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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김복동, 길원옥, 이막달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천여자고등학교,민주당 김상희의원등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 1076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지난 18일 일본을 항의방문했다.
 2013년 주한일본대사관 앞 1076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여한 이막달 할머니.대열을 맨 앞에 왼쪽부터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에 이어 이 할머니가 함께하고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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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1명인 이막달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는 16명만 남았다.

30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따르면 부산에 있는 이 할머니는 29일 밤 세상을 떠났다.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빈소 등은 공개하지 않는다.

이 할머니는 2005년 정부에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했다. 그는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겪은 피해에 대한 해외 증언과 인권캠프 참가 등 일본의 사죄배상을 촉구하는 활동에 함께했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도 계속해서 참여했다.

1923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7세였던 1940년 일본인에 의해 대만 기륭으로 끌려갔다. 이곳의 잇나나록쿠 칸부대라는 군부대의 위안소에서 성노예 인권유린을 당했다.

그러다 이 할머니가 일제의 패망을 듣게 된 것은 5년 뒤. 전쟁이 끝나서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위안소를 관리하는 관리인은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만 알려주고 그냥 사라졌다. 결국, 이 할머니는 수소문 끝에 홀로 항구로 이동해 군인 병원선을 타고 부산으로 귀국했다.

정의연은 "허리를 다쳐 요양원에 계셨지만, 식사도 잘하시고 건강을 회복하는 중이었는데 어젯밤 주무시듯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라며 "고통과 아픔 모두 잊으시고 평안하시길 바란다. 명복을 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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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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