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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출신의 여성 영화감독인 프랑케는 1991년, 통일 후 달라진 동독 여성의 사회적 상황을 다룬 단편영화(제목: <사이 시간들>)를 제작했다. 영화의 첫 번째 이야기는 동독 드레스덴의 한 건물 앞에서 열렸던 동독 여성들의 시위 장면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동독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1990년 초, 지역 단위의 논의를 위해 구성된 원탁회의에 여성의 참여를 요구하는 시위였다. 계속된 요구에도 반응이 없자 시위대는 건물로 진입했고, 회의장 문 앞에서 한참 동안 구호를 외친 끝에서야 여성 대표가 원탁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통일 후 변화된 동독 여성들의 사회적 상황을 다룬 영화(사이 시간들)의 한 장면 통일 후 변화된 동독 여성들의 사회적 상황을 다룬 영화(사이 시간들)의 한 장면
▲ 통일 후 변화된 동독 여성들의 사회적 상황을 다룬 영화(사이 시간들)의 한 장면 통일 후 변화된 동독 여성들의 사회적 상황을 다룬 영화(사이 시간들)의 한 장면
ⓒ 영화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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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또 다른 이야기는 다니던 가구제조 콤비나트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마지막 출근을 한 동독 여성들의 이야기. 마지막 근무를 하며 그들은 '새로운 기회를 위해 서독의 자본과 기업이 신속히 와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지만, 이전에 경험해 보지 않은 실업이 가져온 불안은 숨길 수 없었다. 영화는 여성해방이라는 단어 자체가 필요 없을 만큼 자주적 삶의 환경에서 살았던 동독 여성에게 통일이 가져온 변화를 담담히 보여준다. 통일 이후 동독 여성들이 직면했던 역설적 상황을.

너무도 당연했던, 일·가정의 자연스러운 양립

당시 모든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출산 후에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동독 남성들도 여성이 직업 생활을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남성 가운데 그에 동의하지 않는 폭군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았고 대부분의 아빠는 오후에 육아 시설에서 아이들을 찾아왔고 일상적으로 유모차를 끌고 다녔다.

통일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한 동독 여성 잉그리드(가명)는 여성의 직장생활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됐던 동독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실제로 25~59세 여성의 90% 이상이 직업을 갖고 있었던 동독에서 육아와 직장생활의 병행은 여성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통일 당시 16세 이상 동독 여성의 96%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고 응답해, 서독의 21%와 월등한 차이를 보였다.
 
 동독의 여성의 날 포스터: 동독 시절 여성의 90%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동독의 여성의 날 포스터: 동독 시절 여성의 90%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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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시설이 상대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서독의 상황과 달리, 동독은 체제 형성 초기부터 위로부터 추진된 보육 정책을 통해 풍부한 육아 시설을 운영했다. 90% 이상의 동독 여성이 6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를 위한 보육 기회가 제공됐다고 평가해, 30% 정도의 수준을 보였던 서독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밤 10시까지 육아시설이 운영됐고, 육아에 지친 부모의 주말 여가를 보장해 주기 위해 주말 동안 아이를 돌봐주기도 하는 등 적어도 보육의 관점에서만 보면 동독에는 그야말로 일과 가정의 양립에 필요한 만반의 체제가 갖춰져 있었다. 이러한 여건은 실제로 동독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50년대 동독에서는 트랙터를 운전하는 여성의 모습이 사회적으로 선망하는 여성상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그러한 정책이 취해졌다. 결과적으로 여성이 결혼이나 가정을 넘어, 일을 통해 사회에 통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누구도 일이나 가정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지 않았고, 구조적으로 한 가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90% 이상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물론 한계도 있었다. 여성의 직장 생활이 보편화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원만한 직장 생활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의 가사 분담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69% 여성이 동독 시절 가정 내에서 가사 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동독 남성의 주중 하루 평균 가사 분담 시간은 1시간 이하로 나타나, 서독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는 남성이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상황에서 여성에게 더 큰 가사 부담이 지워진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만성적 물자 부족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가정을 주도적으로 책임졌던 여성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동독 여성들은 동독 시절, 가사와 일의 이중고에 시달렸다.

직업 선택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동독에서는 남녀가 모든 산업 분야에서 구분 없이 근무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남성은 산업과수공업, 건설, 교통 등에서 대우가 좋은 분야에서 근무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여성은 급여가 낮은 편에 속하는 돌봄, 교육, 판매, 건강, 서비스 등의 분야에 근무하는 비율이 높았다.

또한 동독 여성의 96%가 남성과 동등한 비율로 전일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고 응답한 것과 달리(서독은 73%), 통일 직전인 1989년, 27%의 동독 여성이 주당 25~35시간의 비(非)전일제 근무를 했던 것으로 나타나 실제와는 차이가 있었다. 공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낮지 않은 비율로 여성의 비전일제 근무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위직 진출 현황에서도 동독 여성의 74%가 고위직 진출 기회에서 차별이 없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제 진출 비율은 매우 낮아 여성 고위직의 비율은 10% 이하였고, 최고위직은 5% 아래로 나타나 전반적으로 여성의 고위직 비율은 매우 낮았다. 물론 서독 여성의 경우보다는 높았지만. 그런데도 불구, 동독 여성을 비롯한 동독 주민 사이에서는 동독 사회에 여성을 위한 일·가정의 양립 체제가 매우 잘 구축돼 있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동독 여성이 자녀의 학교 입학 전, 직업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비율이 76%로 나타나 서독 여성보다 빠르게 노동 시장에 재진입했다. 서독 여성은 자녀가 학교에 입학한 후에 동독과 같은 비율로 노동 시장에 재진입했다. 이는 동독에서 높은 이혼율이 나타났던 원인이 되기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직업 생활을 통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은 자주적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동독 여성은 일과 가정,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비록 힘겹기는 했지만 말이다.

"단번에 집으로... 더 쓸모없는 사람처럼 됐다"
 
"1990년 8월 이후엔 단기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심리적으로 거의 직장에서 쫓겨난 것과 다름없는 기분이었다. 그냥 단번에 집으로 보내졌고 더 쓸모없는 사람처럼 됐다. 다니던 직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충격에서 힘들게 벗어난 후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필요하면 동독이든 서독이든 어디든 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 통일 당시 30대 중반 여성의 말

통일 후 여성들이 직면해야 했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 실업이었다. 갑작스럽게 실업에 몰리면서 여성들은 심각한 삶의 위기를 경험했다. 1990년대 초반, 여성 실업률이 14~15%로 나타나, 남성의 8~9%보다 훨씬 높았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좋은 경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먼저 감원 대상이 되었다. '남편이 직업이 있으니 집에 있어도 되지 않냐'는 논리로 여성은 쉽게 실업에 내몰렸다.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할 기회는 매우 적었다.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동독 여성들이 전일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결과적으로 많은 여성이 자신의 경력에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독 여성들은 쉽게 직장이 아닌 가정주부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동독 시절 잘 갖춰진 육아 시설에도 불구하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적지 않은 부담에 시달렸던 여성들 사이에서, 통일 직후 한때 실업이 과도한 일의 부담에서 해방될 기회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부 나타나기도 했다. 문제는 '휴식기'를 거친 후 노동시장 재진입이 매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을 쉼의 기회로 이해하는 경향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여성의 대규모 실업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이 시행됐지만 문제 해결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각종 노동시장 정책뿐 아니라 직업교육 참여를 위한 기회도 여전히 남성 위주로 운영되는 차별적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계속 열악한 상황에 내몰렸고, 1992년까지 여성 실업률은 남성 실업률의 두 배가 넘는 20% 이상을 기록해 한때 서독 여성의 직업 생활 비율과 유사한 수준이 발생했다. 25~50세 여성의 91%가 직업 생활을 영위했던 동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실업으로 인한 삶의 위기는 심리적 좌절, 자존감 상실뿐 아니라 건강까지 위협했다. 통일과 함께 이전에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삶의 기반을 상실하면서 자기 존재감과 사회적 인정마저 잃어버린 동독 여성에게 통일의 최대 피해자라는 표현보다 더 와 닿는 것은 없었다.

통일 뒤 오히려 퇴보한 남녀평등... 국가 내 보육 인프라의 후퇴 

통일이 동독 여성 개인의 삶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통일 후 동독 여성의 일·가정의 양립을 가능하게 했던 보육 체제가 많이 축소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989년 80% 수준을 보였던 육아 시설(어린이집, 유치원 등)은 1991년 54% 수준으로 내려갔고 2007년에는 41% 수준으로 더 악화했다. 2015년에는 52%로 올라가 상황이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히 과거 동독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77%가량의 여성이 육아 관련해 가족, 친척, 이웃, 친구의 도움을 받는 서독 지역보다는 동독 지역의 보육 인프라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그렇지만 과거 동독과 비교하면 여전히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과거 동독의 영향으로 3~6세 아동의 전일제 돌봄 비율이 72.6%로, 서독의 34.1%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육아 시설의 축소가 동독 여성의 직업 생활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여성의 안정적 사회생활을 위한 기반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이는 통일 후 동독 지역 여성의 삶의 여건이 퇴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통일 전 동독의 어린이 보육 장면.  통일 전 동독의 어린이 보육 장면. 여성의 일과 가정의 병행을 가능하게 했던 동독의 풍부한 보육인프라는 통일 이후 크게 축소되었다.
▲ 통일 전 동독의 어린이 보육 장면.  통일 전 동독의 어린이 보육 장면. 여성의 일과 가정의 병행을 가능하게 했던 동독의 풍부한 보육인프라는 통일 이후 크게 축소되었다.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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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몇 단계의 퇴보를 의미한다. 즉 여성들이 주방으로 밀려나면서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아이가 다닐 수 있는 유치원의 자리를 얻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어야 할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동독에서 이뤘던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고스럽게 지켜왔던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자주적 삶... 여성들은 분투했다

일과 가정의 조화를 강요당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동독 여성의 삶의 중심에는 직업이 있었고 가정은 두 번째라고 할 만큼 직업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런 만큼 통일 후 직면한 실업 상황에서 많은 동독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고 남성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삶의 영역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

그럼에도 체제변혁 과정이 파생한 구조적 문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실업 문제를 여성 개인이 혼자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많은 동독 여성이 사회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갈등을 겪었다.

이런 상항에서 주목할 것은 동독 여성들 사이에서 '남자는 직업을 통해 경제를 책임지고 여성은 가정과 자녀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고,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독 여성의 경우, 69%가 '자녀가 있는 여성의 직업 생활을 위해서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동독 여성의 경우 25%만이 이같이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녀가 있는 여성의 직업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비율 역시 서독 여성들보다 동독 여성들 사이에서 높게 나타났다. 직장을 기반으로 한 경제적 독립을 여성의 자주적 삶을 위한 기본적 토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동독 여성들에게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통일 전후 동서독의 3세 이하 육아 보육 시설 현황 통일 전후 동서독의 3세 이하 육아 보육 시설 현황(출처: 독일 통계청 2015)
▲ 통일 전후 동서독의 3세 이하 육아 보육 시설 현황 통일 전후 동서독의 3세 이하 육아 보육 시설 현황(출처: 독일 통계청 2015)
ⓒ 강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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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 가치는 여전히 살아있다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동독의 남녀평등에 대한 가치는 통일 후 지금까지도 계속 남아, 동서독 간에 남녀평등 인식에 대한 차이를 만들고 있다. 남녀의 성 역할에 관한 인식에서, 동독 지역에서는 남녀의 성 역할을 구분하는 전통적 가치에 찬성하는 비율이 32.3%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서독 지역에서는 46.5%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독지역에서 서독지역보다 높은 남녀평등 인식의 수준을 보였다.

동독 지역에서는 55.3%가 양성평등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 반면, 서독지역에서는 43.0%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쪽이 훨씬 수입이 좋아도 양쪽이 같이 경제생활을 하고 동등하게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이 서독보다 동독에서 더 높게 나타나, 전반적으로 서독보다 동독에서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게 나타났다.

더 나아가 과거 동독 사회에서 나타났던 남녀평등 인식은 통일 후 서독 사회의 그것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조사 결과, 61%의 응답자가 '육아와 여성의 직업 생활에 관한 동독의 전통이 통일 후 전체 독일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라고 응답했다. 또한 56%의 서독 주민과 77%의 동독 주민이 가정과 직업에 관한 동독의 가치가 통일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했으며 일상생활, 노동 시장에서 양성평등 인식이 강화되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동독의 전통이 전체 독일에서 여성의 일·가정 양립의 가치가 확산하는 데 있어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통일 전 매우 미비했던 서독 지역의 보육 인프라가 통일 후 동독의 영향으로 상당히 확충됨으로써 동독의 보육체제는 축소됐지만, 독일 전체를 놓고 보면 여성의 일·가정의 양립에 기여할 수 있는 보육 인프라는 확대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비록 동독 여성은 열악한 상황에서 놓였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을 기반으로 한 여성의 자주적 삶을 선호했던 동독의 전통이 통일 이후에도 계속 건재하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통일

통일 후, 실업 상황뿐 아니라 동독 시절 누리던 자주적 삶의 여건이 축소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동독 여성의 사례는 통일이 각 집단에 상이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일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전체 구성원에게 공통적이지만, 집단의 특성에 따라 영향의 정도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경우든 변화 상황에서 사회의 구성원이 새로운 체제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는 각 집단의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독 사회가 지향하던 남녀평등의 가치가 통일 독일 사회에서 계속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고 해도, 동독 여성에게 있어서 통일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증진된 통일 사회에서, 과거에 누렸던 동독 여성의 자주적인 삶을 가능하게 했던 환경을 되레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양 체제의 강점을 주고받으며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통일을 준비하는 것. 이는 새벽 4~5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놓고 출근했다는 개성공단 여성 북한 노동자들의 과거 인터뷰를 떠올리게 하는, 동독 여성들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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