는 날파리같이 단순한 동물로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뜯어보면 그들의 이익과도 당연히 관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100%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단순한 이유로 집단의 90% 이상에게 동의를 얻고 행동을 끌어낼 수는 없다.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고민하고 복잡하게 해결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해결하려 하니 문제가 커지는 것이다.

지금에야 다들 파업을 한 전공의들을 비난하지만, 계속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다가 정말로 코로나 대유행과 겹쳐 의료대란이 일어나고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진다면 정부 역시 대체 뭘 한 거냐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또한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갈등을 해소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계속 전공의들을 밥그릇 싸움하는 돈벌레 취급하고, 생명을 볼모로 하냐고 비난해봤자 도돌이표다. 지금 중환자실엔 의사가 필요하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구름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태그:#전공의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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