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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식물을 키우고 있다. 베란다에 들여 놓은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하루하루 쑥쑥 자라더니 키가 두 배 이상 커졌고, 세 번째 돋아난 잎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게다가 촉수처럼 생긴 희한한 줄기 같은 것이 생겨나더니 꿈틀꿈틀 자란다. 무서우리만치 잘 자라고, 찢어진 잎과 촉수의 모습이 특이하다.
 
새 잎이 점점 자라나는 모습이다. 아주 정교하게 말려 있고, 뾰족한 모양이다.그나저나 잎에 먼지가 더덕더덕이다.
 새 잎이 점점 자라나는 모습이다. 아주 정교하게 말려 있고, 뾰족한 모양이다.그나저나 잎에 먼지가 더덕더덕이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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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물의 정체는 몬스테라(Monstera). 이상하다는 뜻의 라틴어 'monstrum'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키워 보니 과연!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몬스테라는 생장이 빠르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가장 작은 사이즈로 골랐다. 몬스테라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하다. 줄기에 하트 모양 초록 잎이 서너 장 달려 있을 뿐. 이름의 포스가 느껴질 만한 요소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너의 매력, 죽죽 찢어진 잎

어린 몬스테라는 별다른 투정 없이 씩씩하게 자랐다. 새로운 환경에서 물을 빨아 먹고 빛을 받으면서 조금씩 주변 환경을 살핀다. 살만한 곳인가 어떤가. 새로운 잎도 슬그머니 내밀어 본다. 잎이 어찌나 돌돌돌 정교하게 말려서 돋아나는지 신비롭다. 줄기 사이에서 아주 뾰족하게 위로 길어지다가 조금씩 잎이 펼쳐진다.

활짝 펼쳐지자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사이즈에 깜짝 놀랐다. 몬스테라는 자라면서 잎이 함께 커지는 것이 아니라 새 잎이 나올 때마다 사이즈를 부쩍 키워서 내보내는 모양이다. 새 잎이 나올 때마다 사이즈 업, 업이다. 잎 색깔은 맑은 연둣빛을 띠다가 금방 짙은 초록빛으로 변화한다.

환경에 대한 정보 수집이 어느 정도 가닥 잡히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기는 햇빛이 풍부하군, 좋았어" 소문으로만 듣던 그 유명한 '찢어진 잎'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도 호기심이 발동해서 새 잎이 나올 때마다 궁금했다. 구멍 없는 온전한 잎이 몇 장 나오다가 드디어 찢어진 잎이 모습을 드러낸다. 잎맥 사이에 구멍 하나가 뻥 뚫려 있다.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죽죽 찢어진 잎이 등장한다.
 
구멍 뚫린 잎이 조금씩 펴지고 있다. 돌돌 말려 있을 때 억지로 펴지 않아야 한다.
 구멍 뚫린 잎이 조금씩 펴지고 있다. 돌돌 말려 있을 때 억지로 펴지 않아야 한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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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잎은 몬스테라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열대 우림 지역이 원산지인 몬스테라는 덩굴성 관엽 식물로 원산지에서는 줄기가 20미터, 잎은 1미터 가까이 자란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크기다.

하지만 열대우림 지역은 몬스테라보다 한덩치 하는 식물이 많아 틈 사이에 끼어 자라면서 햇빛을 골고루 받기 위해 구멍을 내게 된 것이다. 아래쪽에 있는 잎까지 빛을 전달하는 생존 전략이다. 이렇게 찢어진 잎은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찢어진 잎이 나왔다. 크기가 엄청 커졌다. 줄기가 잎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찢어진 모양은 각각 다 다르게 나올 것 같다.
 찢어진 잎이 나왔다. 크기가 엄청 커졌다. 줄기가 잎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찢어진 모양은 각각 다 다르게 나올 것 같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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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의 힘은 무섭다. 빛이 부족하지 않고, 거센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도 몬스테라는 제 잎에 구멍을 뚫어 아랫잎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고집한다. 식물은 살아왔던 곳의 환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생명체다.

몬스테라는 제 고향에서처럼 강인하고 과감하다. 물과 햇빛, 바람이 부족하거나 과해도 꿋꿋하게 견디면서 사방팔방으로 줄기를 뻗으며 오로지 성장에 집중한다. 깔끔한 수형이나 잔잔한 성장을 원한다면 몬스테라는 적합하지 않다.

몬스테라의 덩굴성 기질도 마찬가지다. 덩굴식물은 어딘가 감고 올라가거나 벽에 붙어 자라기 위해 덩굴손을 뻗는다. 촉수처럼 생긴 것은 줄기 마디에서 뻗어 나온 공중뿌리다. 공중뿌리는 제멋대로 돋아나고 빨리 자란다.

위로 솟아서 자라기도 하고, 아래쪽으로 향하다가 흙에 파묻혀 자리를 잡기도 하고, 옆에 있는 화분 쪽으로 더듬거리듯 옮겨가기도 한다. 잘라낼까 싶어 만져봤더니 웬걸 가죽처럼 질기다. 나의 고향은 열대 우림이다!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옆으로 길게 뻗은 것이 공중 뿌리다. 새로 올라오는 걸 보면 벌레처럼 징그럽다.
 옆으로 길게 뻗은 것이 공중 뿌리다. 새로 올라오는 걸 보면 벌레처럼 징그럽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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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생초보도 쉽게 기를 수 있는 생명력에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몬스테라. 요 몇 년간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 핫한 식물. 쉽게 구할 수 없는 다양한 종을 섭렵하는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식물.

심플한 북유럽 인테리어가 유행하던 3, 4년 전 밋밋한 벽면을 장식하던 보태니컬 액자의 선두 주자. 이국적인 이미지에 매력적이라고 소문난 몬스테라. 그러나 나는 몬스테라의 흑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보태니컬 액자의 선두 주자지만

나는 오랫동안 꽃 잡지 만드는 일을 했다. 주로 꽃집에서 유통되는 생화를 중심으로 다루다 보니 식물이 조금 뒷전이긴 했지만 철따라 유행하는 식물쯤은 눈에 익었다. 몬스테라는 개업식 단골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버티는 데다 몸집이 커서 자리를 채우기에 좋았고 가격이 저렴했다.

고급스러운 화기는 꿈도 못 꾸고 농장에서 출하된 플라스틱 화분째 부글거리는 망사나 반짝이 포장지로 둘러 처졌다. 그러다가 촌스럽다는 이유로 서서히 인기가 떨어져 개업식에서도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화원에서는 처치 곤란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큰 잎이 축축 늘어진 채 구석으로 내몰렸다.

못난이로 기억에서 사라진 몬스테라가 북유럽 인테리어 열풍을 타고 귀환한 것이다. 신분 세탁이라도 한 것 마냥 세련된 이미지로 탈바꿈한 채. 세상 참, 사람이든 식물이든 앞일은 모르는 거다. 사람들이 처음 보는 새로운 식물을 만난 것처럼 열광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했는데 그래도 얼마나 좋은가. 개업식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소중한 반려식물로 자리 잡았으니.

일을 할 때는 일에 치여 식물을 여유롭게 기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그 일을 그만 둔 뒤에야 하나 둘,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저 막연하게 접하던 식물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기분이 묘하다.

과거에 활약했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하고 몬스테라처럼 기가 막히는 생의 역전을 목격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예전에 자세히 들여다 봐 주지 않은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몬스테라는 아직 지켜볼 게 많다. 겨울나기는 괜찮은지, 꽃이 어떻게 피는지 살펴봐야 하고. 으윽, 무엇보다 분갈이가 시급하다. 코로나블루를 겪고 있다면 몬스터의 괴력과 독특함을 닮은 몬스테라를 키워 보자. 에너지 뿜뿜을 느낄 수 있다. 단, 처음부터 아주 넉넉한 화분에 심을 것.
 
잎이 조금씩 펴지고 있다. 돌돌 말려 있을 때 억지로 펴지 않아야 한다.
 잎이 조금씩 펴지고 있다. 돌돌 말려 있을 때 억지로 펴지 않아야 한다.
ⓒ 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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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몬스테라, #찢어진 잎, #식물 이야기, #반려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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