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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세상살이 이야기를 신문기사로 '듣는다'. 코로나 19로 주변인들과 단절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찌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현상같다. 신문에는 올 하반기 화제의 두 영화감독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었다.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기사를 읽으며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의 영화 내용과 개인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감독은 인터뷰 기사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과거엔 충무로 도제 시스템을 통해 감독이 나왔지만, 이제는 대학원이나 영화아카데미를 거쳐 독립영화감독이 되는 길이 보편화 하면서 여성에게도 기회가 많이 열린 것 같아요."

여성 감독들이 충무로에서 더 활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인터뷰였다. 마초 성격이 강한 충무로는 여성이 감독으로서 입지를 다지기에는 한계가 있는 분야 였을 것이다. 윤단비 감독의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고 비단 충무로에서만 여성 예술인들의 입지가 좁은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예술분야든지 기득권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신예 예술인들이 들어갈 입지는 매우 비좁다는 생각이 든다. 문단(文壇)의 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엔 문인이 등단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각 신문사에서 시행하던 신춘문예였고 몇몇 메이저급 출판사를 통한 등단의 길이 있었던 때이다. 그 마저도 등단의 기회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웠던 시기이니 '작가'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고매하여 우러러볼 만한 것이었다.

그런 바늘귀 만큼이나 좁디좁은 등단의 길에 얼마나 많은 초야의 문인들이 좌절과 슬픔을 맛보았겠는가. 나 또한 몇 번의 고배를 마신 후 등단의 길을 포기하였다(물론 내 고배는 실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다 중년의 나이에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작가가 될 수 있는 플랫폼도 다양해졌음을 알았다. 그 점을 적극 활용하여 나 또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며 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저마다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다들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글감을 얻고 글을 써내려 갔다. 그런 부분이 공감을 얻어 천 명이 넘거나 몇 백 명이 넘는 구독자를 지닌 작가님들도 많았다.  

그 작가님들 중엔 <오마이뉴스>에 연재기사를 꾸준히 올리는 분들도 있다. 부러운 마음을 따라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보면 같은 소재라도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걸 느낀다. '필력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이곳저곳 작가들의 매거진을 들락거리며 글을 읽다 보면 예전 어떤 이의 말이 귓가에서 울린다.

"요즘엔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은 시대야"라는 말. 실제로 그런 듯하다. 이 많은 작가님들을 독자는 어찌 알 것이며 또 글은 얼마나 알겠는가. 한번 스윽 들어와 읽어보고 나가는 플랫폼이니. 하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에겐 이 곳이 곧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이제는 스스로 자기가 뭔가를 만들어야 해, 기회가 그냥 오진 않아
▲ 불타는 청춘 갈무리 이제는 스스로 자기가 뭔가를 만들어야 해, 기회가 그냥 오진 않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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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튜브에서 싱글 중년 스타들이 출연하는 예능프로인 <불타는 청춘> 동영상을 봤다. 이 프로에 데뷔곡이 뮤직비디오와 같이 흥행해 유명했던 가수가 출연하였다. 자신의 홀로서기 근황을 이야기하며 소속사에서 나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콘서트를 하기 위해 공연장을 직접 알아봤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가수 양수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이제는 스스로 자기가 뭔가를 만들어야 해. 기회가 그냥 오진 않아"라고. 연륜으로 시류를 읽은 선배 가수의 말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한 현답이었다. 지금은 다양한 플랫폼이나 방송을 통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기회는 오직 준비하는 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가 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 같다. 인생에서 기회란 매 순간 오는 것이 아니기에 기회의 여신의 앞머리가 보일 때 빨리 낚아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지니, 그만큼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의 작가님들은 기회가 왔을 때 '확' 낚아챌 만큼의 준비가 늘 되어 있는 분들이 많다.

내가 구독 중인 한 작가님도 여러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강연도 하러 다니신다(작가님 프로필에 적혀있어요). 이런 분이거늘 나는 얼마 전 작가님이 올린 글에서 동지애를 느꼈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서점 대관료를 작가의 사비로 지불하라 했다는 내용이었다. '아, 이게 바로 무명의 설움인가'라는 작가님의 자조 섞인 문장을 보며 나 또한 생물학적 이름은 있으나 사회적으로는 무명인으로서 비애를 느꼈다.  

작가라는 타이틀은 달아주었으나 아직 누구에게 불러달라 할 수도 없는 무쓸모 직함이다 보니 씁쓸하였다. 이런 찹찹한 마음이라도 달래보고자 <남매의 여름밤>을 보기 위해 예매 버튼을 누르며 상영관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사는 지방 소도시에서는 상영하는 영화관이 한 곳도 없음을 알았다. 수도권 일부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만 상영하고 있었다.

언론 매체에선 그리 수작이라 극찬을 하더니만 정작 관객과 만나 교감해야 할 영화 상영관 수는 이리도 협소하다니. '아, 이것이 바로 독립영화의 설움이란 것인가?'라는 자조섞인 질문을 던지다 깨달았다. 자본주의는 기회의 여신보다 더 '날쌘돌이' 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태그:#여성감독, #독립영화, #무명작가, #기회의 여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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