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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 상류에서 보는 중국-북한 국경선의 철조망
 압록강 상류에서 보는 중국-북한 국경선의 철조망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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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은 1901년 9월 27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1922년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문화학과에 다닐 때 유학생들이 창립한 재일조선노동총동맹의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귀국 후인 1925년 우리나라 현대문학사 '최초의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을 발표했고, 카프(KAR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서 활동했다. 1930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때까지의 약력은 김동환이 독립운동에 몸을 담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 뒤는 사뭇 다르다. 1939년 '북지 황군 위문 문단 사절' 활동, 1940년 <애국 대연설집> 편집·발간, 1941년 국민총력 조선연맹·조선 임전 보국단 활동, 1942년 자신이 발행하던 잡지 <삼천리>의 <대동아(大東亞)> 개명, 1943년 징병제 시행에 맞춰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발표, 1944년 국민동원 총진회 활동, 1945년 대화동맹(大和同盟) 활동 등은 그가 열심히 친일에 복무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국경의 밤〉과 친일로 요약되는 김동환의 삶

김동환의 약력은 〈국경의 밤〉과 친일로 요약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는데,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가 친일을 하지 않고 줄곧 〈국경의 밤〉과 같은 작품을 계속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국경의 밤〉의 제 1장을 읽어본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곰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워 놓고
밤 새 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져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원작대로가 아니라 필자 임의로 바꾼 요즘식 표기인데도 '국경'이 주는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소설처럼 등장인물이 설정되어 있고, 원인과 결과가 필연적으로 연결된 서사 구조를 갖춘 〈국경의 밤〉의 장점이 첫 장에서부터 생생하게 느껴진다. 더욱 김동환의 친일 변절에 애가 타오른다. 
 
 천지에서 보는 '국경 안내 경고문'
 천지에서 보는 "국경 안내 경고문"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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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밤〉 제 2장을 읽어본다.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나오는 듯
'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軍號)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림(山林)실이 벌부(伐夫)떼 소리언만.

 

박노해의 〈국경의 밤〉도 있다. 공간적 배경이 일제가 통제하는 두만강이 아닌데다, 시간적 공간이 훨씬 뒷날 이야기인 까닭에 시 본문에 '여권'이 등장한다. 하지만 '쾅, 쾅, 여권 도장이 찍히고 / 짧은 안도의 한숨도 잠깐 / 총성이 울리는 어둠 속에서 / 국경의 밤은 길고도 추워라'로 끝나는 마지막 연을 읽으면 여전히 국경이 주는 위압감에 문득 몸이 사려진다.

국경이라는 말, 또는 실제의 국경은 어째서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는 것일까? 전쟁이 연상되는 탓이다. 〈국경의 밤〉 제 3장이 묘사하고 있듯이 "어디서 '땅'하는 소리"가 나고, "뒤이어 요란한 발자취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이 났다고 실색하여 숨죽이는" 일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마음놓고 "안도"할 수 없는 대립과 살육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두만강이나 백두산 천지에 가보면

지금도 〈국경의 밤〉의 무대 두만강에 가면 팽팽한 긴장감이 물 위를 도도히 흐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중국 쪽에서 돛단배만한 유람선을 띄워 '남한' 관광객들을 '북한' 땅 코앞까지 데려다 준다. 틀림없이 강 한복판이 국경일 텐데, 그 선을 넘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일 텐데, 사공은 실정법 개념이 없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한쪽 발만 내밀어서 저쪽 땅 한 번 밟아 보시겠소?"

또, 중국 땅을 굽이굽이 올라간 소형 버스가 이윽고 발통을 멈추면 거기서부터 걸어서 백두산 천지 둘레를 감상하게 된다. 그런데 넘지 말라는 밧줄이 좌우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다. 왼쪽은 천지로 떨어지는 절벽이니 그렇다지만, 평지인 오른쪽은 그럴 이유가 없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속타는 궁금증을 눈치챘는지 안내원이 말한다.

"오른쪽은 북조선 땅입니다."   

모두들 호기심을 드러내며 오른쪽 땅을 바라본다. 얼마 가지 않아 국경선을 알리는 표지석과 만나게 된다. 
 
 천지의 '금지 월경' 표지
 천지의 "금지 월경" 표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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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단 조국에 살고 있다. 그래서 '국경'이 둘이다. 남북은 휴전선, 중국·일본과는 압록강·백두산·두만강·동해로 경계가 나뉘어져 있다. 자녀나 학생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이곳들부터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곳들은 우리 역사의 생생한 교육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날 꼭 기억할 말이 있다. 문무왕의 유언 중 한 대목이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루어) 백성들을 인수(仁壽)의 경지로 이끌었다"고 자신의 업적을 자평했다. '인수'는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이루었으니 '어진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 왔다는 뜻이다.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등 진정한 국경을 찾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통일교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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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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