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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반 세대의 시간이 지난 2005년, 가을학기가 시작된 베를린의 한 대학 강의실. 30여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빙 둘러앉아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목명은 '동독에서의 성장(Aufwachsen in der DDR).' 말 그대로 통일 전 동독청소년의 성장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수업이었다.

첫 시간, 모든 참석자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에 참여한 동기에 대해 얘기했다. 과목의 내용상 자연스레 각자의 출신지역을 공개했는데, 서독출신 학생이 종종 있었지만 동독출신 학생들이 훨씬 많았다. 강의를 수강하는 동독 출신 학생의 다수가 동독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참여했다고 했다. 독일 대학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마흔 전후로 보이는 몇몇 '중년 학생'을 제외하면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은 대개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동독의 휴양 시설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는 동독 청소년 통일 전 동독의 휴양시설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는 동독 청소년
▲ 동독의 휴양 시설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는 동독 청소년 통일 전 동독의 휴양시설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는 동독 청소년
ⓒ TV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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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강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계속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이, 어찌 보면 이미 오래전 역사에서 사라진 동독이라는 국가와 심정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통일된 독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임에도 그들에게는 동독이라는 나라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대상으로 느껴졌다. 왜 그들은 동독에 대한 경험을 나누기를 희망했을까? 그들 세대에게 동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동독의 마지막 청소년 세대, 명과 암 
 
동독을 알기 위해, 동독에 대한 경험을 나누기 위해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대체로 통일 시기였던 1989~1990년, 10~15세 정도에 해당하는 청소년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에 대해 직접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동독에서 보냈고, 그것보다 더 긴 시간을 통일 된 사회에서 보냈던 세대였다. 서독에 있는 친지와의 왕래나 서독에서 건너온 물건 등을 통해 서독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동독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때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한 끝에 새로운 시간을 맞이했던 앞세대와 달리, 어느 날 갑자기 변화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찬가지로 통일 후 변화된 사회에서 생활했지만 새로운 상황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하기보다 많은 부분에서 어른들의 생각과 판단에 의존했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장벽 붕괴 당시, 나는 15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14살이었고 내가 그렇게 어른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동독이라는 사회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고 동독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은 아니었다. 동독은 그냥 나의 집 같은 곳이었다." (통일 당시 14세 동독청소년) 

동독에 대한 긴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앞세대의 경우, 통일 후 새로운 상황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만큼 많은 부분에서 적응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극복'해야 하는 과거의 것들이 많았다. 반면, 어린 시절을 동독에서 보냈던 청소년 세대들에게 통일과 그것을 통해 맞이한 새로운 세상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른들 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이런 측면에서 앞선 세대와 달리 청소년 세대들은 큰 정서적 저항 없이 바뀐 상황에서 원만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세대의 동독 정체성, 동독과의 심리적 결속 
 
실제로 이들은 통일의 혜택을 받은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눈을 뜰 즈음부터 자유가 당연시되고 물질적 풍요가 익숙한 것으로 느껴지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생활했다. 또한 진로, 학업 등에서 직접 선택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던 동독과 달리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했다. 실제로 통일 후 많은 학생이 상급 학교 진학을 비롯해 통일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자신이 희망하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일부는 동독을 떠나 서독에서 학교에 다니며 새로운 생활을 꿈꾸기도 했다.

이렇게 이들은 통일된 독일에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을 생각하는 일반적인 독일인으로 성장해 갔다. 말하는 방식, 태도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동독 소년단 활동과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회 경험, 기본적인 생활 조건 등의 측면에서는 서독 청소년과 더는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통일된 초기,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기를 희망했고 더 이상 어른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그렇게 통일 초기에 학교에 다른 친구들과 많은 것을 토론했고 결정 과정에 참여했다." (통일 당시 14세 동독 청소년)
 
놀라운 것은 통일된 사회에서 자유와 풍요를 누리며, 앞세대의 청소년기 때와는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는 이들이, 정작 제대로 경험하지 않았던 동독과 심리적으로 깊이 결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청소년 세대에게 동독은 그들의 부모, 조부모의 이야기에나 존재하는 먼 옛날이 아니라 자신과 깊이 연관된 정체성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였다. 동독에 대해 친숙함을 느끼기 어려운 청소년 세대가 이러한 동독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동독의 기성세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들은 동독 물건이나 동독 자체가 좋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이 없는 세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독의 10년제 종합기술고등학교의 수업 시작 장면 동독의 10년제 종합기술고등학교의 수업 시작 장면
▲ 동독의 10년제 종합기술고등학교의 수업 시작 장면 동독의 10년제 종합기술고등학교의 수업 시작 장면
ⓒ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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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세대의 영향
 
동독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청소년 세대가 동독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에는 1차적으로 앞세대가 통일 후 직면했던 상황의 영향이 컸다. 청소년 시절 부모, 조부모 등 주변의 가족, 친지, 지인을 통해 동독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청소년 세대는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통일 후 실업의 충격으로 불안에 시달리며 사회적으로 추락하는 것을 같이 경험했다.

어렸을 적에 지켜봤던,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수십 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실직당한 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모습은, 이들이 성장해 성인이 된 후까지도 그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쓰라린 통일의 상처였다. 즉, 통일 후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힘들어하던 가족과 주변의 어른들을 지켜봤던 경험은, 동독 청소년 세대가 과거 이들의 삶을 지켜주었던 주었던 동독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다른 한편, 가족 구성원의 일부가 실업 상황에 놓이면서 연금 생활을 하는 다른 가족이 그에게 도움을 주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는 가족관계가 더 가까워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독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았던 청소년들이 통일 후 상황에서, 동독 시절에 중요하게 여겨졌던 평등, 연대와 같은 집단주의 가치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청소년 세대가 부모보다 더 동독 사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했고, 청소년 세대 사이에 동독정체성이 생기게 하는 데 일조했다.
 
일상의 경험... '동독의 역사=패배자의 역사'? 
 
젊은 세대들이 동독 정체성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통일 뒤 그들이 직접 겪었던 경험과 관련이 있다. 동독 청소년 세대들은 통일 후 변화된 세상에서, 서독식이 '독일식'을 대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독일 역사는 서독의 역사였고 동독의 역사는 그야말로 독일의 역사가 아닌 패배자의 역사로 치부됐다.

한마디로 말해 사회 전체에서 서독식 가치가 일반적인 것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이든 서독식이 사회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들에게 익숙했던 동독식은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상황에서 그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서독의 것이 독일적인 것이었고, 동독의 것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학교에서 배우는 독일 역사는 서독의 역사였다. 동독 역사는 그저 동독의 역사로 치부되었고, 동독 역사는 독일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럼 동독은 무엇인가.

청소년 세대들이 성장해, 동독뿐 아니라 서독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가지게 된 경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동독을 떠나 서독에서 생활했던 일부 동독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생활 세계를 이루고 있던 동독이 서독에서는 차별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동독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수군거리는 것을 접하고, 동독을 깎아내리는 농담, 무시, 비유가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상황에서 그들은 적지 않은 분노를 느꼈다.
 
"주변의 같은 또래 친구가 교사에게서 들었다는, 동독에는 동네에 빵을 살 수 있는 상점이 하나밖에 없었고, 마치 짐승과 같이 살았다는 얘기를 부모님께 했을 때 부모님은 완전히 경악했다."

"동독 출신이라고 하면 거기 아직도 동독식 아파트(Plattebau)가 있냐, 나치가 있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마치 운동경기의 2부 리그에 있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서독지역에서 생활했던 동독 청년)

 
동독의 청소년 세대들이 일상에서 겪었던 이러한 동독에 대한 무시, 출신에 따른 평가절하의 경험은 이들이 동독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연대 감정을 느끼게 했고 이는 기성세대만큼이나 강한 집단의식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서독의 같은 또래들은 서독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데 반해 동독의 청소년 세대들은 동독과 연관된 하나의 집단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기댈 곳이 없었던 그들만의 어려움
 
통일의 혜택을 누린 것은 맞지만 동독의 청소년 세대는 통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겪었던 그들만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통일이 동독 청소년에게 가져온 영향을 다룬 동독 예나대학의 역사학자 뷰겔은 통일 당시 12~14세의 동독 청소년들이 통일 과정에서 큰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평가했다. 뷰겔은 이들 세대를 통일 당시 자신의 삶에서 준거 집단으로 삼을 수 있는 모델 인물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설명했다.

안정감을 가지고 생활하며 삶을 계획하는데 참조할 수 있는 모델로 생각했던 교사, 부모 등과 같이 주변의 인물들이 대부분 통일 후 혼란과 갈등을 겪는 것을 목도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가치체계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또한 뷰겔은 많은 청소년이 통일 후 급격한 변화 상황에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부모를 위로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청소년 시기에 자연스럽게 발산해야 할 공격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생활해야 했다고 분석했다. 동독의 마지막 청소년 세대들이 청소년기를 '청소년답게' 보내지 못한 결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심리적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어린 아이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성숙한 나이도 아니었던 그들은 더 큰 어려움에 빠진 어른 세대 사이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긴 시간을 마음에 묻고 살았던 것이다.
 
당당한 자신을 위한 분투, '제3세대 네트워크' 결성
 
동독의 청소년 세대가 기성세대와 통일 이후 태어난 새로운 세대의 중간에 있는 '낀 세대'로서 통일 과정에서 그들만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이 외부 상황에 수동적으로만 대응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1975~1985년 사이에 태어난 동독 청소년을 중심으로 '제3세대 네트워크'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을 동독에서 보냈고, 통일 후 격동의 상황을 경험했던 세대로서 동독에 대한 외부의 평가절하를 거부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을 천명했다.
 
서독 언론은 동독의 젊은 세대들을 동독의 버스 정거장에 길을 잃고 서 있는 극우 극단주의 세력으로 설명한다. 이들은 이에 대해 반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 그것을 바꾸고, 변화시키려고 한다.
  
1975~1985년 사이 동독에서 태어난 세대들의 단체인 '제3세대 네트워크'의 회의 장면 1975~1985년 사이 동독에서 태어난 세대들의 단체인 '제3세대 네트워크'의 회의 장면
▲ 1975~1985년 사이 동독에서 태어난 세대들의 단체인 "제3세대 네트워크"의 회의 장면 1975~1985년 사이 동독에서 태어난 세대들의 단체인 "제3세대 네트워크"의 회의 장면
ⓒ 홈페이지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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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서독에 의해 지배된 미디어는 동독에 대한 단편적 모습만 부각하는 퇴행적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하며 자신들은 동독의 마지막 세대로서 통일 사회의 의미 있는 집단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또한 그들은 인기주의에 영합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문제, 극우시위가 나타나고 있는 일부 동독 지역의 상황이 전체 동독의 문제가 아닐 뿐 아니라 동독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들은 전국 및 지역 단위의 대화, 토론회, 만남을 조직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통일 독일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버스투어를 통해 참여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이들의 움직임은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았고 가욱 전 연방대통령 또한 이들의 노력이 사회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중앙 단위에서도 관심을 가졌던 이들의 활동은 2014년 이후 중단되었지만, 휴지기를 거쳐 지역 단위의 대화모임으로 계속되고 있다. 길지 않았지만 새 시대의 세 세대로서 이들이 보였던 분투는 독일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동독과 독일 사이 갈등하던 그들 
 
통일 30년이 지나면서 어느덧 그들은 통일 시대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중년 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동독 주민들도 통일 사회에서 더는 과거와 같은 낯선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동독의 마지막 청소년 세대를 비롯한 많은 동독 주민들은 동독과 독일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자리하고 있다.

동독 작센 지역의 한 언론사가 2018년 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동독의 모든 계층이 자신을 2등 국민으로 느끼고 있고, 특히, 18~29세의 젊은 계층은 70% 이상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독인은 자신을 독일인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지만, 많은 동독 주민이 자신을 통일 독일의 주민이 아닌 '동독 주민'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출신지역, 배경의 영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동독에서의 생활 경험과 무관하게 동독을 자신의 배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계속 나타나는 현 상황은 양측 사이의 갈등의 골이 여전히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새 세대를 위해... 독일 '낀 세대'서 얻을 교훈 
 
길지 않았던 동독 생활 경험에도 불구, 여전히 그것에게서 벗어나지 않은 통일 당시 동독 청소년 세대의 오늘날의 모습은, 그들이 겪었던 어른 못지않게 힘겨웠던 통일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들이 마음 한편에 여전히 가지고 있는 과거의 짐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독일인과 동독인 사이에 서 있는 현재 젊은 세대의 고민 또한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대를 이어 가고 있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마지막 동독 청소년 세대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변화된 환경에서 자신의 자리를, 자신이 기댈 곳을 찾지 못할 때 과거를 지향하거나 극우 집단을 비롯한 어떤 집단이든 상관없이 자신이 기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고난의 행군과 그 이후의 시장화 과정에서 등장한 한반도 북쪽의 새로운 세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 있는가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환경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집단적 개인적 퇴행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한반도의 새로운 세대가 진정한 '새 시대의 세대'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사회적 고민이 지금부터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내일의 미래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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